"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라"

상대에게 도무지 내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면

by 모먼트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이제 10대가 되는 동안 엄마의 공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외조모의 돌봄노동 편입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많지만 일하는 여성이 마음편히 아이를 맡기는 것이 어렵다면 사회적 노동을 하겠다는 선택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내가 어미가 되고 알게 된 모성의 영역이다. 나는 너무나 운이 좋게도 희생의 아이콘이자 돌봄최강자인 박여사를 모친으로 두고 있는 바 가늘게 육아를 하면서도 내 업을 놓치 않을 수 있었다.


더욱이 아이를 생각해서라면 어쩌면 친모인 나보다 외조모인 박여사의 케어가 정서적으로 훨씬 안정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수많은 사례를 접한다. 나는 아버지쪽 피를 과하게 물려받아 감정표출이 손쉽고, 좋고 싫은 것이 매우 분명하여 그것을 내비치는데 거리낌이 없으며, 내가 기분이 좋으면 한없이 상냥한 반면, 내 컨디션이 저조할때는 그 날카로움은 이루말할 수 없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가시에 찔리기 일쑤인 치명적인 취약점을 갖고 있다. 알고 있지만 인간은 모두 자기합리화의 동물이기 때문에 나는 강점을 위주로 살겠다며 내 치명적 단점을 포장하고 변명하는데 나는 날로 바쁜 형편이다.


신은 어른에게 내 멋대로 되는 영역이 없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아이를 선사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밭 맬래 애 볼래 하면 밭 매는게 훨씬 쉽다고 인정할 정도로 아이를 돌보고 양육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인내와 시간과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그런데 박여사는 이런 희생을 희생이라 여기지 않고 스스로 조금 부지런하고 고단하면 다른 사람이 편해진다고 생각하는 논리구조를 갖고 있다. 나는 내 수고가 들어가면 이 수고로움이 어떤 대가를 치른 수고인지 소리쳐 알리는 타잎이라면 엄마는 그것을 묵묵히 뒤에서 백업해주시는 경우인 셈이다.


아이를 키울 때도 그 기준은 당연하다. 기관이 바뀌고 엄청 아이가 짜증을 부리던 때 매너없이 말하고 행동할 때 덜컥 아이가 저러다 예의없는 아이로 자라는게 아닐까 걱정이 되니 엄청나게 엄하게 대했던 적이 있다. 엄하다고 하지만 불쾌하고 걱정되고 화가나는 마음을 쏟아냈던 것 같다. 당시 오은영 박사의 훈육지침이 이렇게 일반화되기도 전에 박여사께서는 "내향적인 아이가 밖에서 마음껏 펼치지 못한 스트레스를 푸는 게 있을 수 있다" "집에서 만큼은 편안하게 털어놓을 수 있게 항상 집안을 따뜻한 언어로 채워줘라" "일한다고 바쁜 엄마라고 주장하지만, 그 일하는 것 아이가 요구한 것도 아니고 아이한테 힘든 엄마 이해하라고 감정 쓰레기통처럼 취급하지 마라." "말 제대로 못하고 약한 아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마라" "바쁜고 걱정되는 건 네 사정이고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라" "아이가 엄마를 안전하다고 느껴야 편하게 말하지!" 등등등 듣고 보면 하나도 틀린것 없는 이야기를 특별히 배우지도 않은 박여사는 줄줄이 읊어댄다. 읊어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일치된 행동을 하는 것이 더 놀랍다.


아이 눈높이에서 대화하고, 아이 눈높이에서 장난치고, 아이가 원할때 품어주는 방식 덕분에 큰 아이는 언제나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모로부터 공감받지 못하거나 이해받지 못할 때 언제나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은 박여사 할머니이다. 자신들의 마음과 가장 잘 연결됐다고 믿는 것 같다. 불안이 높고 걱정이 많은 아이가 선택을 주저할 때마다 박여사는 "틀려도 괜찮아, 못해도 괜찮아, 시도만 해도 엄마나 아빠보다 훨씬 낫다 대단하다"고 아이의 주저하는 마음 아래에 깔린 불안에 먼저 다가가 살살 녹여준다.


사실 가만 보면 박여사가 당신의 딸인 내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손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에 훨씬 특화된 것을 보면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저 원칙이 언제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것이라 느껴지지는 않지만, 아이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 내가 하려는 말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는 먼저 내가 그 아이의, 상대방의 마음에서 먼저 이해하려고 애썼는지를 살필일이다. 마음이 이해되고 연결되야 영향을 주고받는 말과 행동이 작동을 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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