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유독 그 사람을 미워하는 진짜 이유

소름 돋는 심리학

by 모순 수집함

영화 <나이브스 아웃 3>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마음속에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들이 떠오를 때마다 그것을 누르려 하면 마음은 갈피를 못 잡고 여러 모양으로 흩어진다.

또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라오며 특정 감정을 억압받은 사람이 어느 정도 이상의 나이가 되어 해당 감정을 학습한 경우, 그 감정이 과도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예를 들면, 한국 사회에서 남자아이는 슬픔을, 여자 아이는 화를 억제하도록 요구받는데, 각각의 경우에 전자는 '비관적인 어른'으로 자라나며 후자는 '울화병'의 형태로 표출된다. 한 인간이 40세에 처음으로 특정 감정에 눈을 떴다면, 그 감정이 자극되는 상황에서는 마흔 살에 다섯 살 마냥 굴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영향받고 있지만 아무도 드러내지 않는 이른바 사람의 성격을 결정짓는 요소, 바로 억압(Repression)에 대한 이야기이다. 심리학에서 억압이란, 우리의 뇌가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고통스럽거나 위협적인 기억, 생각, 충동을 무의식 속에 가두는 가장 기본적인 방어기제를 말한다. 아주 어린 시절, 가정이나 사회로부터 수용받지 못한 창피하거나, 무섭거나, 괴로운 기억들을, 뇌가 마음속 깊은 지하실(무의식)에 있는 비밀 상자에 넣고 자물쇠를 잠가버리는 것이다. 이 과정이 무의식적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쓰레기통 속의 쓰레기가 시간이 지나면 냄새가 나듯 억압된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유 없이 갑자기 불안해지거나, 기분이 안 좋은데 왜 안 좋은지 나도 모르는 상태가 되기도 하고, 이상한 꿈을 꾸기도 하는 등의 형태로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억압은 우리가 무너지지 않고 일상생활을 해 나가도록 돕기 위해 우리 뇌가 고안한 방패이다.

그러나 억압된 기억이나 감정을 모르고 살아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너무 많은 에너지가 억압하는 데에 쓰여 이로 인해 만성 피로, 불안, 우울감에 시달리거나 원인 모를 신체적 통증을 겪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화병'도 억압과 관련이 깊다. 또 타인에게 적용되는 억압의 발현 형태로는 뒷담화와 수동공격이 있다.


"나는 착한 사람이어야 해." "상사(혹은 부모님)에게 대들면 안 돼."라는 높은 도덕적 기준이나 특정 대상에 대한 두려움은 화, 질투, 미움 같은 감정을 의식 밖으로 밀어낸다. 여기서 비롯된 억압된 감정은 나의 무의식 속에 쌓인다. 자아는 억압된 감정이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계속 누르고 있지만, 쌓이고 쌓인 억압된 감정은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로 응축된다.


화가 난 대상(강자)에게는 직접 말하지 못하고 그 대상이 없는 안전한 곳에서 제3자에게 그 감정을 쏟아내거나 설명하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확인받는 형태로 에너지가 분출되면 뒷담화, 직접적으로 화를 내는 것이 두려워서 공격성을 수동적인 태도라는 가면 뒤에 숨겨서 표출하면 수동공격성이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억압된 감정의 분출구가 우리 인간의 행동양식에 얼마나 자연스럽고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지 알게 되면 더욱더 놀라워진다.


Gemini_Generated_Image_mwvdymwvdymwvdym.png


◆김 부장은 본인이 최신 기술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뒤처지고 있다는 강한 열등감을 느낀다. 김 부장의 억압된 감정은 무능력이다. 김 부장은 자신의 실력에 대한 불안감을 부하 직원들에게 던져버린다.

"요즘 젊은 직원들은 왜 이렇게 공부를 안 해? 전문성도 없고 열정도 없고!"

김 부장 본인은 '열정적이고 유능하지만 부하들 때문에 고생하는 리더'라는 가짜 정체성으로 자아를 보호한다.


◆최근 들어 남편이 회사에서 돌아와 부쩍 아내의 휴대폰 검사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

"당신 요즘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와? 다른 남자 만나?"

남편은 사실 직장 동료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껴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남편의 억압된 감정은 호감이다. 남편은 자신의 바람기를 아내에게 던져버림으로써 죄책감에서 해방되고자 했다.


◆연애 프로그램의 한 여성 출연자가 성적으로 문란한 태도로 인해 최근 화제가 되었다. 남성 출연자에 대한 노골적인 유혹과 당당한 언행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SNS에 해당 게시글을 본 최 씨는 그녀에 대한 혐오를 느끼고 비난 댓글을 달았다.

"천박하고 저급해 보여요. 예쁘지도 않으면서 왜 저래."

최 씨의 억압된 감정은 성적 욕망이다. 최 씨는 자기 안에 존재하는 저급한 욕망을 극도로 혐오하기 때문에 그 욕망을 대놓고 드러낸 여성 출연자를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무결함을 확인받고자 한다.


위의 세 가지 예시는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고 어쩌면 너무나 익숙한 모습일 수도 있다. 타인에 대한 비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억압된 감정을 찾을 수 있다. 내가 가진 부정적 감정을 내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타인에게 던져버림(투사)으로써 상대방이 그 감정을 가졌다고 믿는다. 이러한 과정을 스스로 알아채기란 매우 어렵다. 억압은 깊고도 내밀하게 자리 잡아 무의식 속에서 발현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누군가를 너무 미워하는 마음을 과도한 친절로 포장하는 심리에도 억압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들키는 것이 두려워 오히려 지나치게 친절하게 대한다. 억압된 감정과 정반대 되는 행동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방식(반동형성)이다.


그러면 이러한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해 보았다면 나는 나쁜 사람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 억압은 우리의 뇌가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작동시키는 자동스위치 같은 것으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방어기제이다. 억압된 본능이나 에너지를 가치 있게 사용하는 분출구도 존재한다. 바로 승화이다. 운동을 하면서 억압된 공격성을 해소하고, 예술 활동으로 반사회적이고 파괴적인 욕망을 분출한다. 분노는 매우 강한 에너지이다. 인간은 이 에너지를 창작이나 고지능적 활동의 연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 본 넷플릭스 리미티드 범죄 스릴러 시리즈 <그의 이야기&그녀의 이야기>의 대사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분노는 네가 매일 아침 눈을 뜨게 만드는 유일한 이유가 되기도 하지."

.

.

.

덧붙이는 글: 분노와 슬픔의 상관관계) "분노는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느끼는 가장 쉬운 감정이란다. 슬픔보다 훨씬 더 다루기 쉽거든. 하지만 분노는 그저 슬픔이 가면을 쓰고 나타난 것일 뿐이야."

-<그의 세 딸> 중

작가의 이전글사람을 살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