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한 조각도 열심히 씹어먹는 사람
제가 정말 좋아하는 표현이에요. 제가 도움을 받았던 여러 책 중 하나에 나오는 표현인데, 저는 이 표현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조금 엉뚱하게 들리는 것, 알아요. 그런데 여기서 조금 제 변호를 하자면, 저는 '사과 한 조각에 담긴 우주를 생각하며 사과를 소비하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저는 사과 하나에 온 우주가 담겨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 우주는 사과 안에 있는 작은 씨에서 시작되죠. 그 작은 씨가 어쩌다 땅에 심어져서 긴 시간 동안 충분한 영양분과 수분 그리고 햇볕을 받으며 큰 나무로 자라나게 되고, 그 나무는 자신이 출발했던 바로 그 씨앗을 만들어내기 위해 꽃을 피우고 결국 사과를 만들어 내요. 어떻게 손톱보다도 작은 씨앗이 큰- 나무가 되고 수십 개의 사과가 될까요?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 사과 중 하나를 먹는 거예요. 그 사과 안에는 또 다른 씨앗이 들어있죠. 그렇게 또 다른 씨앗은 또 다른 사과나무가 되고 수십 개의 사과가 되어서 또다시 씨앗이 될 거예요. (와우) 그렇기 때문에 제가 열심히 이 사과를 먹는 것이 이 모든 경험을 하고 저에게 온 사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열심히'는 '온전히 무언가에 몰두하는' 느낌이에요. 그러니 조금 풀어보자면, '온 우주가 들어있는 사연 많은 신비로운 사과의 존재에 온전히 집중해서 사과를 먹는 것'이죠. 이렇게 같은 사과를 먹더라도 배고파서 와구와구 먹는 사과와 다이어트를 위해 먹는 사과 그리고 사과라는 존재를 신기해하고 고마워하며 먹는 사과는 '사과를 먹는다'라는 같은 경험이 다른 가치를 갖게 해요. 이렇듯 무언가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건, 우리가 우리 주변의 것들을 낯설게 또는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해요. 이게 바로 '낯설게 바라보기'이지 않을까요.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도 우리에게 너무나도 도움이 되고 중요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이미 경험했다고 또는 안다고 생각했던 존재들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도 우리에게 또 다른 경험을 그리고 가치를 제공하는 것 같아요. 사실 우리는 실체가 아닌 현상을 보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데 아주 능해요. 그리고 내가 해석한 것이 사실이라고 믿죠. 예를 들어볼까요? 타인이 알고 있는 '나'는 과연 내가 알고 있는 '나'와 같을까요? 같을 수 없죠(절대 네버). 나는 내 안에 수-많은 내가 존재한다는 걸 알아요.(조성모가 부릅니다. 가시나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르죠. 대부분 내가 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원하고 허락하는 정도의 '나'를 알아요. 근데 여기서 또 한 번의 반전. 나도 나를 다 알지 못한다는 거죠.(what...?) 이처럼 '사실'은 사실(?) 판단하기 매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러니 '사실'에 집착하기 보다도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 여러 번 다른 각도로 또는 다른 방법으로 바라보는 것은 우리에게 꽤나 새롭고 놀라운 경험을 제공할 거예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낯설게 바라보기'의 대상은 무궁무진해요. 지금 이 글을 읽기 위해 스크롤을 내리고 있는 내 손이 될 수도 있고, 듣고 있는 음악일 수도 있고, 마시고 있는 커피가 될 수도 있죠. 그냥 매우 익숙하게 느껴졌던 것들 중 하나를 콕 짚어서 '어라?'하고 낯섦을 그 대상에게 부여하고 내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한 번 관찰해보세요. 분명히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었던 많은 것들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들과 다르거나 새롭게 느껴지실 거예요. 그리고 그 경험은 꽤나 신선하고 신기하고 또 재미있을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