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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Apr 11. 2018

엄마랑 첫 해외여행_오사카/교토 (1)

명동 혹은 광화문 같은 오사카

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회사를 다니는 내내 이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는 생각과 본 꿈을 저버린 것에 대한 자괴감으로 힘들었었다. 결국 지난해 말,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을 다시 준비해 1년 안에 이직하겠다는 결심을 세웠다. 잘 되지 않으면 숙원인 영어 마스터를 위해 어학연수를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1년 동안 도전할 생각이었는데) 새해가 밝은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이직 기회가 찾아왔다. 원래 다니고 있던 직장이 '대학생이 가고 싶은 기업 1위'와 같은 랭킹에 드는 빵빵한 곳이었기에 나의 이직 결정을 두고 누군가는 용기가 대단하다 말했고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말했다. 당사자로서 둘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난, 이직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2주 간의 휴가를 얻었다.


해외여행을 해야 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가장 하고 싶으면서 가장 하기 어려웠던 것이 해외여행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중요한 조건은 부모님과 함께 가는 것이었다. 대학생 때 배낭여행을 다니며 혼자서만 좋은 구경을 한 게 늘 죄송했다. 그래서 취업 후 첫 해외여행은 부모님을 모시고 다녀오는 것이 되면 좋겠다는 소망이 컸다. 또 다른 이유는 부모님이 나의 이직 결정에 매우 속상해하셨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 몰라라 혼자 해외여행을 떠날 자신은 없었다. 이에 부모님께 여행을 제안했으나 안타깝게도 아빠는 바빠 함께하지 못하시고 엄마와 둘이 떠나게 됐다. 엄마와 함께하는 첫 해외여행이자 그녀에겐 두 번째 해외여행이었다.


여행지는 여러 면에서 부담이 적은 일본, 그 중에서도 내가 아직 가보지 않은 오사카와 교토로 낙점했다. 해외여행에 익숙하지 않은 엄마를 모시고 자유여행을 하는 것이 내심 걱정도 됐지만 기대가 더 컸다. 왠지 자신이 있었다. 엄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 그리고 3월 중순의 간사이라니. 따뜻하고 화사하고 그럴 것 같잖아.



첫 번째 이야기는 오사카에서의 이야기다.


간사이공항에서 특급 라피트 열차를 타고 오사카 시내에 있는 숙소(호텔 선루트 오사카 난바)에 도착해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초밥을 먹은 것이었다. 전 직장 상사 분이 세계 최초로 회전초밥을 만든 곳이라며 추천해준 겐로쿠스시 도톤보리점에 갔다. 도톤보리 거리를 걸으면서 생각한 것은 이곳이 무척 명동 같다는 것이었다. 명동이 중국인 관광객으로 가득하다면 도톤보리는 한국인 관광객으로 가득했다. 거리 자체의 느낌도 비슷했다. 회전초밥집 안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와 내 양옆으로 한국인 손님이 앉아, 계속 들리는 한국말에 내가 일본에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을 뻔도 했다.


초밥으로 배를 채운 뒤 5분 거리에 있는 돈키호테 도톤보리점에 갔다. 엄마는 카베진을 사기 위해. 난 일회용 필름카메라를 사기 위해!


필름카메라를 개시하면서 여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아이폰으로도 사진을 여러 장 찍었지만 필름카메라로 찍는 느낌이 특별히 좋았다. 디지털 카메라는 찍은 사진을 즉각 확인할 수 있어서 찍는 순간 되려 실체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살아있는 것을 앨범에 가두는 것이다. 포켓몬을 몬스터볼에 넣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필름카메라는 인화하기 전까지 사진을 확인할 수가 없으니 그저 찍을 뿐이다. 찰칵. 또 찰칵. 뷰파인더로 탐색하고 셔터로 포착한다. '내 마음 속에 저장'하는 행위다.



이 필름을 산 돈키호테에서 바로 이런 광경이 보였다. 관광객이 바라보는 관광객.
도톤보리에서 우메다로 가는 길에 우연히 올해 첫 벚꽃을 마주했다. 내 마음 속에 저장!



돈키호테에서 각자의 목적을 달성한 우리는 약 30분을 걸어 다음 목적지에 갔다. 브루클린 로스팅 컴퍼니라는 유명한 카페였다. 지인이 소개해준 곳인데, 난 여행하기 전에 검색은 잘 안 하는데 (좋아하는) 지인이 추천해주는 곳엔 꼭 가고 싶더라. 브루클린 로스팅 컴퍼니도 그래서 갔다. 이번 여행 중 엄마의 취향을 배제하고 내 욕심으로만 택한 유일한 행선지였다. 기대에 부응하는 맛과 멋을 가진 곳이었다.




브루클린 로스팅 컴퍼니 테라스에선 이런 광경이 보인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헵파이브에 가 대관람차를 타며 야경을 본 것. 그것이 우리가 오사카에서 한 마지막 관광다운 일이었다. 야경을 본 후에는 숙소 근처 이자카야에서 나마비루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엄마는 실내 흡연이 가능한 점과 자리가 좁은 점을 몹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짜증을 내진 않았다. 사실 우리 엄마는 버럭버럭 화를 잘 내는 사람인데, 이번 여행을 통해 새로 알게 된 것이 있다. 엄마는 사소한 것에도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아니라, 본인이 이미 화가 나 있는 것이 건드려졌을 때 또 화를 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몇십 년 동안 쌓인 어떤 화가 그녀의 가슴 속에 응어리져있다. 어떻게 하면 그걸 풀어줄 수 있을까?



촘촘하면서 단정하게 자리잡고 있는 일본의 가게들. 자그마한 창 너머로 다림질 하고 있는 세탁소 아주머니가 보였다.


의외의 풍경. 감각 참 좋다, 여기 사람들!






마지막 날 오사카로 돌아와 먹었던 메론빵(?). 소보로빵에 메론아이스크림을 담아준다. 도톤보리 먹자골목(?) 야외에서 팔리고 있다. 오사카에서 먹은 것 중 제일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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