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여행(2015. 8. 24 - 9. 12) 두 번째 이야기
민박에 들어온지 3일 째. 아침 일찍부터 부랴부랴 준비를 마치고 나가는 다른 여행자들과 달리 나갈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밍기적거리고 있자 은지언니(민박집 주인언니)가 나가서 같이 점심식사를 하겠냐고 물어왔다.
그럼요! 좋아요!
은지언니가 데려간 그녀의 단골식당은 후에 나의 페이보릿 동네가 될 마레지구에 위치해 있었다.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굉장히 활기찼지만 복잡하지 않았고, 질서가 잘 잡혀 있는 듯 했지만 딱딱하지 않았다.
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plat du jour(오늘의 요리)를 시킨다는 은지언니를 따라 주문한 ‘그날의 요리'는 오리고기 쿠스쿠스였(던 것 같)다. 맛이 별로여서 언니도 나도 거의 다 남겼지만 그것은 전혀 내 기분을 망치지 않았다. 마음에 쏙 드는 곳에서 언어가 통하는 사람과 서로를 알아가는 대화를 나누며 식사하는 것은 즐거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혼자 여행하는 이에게 이것이 귀한 일이라는 것을 이때부터 알았는지 너무 잘 느껴졌던 기쁨.
파리여행에서 좋았던 점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말하는 것이 민박집이다.
나는 파리에 머무는 3주 중에 2주를 그곳에서 묵은 장기투숙객이었다. 난 언제부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이것저것 알아가려 하기 보단 시간에 맡기는 편, 그리고 누가 물어보기 전엔 내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 되었고, 아마도 그 이유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역시 빨리 그리고 많이 친해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나는 점점 그곳이 편해졌고 은지언니와 윤주언니(은지언니의 친구이자 일을 도와주면서 빌붙어 있는 언니ㅎㅎ)에게 엄청나게 정이 들어버렸다. 매일 먹는 아침밥과 저녁밥은 집밥처럼 익숙해졌고, 외출을 마치고 돌아올 땐 집에 돌아온 듯한 포근함을 느꼈다. 들어왔다 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은지언니와 함께 아쉬움과 허전함을 느끼기도 했다.
민박 사람들과 있었던 일들 중 특히 기억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에펠탑 피크닉이 그 중 하나이다. 전날 밤, 야경투어에 같이 가자는 한 언니의 제안은 우리끼리 에펠탑 피크닉을 하는 것으로 최종변경되었다. ‘관광지를 잘 아는 사람이 여기 이렇게 많은데 뭐하러 투어를 가?’ '그렇네……?’ '그럼 우리끼리 피크닉하자!’ 뭐, 이런 식으로.
다음 날 각자 먹을 것을 사들고 만난 우리. 에펠탑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음식을 먹으며 게임하고 수다 떠는 것. 그리고 하늘이 어두워지면 머리를 모아 누워 말없이 반짝이는 에펠탑을 감상하는 것. 이것이 이 날 피크닉 내용의 전부였다.
우리가 나눈 대화의 대부분은 게임과 한국가요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이 있어'와 같은 말은 아주 조금 오갔고, 가끔 오가는 것마저도 가볍게 지나갔다. 그러나, 대화의 표면에선 느끼긴 힘들지만, 각자의 마음이 얼마나 일렁거렸을지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혼자 에펠탑을 구경하면서는 절대 느끼지 못할 감정이었겠지.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사람들이 보고 싶고 그 시간들이 그리워진다. 그럴 때마다 보고 싶다고 카톡을 보내진 않지만 다들 같은 마음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애틋하지만 추억은 추억으로.
음, 그래도 기회가 닿는다면 언젠간 다시 보고 싶다. 자체로 따뜻했고 나에겐 더 따뜻해서 참 고마웠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