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둘째 날. 오사카 호텔에서 느즈막히 일어나 조식을 챙겨 먹고 나와 점심을 먹고(?) 지하철을 탔다. 두 번을 갈아타 도착한 역은 가메오카역. 가메오카는 교토부에 있는 시로, 교토시에서 열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있다.
가메오카를 찾은 이유는 온천 료칸 때문이었다. 엄마가 온천욕을 하고 싶어 하셨는데, 목욕탕 가듯 들르는 곳엔 가고 싶지 않아 온천이 달려있는 료칸을 찾았다. 검색해보니 오사카 근방에선 온천욕을 하러 아라시야마 지역에 많이 가는 것 같던데, 준비가 늦었던 터라 조건에 맞는 곳을 예약할 수 없었다. 그러다 차선책으로 찾게 된 곳이 가메오카에 위치한 스미야 키호안 료칸이었다. 널찍하고 깔끔한 다다미방에, 시간 제한 없이 노천탕을 즐길 수 있고, 가이세키(작은 그릇에 조금씩 음식이 담겨 나오는 일본식 코스 요리)도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 가격은 인당 27만원 정도였다.
여행 둘째 날은 그 공간에서 하는 체험에 온전히 할애할 생각이었다. 여러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난 여행 중 숙소에 박혀있는 것도 좋아한다. 여행의 8할이 숙소에 있다고 생각할 정도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스미야 키호안에서의 체험은 대만족이었다!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으며, 방뿐 아니라 로비며, 공용 휴식 공간이며, 산책로며, 모든 공간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친절한 직원들도 우리의 기분이 한층 더 환해지도록 만들어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늘과 나무 같은 진짜 자연 속에서 즐기는 노천욕이... 끝내줬다. 엄마가 만족해하니 더할 나위 없었다.
엄마는 이번 여행 중 스미야 키호안에서 즐긴 노천욕과 가이세키가 가장 마음에 드셨을 거다. 료칸은 훨씬 더 비싼 곳도 많아서 이 정도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곤 하지만 나에게 인당 27만원이란 가격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난 그 돈을 내고 노천욕과 가이세키, 그리고 효도의 경험을 샀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늘 사치스러울 필요는 없지만 바쁘고 힘든 와중 가끔 이런 사치가 필요하다고. 리프레시가 될 뿐 아니라 삶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어주니까.
스미야 키호안이 좋았던 또 하나의 큰 이유는 차경이었다. 경치를 빌린다는 뜻의 차경. 안도 다다오도 건축할 때 애용하고 유념했던 그 차경.
아무리 예쁘고 멋진 사물이더라도 그것과 어울리지 않는 곳에 놓이면 매력이 반감된다.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건축물은 필연적으로 자연 위에 놓이므로, 그가 조화를 이뤄야 할 대상은 자연이다. 조화를 이루는 방법은 자연을 해치지 않는 정도도 해당되지만, 보다 능동적인 태도로 그것을 활용하는 것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건축물이 자연의 일부로 자리하는 것을 넘어, 자연을 자신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그 경지. 스미야 키호안에서 나는 '차경'이라는 기술적이고 비일상적인 단어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거기선 어딜 가나 자연이 안으로 들어와 있어 실질적으로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천장과 벽이 마치 투명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느낌이 어찌나 좋던지... 청산에 살어리랏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