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동안 시만 지으며

by 삼이공

초등학교 4학년 때, 난 처음으로 시를 썼다.

작은 꼬마는 연필을 손에 꼭 쥐고, 아직 여물지 않은 언어로 마음속을 간질거리던 그 느낌들을 숨결처럼 원고지에 쏟아냈다.


하얀 여백을 채우는 낯선 단어들은 꼬마의 심장을 울리기 충분했다.


그 떨림을 경험한 꼬마는 그 후에도 지금까지 시를 쓰고 있다. 외로울 때마다 시를 짓고, 그리울 때마다 시를 썼다.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꼬마에게는 시였고, 시는 그런 꼬마에게 있어 근원과 본질의 갈망이었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두세 편씩 시를 쓰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시집에 빠져 살기도 했다.


신기한 것은 지금까지 그렇게 수많은 시를 썼음에도 내게는 어지간한 시집 한 권이 없다. 그동안 써놓았던 시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럼에도 아주 가끔씩 내가 써둔 시들이 보물 찾기처럼 발견될 때가 있다.

언젠가 내가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간직한 채,

아무리 시간이 지났어도 퇴색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럴 때마다 옛 일기장을 꺼내듯,

반갑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했지만,

보다 더 큰 감정은 나라는 존재의 파편을 찾은 기분이었다.


브런치스토리를 알게 되고, 이곳에 글을 발행할 수 있게 되면서 나는 그동안 써두었던 시들과 또 앞으로 쓰게 될 시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브런치를 통해 시집도 출간하고, 나의 시집과 세상의 모든 시집들을 모아 아늑한 카페도 하나 차리고 싶다.


꿈으로 끝날 꿈이겠지만 그럼에도 상상해 본다.


새벽을 가르며 동편을 비추는 아침 해가 카페 넓은 창을 비추면 카페 문을 열고, 커피를 볶는다. 카페 내에 넘치는 커피 향이 아침햇살을 맞이하고, 식물들이 가득한 테라스 근처, 널찍한 탁자에서 나는 붓끝에 그리움을 담아 시를 짓는다.


넘실거리는 커피 향속에 묵향이 피어오르고, 날이 갈수록 브런치에 쌓여가는 나의 시들은 어느새 새로운 시집이 되어 카페 한 귀퉁이를 채우게 될 것이다.


한가로운 오후에는 식어가는 햇살을 구경하고, 비가 오는 날에는 비멍도 좀 때리면서 어떤 사심도, 바람도 없이 살아가는 동안 시를 지으며 당신을 그리워해도 그것으로도 충분할 것만 같다.










<살아가는 동안 시만 지으며>



햇살 잘 받는 한적한 곳에

아늑한 카페를 차리고

커피 향 가득 풍기는 실내를

세상의 모든 시집으로 채우고 싶다.


봄이면 노란 유채꽃들이 하늘거리고

하늘은 투명하게 빛나는 어느 오후에

낡은 나무문을 열고 들어오는 봄바람에게

봄볕에 구운 사랑시 하나 선물하여

그대 언 가슴 데울 수만 있다면

살아가는 동안 시만 지으며

봄 햇살처럼 맑게 살아도

참 좋을 것 같은데.


싱그런 잎사귀가 푸른 어느 여름날,

오랜 장마 끝에 젖은 옷깃을 털어내며

느닷없이 쏟아지듯 급히 들어오는 소나기에게

가장 아름다운 추억들로 엮인 시 하나 선물하여

당신의 괴로움 덜어낼 수만 있다면

살아가는 동안 시만 지으며

푸른 바다처럼 넘실거리듯 살아도

참 좋을 것 같은데.


붉게 물든 잎사귀 따라

커피 향 익어가는 어느 가을 저녁,

툭 떨어진 홍시처럼 불쑥 찾아온 그리움에게

당신 떠올리며 익힌 시 하나 선물하여

나의 마음이 다시 당신께 가닿는다면

살아가는 동안 시만 지으며

은행잎 물들 듯 노랗게 살아도

참 좋을 것 같은데.


무너진 내 마음 위로

하얀 눈꽃송이 펄펄 내리는 어느 겨울 새벽,

외로움을 피해 들어오는 눈사람에게

아직도 당신 못 잊어

아무 때고 흘리던 눈물들 모아

따뜻하게 구운 시 하나 선물하여

당신도 날 따뜻하게 기억해 주신다면

살아가는 동안 시만 지으며

첫눈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살아도

참 좋은 것 같은데.


그렇게 시만 짓다 보면,

오랜 그리움이야

잊지 못한다 해도

오백 년은 금방 흘러갈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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