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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Mar 12. 2017

편함과 불편함 사이, 설렘과 우울 사이를 왔다 갔다

파리 여행(2015. 8. 24 - 9. 12) 첫 번째 이야기

시작부터 안정적이지 않았다.


6시 40분으로 맞춰진 알람이 아니라 ‘몇 시에 일어날거야?‘라는 엄마의 목소리로 3분 일찍 일어난 것이 괜히 짜증나고 싫었으며, 목이 칼칼하고 눈이 따가웠으며, 급하게 자른 앞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공항철도를 타기 위해 홍대입구역으로 가는 택시 안, 여행하면서 요긴하게 입으려고 챙겨뒀던 골덴남방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예민함 수치는 절정을 찍었고, 때문에 잘 다녀오라는 엄마와 친구의 전화인사에 그리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짐을 부치고 보안검색을 마친 후에야 예민한 마음이 조금씩 풀렸고, 스타벅스에서 따뜻한 돌체라떼를 사서 마신 후에는 안정을 거의 되찾았다. 아마 마음이 좋지 않았던 건, 아침에 벌어진 일련의 상황들 때문이 아니라 여행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나보다.


<About Time>(어바웃 타임)과 <La Famille Belier>(미라클 벨리에), 두 편의 영화를 (펑펑 울면서) 보고 두 번의 식사를 마치니 어느새 경유지인 뮌헨에 와있었고, 또 한 번의 간식 타임을 마친 뒤에는 최종목적지인 파리에 도착해있었다.


나름 두 번째 방문이라 첫 번째와 같은 지나친 걱정은 없었으나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절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경계를 놓치지 않는 와중에도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은 복잡했다. 늦은 시간에 도착해 버스에 사람이 아주 적었는데, 그런 한적한 분위기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기에 적합한 환경이었다. 사람이 많았다면 따가운 시선을 부끄러워하고 짐을 꼭 붙잡고 있느라 다른 생각은 하지도 못했겠지. 이런저런 생각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기분 좋은 설렘, 이 여행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감, 좋은 여행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신과 불안감.


민박집에 도착하자 많은 생각들이 저절로 씻겨져 나갔고 신기할 정도로 편해진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민박집으로 가는 버스 안, 몸이 으슬으슬해 캐리어에서 좋아하는 니트를 꺼내 입었다.


이번 여행의 첫 행선지는 지난번 파리 여행 때 못 가서 늘 아쉽게 생각했고 그래서 이번에 자주 가야겠다고 생각한 Saint-Germain-des-Près(생제르맹데프레)였다.


주변을 돌아보다 이 지역에 있는 두 유명한 카페 Café de Flore(카페 드 플로)와 Les Deux Magots(레 두 마고) 중 Les Deux Magots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두 카페가 유명한 이유는 사르트르, 보부아르 등 유명한 문학작가들이 드나들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현지인보단 관광객의 발걸음이 잦은 곳들이다. 그곳에 걸어가면서부터 도착해 자리에 앉고 주문을 할 때까지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이방인에 대한 시선이었다.


금발과 푸른 눈이 가득한 그곳에서 나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새롭고 낯선 곳이기에 그런 시선에 신경이 쓰여지지 않으려면 적응의 시간이 필요할텐데,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적응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이방인에 대한 시선을 즐기는게 나을까?


café au lait 마시면서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카페 Les Deux Magots(레두마고)


이 날 저녁에는 교환학생으로 파리에 와있는 단아언니와 약속이 있었다.


생제르맹데프레에서 약속장소인 마들렌 지구까지 걷는 길, 튈르리 정원에서 잠시 앉아서 쉬다가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한국인이냐고 물으며 다가온 할아버지는 김기덕, 홍상수, 전도연 등 유럽에서도 유명한 한국 영화인들 뿐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놀랄 만큼 많은 관심을 갖고 계셨다. 깊은 내용은 잘 모르시는 것 같았지만 그분의 입에선 백제, 고려, 신사임당(!)과 같은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불어를 배운 적이 있지만 공부를 안 한지 오래되어 ‘Je ne parle pas français(저 프랑스어 못 해요)’ 조차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나에게 할아버지는 아주 간단한 불어수업을 해주셨고, 우린 걷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혼자 돌아다니며 외로움을 느끼려던 차, 이 우연한 만남은 나의 지루함을 완전히 깨트려주었다. 그러나 정-말 안타깝게도, 완벽하게 기억될 수 있었던 이 만남은 마지막에 할아버지가 진한 스킨십을 (내가 난감해 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씩이나) 하는 바람에 찝찝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bisou(볼뽀뽀)가 보통인 나라이지만 그건 거의 키스였다고!


튈르리 정원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쪽지에 간단한 불어 표현을 적어 건네주셨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다시 마들렌 지구를 향해 걷는데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배고프고 소변도 마려운데 약속시간까지는 한참 남은 이 난감한 상황에서 비까지 내리다니! 원래 비 맞는 것에 민감한 사람이 아닌데 나를 놀리는 것 같아 비가 미웠다. 아니다, 기억을 다시 되살려보자. 그땐 그냥 온 신경이 방광에 집중해 있었으려나.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카페에 들어가기로 결정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시 머무르기 딱 좋은, 유난스럽지 않은 카페를 발견했다. 분위기가 소박하면서도 깔끔하여 좋았고, 주인이 무심한 듯 친절하고 친절한 듯 무심하여 좋았고, 낮부터 무척 먹고 싶었던 에끌레어가 있어 좋았고, 푹식한 소파가 있어 좋았다. 그 공간은 그 자체로 그 순간의 나를 위로해 주었다.


단아언니와 파리에서 처음으로 함께한 식사


평온을 되찾은 후 단아언니를 만났고, 우린 흥분할 정도로 서로를 반가워했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그간 쌓아둔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루종일 바삐 움직이던 이 날의 기분 메트로놈은 다행히도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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