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는 썰물이라 갯벌에서 조개를 캐고, 오후엔 밀물이라 방파제에서 낚시를 했다. 오전 내내 열심히 노동해서 신선한 조개를 한 바구니 얻었다. 그 조개들이 35도에 육박하는 뜨거운 여름날씨에금방죽을까봐 걱정되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문득 낚시할 때 쓰던 두레박이 떠올랐다. 낚시용 두레박은 잡은 물고기를 살아있는 상태로 잠시 보관할 때 쓴다. 튼튼한 뚜껑이 있고 긴 끈이 연결되어 있어 바다에 던져 놓았다가 다시 건져낼 수 있다. 거기다 조개를 넣어 바다에 담가 두면 저녁까지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개를 담은 두레박을 가지고 낚시하러 방파제로 갔다.뜨거워진 조개를시원한 바닷물에 담가 놓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급히 두레박의 끈을 풀었다. 그리고 재빨리바다에 던졌다. 던지지 마자 아차 싶었다.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방파제 위에서 수면까지의 거리는 훨씬 더 길었다. 끈을 너무 짧게 풀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다급했던 것 같다.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다시 건져야겠다고 생각하며 끈을 잡아당기는 순간, 조개가 담긴 두레박의 상당한 무게가 내 손에 느껴졌다. 떨어지는 힘까지 더해져 너무 무거웠다. 그 짧은 시간 많은 생각이 지나가는 찰나, 감아놓은 끈의 손잡이를 놓치고 말았다. 아뿔싸!
"어, 어!!! 두레박을 놓쳤어!! 어떻게 해!!! "
안절부절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가족들을 불렀다. 도움을 요청했지만 두레박을 건져 낼 방법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을 건질 만한 튼튼한 뜰채도 없었고, 있다 해도 꺼낼만한 시간도 허락해 주지 않았다.
"어쩌지? 두레박이 가라앉고 있어!!빨리빨리!! 뭐라도 줘봐!!"
마음은 바다에 뛰어들어 건져내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는 없었다. 두레박은 점차 물속으로 꼬르륵 가라앉았다. 영영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두레박이 있었던 물가를 멍하니 계속 쳐다봤다. 벌어진 상황을 되돌리고 싶었다. 평소에 낚시할 때는 늘 남편이 두레박을 던졌다. 왜 하필 그날은 내가 하려고 했을까. 평소대로 할 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나서 후회가 밀려왔다. 그 와중에 옆에 있던 가족들이 나를 나무랐다.
"아이고... 끈을 여유 있게 길게 풀고 던졌어야지! 잘 좀 던지지, 좀!"
"당신은 가끔 그러더라."라고 남편도 한 마디 거들었다.
예전에도 방파제에서 내가 휴대폰을 바다에 빠뜨린 적이 있다. 밤바다의 물고기를 보겠다고 플래시를 비추다가 떨어뜨렸다. 남편의 말을 듣자 그때가 떠오르며 또어이없는 실수를 한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옆에서 낚시를 준비하던 아들이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리고는 나에게달려왔다.허망한 표정으로 바다만 바라보며 기가 차 있던 나를 와락 안아준다.
"엄마, 놀랬지? 속상하지.."
작은 목소리로 내 귀에 대고 속삭이며자그마한 손으로 내 등을 도닥여주었다. 아들의 태도에 순간 감동이 몰려왔다. 옆에 있는 어른들은 다 한 마디씩 나무라고 있는데, 아홉 살 아들만이 달려와 진심으로 내 마음을 공감해주었다. 그러나 잠시 뒤,
"거기 조개가 다 들어 있었어! 조개도 같이 다 바다에 빠져버린 거라고."
라고 동생이 다시 확인사살을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아들의 눈이 똥그랗게 커지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엄마!!!"
아들은 그 두레박에 조개도 들어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안 것이다. 오전 내내 온 가족이 수고해 잡은 조개들이 순식간에 사라졌으니 속상할 테지.... 아들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잠시 말없이 침울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좀 전에 끈을 놓친 후 내 모습과 똑같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금세 마음을 가라앉혔는지 아들이 다가와서 말을 건다.
"괜찮아? 엄마?"
또 나를 토닥여준다.
"응, 괜찮아. 조개는 어차피 놔주려고 한 거였으니까. 우리에겐 내일이 있잖아. 내일 또 잡으면 되지, 잡는 재미가 있잖아?"
내가 괜찮다고 말하자 아들이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으로 이런 말을 했다.
"근데 엄마,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이런 상황을 겪게 만드셨을까? 무슨 의미를 알려주려고 이런 일이 벌어지게 하신 걸까?"
아이의 질문에 머리에 불이 번쩍 켜지는 듯했다.
그저 벌어진 상황에 허탈했고, 그 감정을 잘 추스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아이는 그 이면의 의미까지 묻고 있었다.
아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은 하지 못했다. 같이 그 의미를 찾아보자고 했다. 그 날 아들의 말이 내게도 사색의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삶에서 돌발 상황은 언제든 닥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아들이 나에게 물었던 것처럼 생각해 본다면 어떨까.
"지금의 상황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르쳐 주려고 하는 걸까? 이 상황에서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