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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취준일기

재활 -

정리와 연습

by 오기일

빠르게 흘러가는 누군가의 시간은 나에게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용된다는 사실은 굉장히 슬픈 일이다. 나만의 시간은 고무줄처럼 쭉 늘려 밀도 있게 활용할 수 있다고 믿어왔지만, 스물 네 시간은 인류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는 규칙 아래 다소 오만한 믿음은 무너져 내렸다. 항상 업무 시간은 모자라고, 일은 끝이 없다는 것을 직접 느끼고 있다고 해야할까.


큰 일을 해 보고 싶다고 생각해왔던 삶은 생각보다 단조롭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햇병아리는 아직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열심히 작은 발을 내딛는다. 아직은 걷는 것이 서툴기 때문에, 넘어져 다치기도 하고 위태롭게 곡예를 하기도 한다.


한 때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살아갔던 때가 있었다. 활자를 찾아읽지 않던 오만한 마음가짐 덕에 글이 정체되었던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특별하기에 잊고 싶지 않지만, 오히려 다시 글을 써본다는 용기를 막아버리는 방파제였다. 정제되지 않은 생각들을 쏟아내는 것이 익숙했었는지, 정제하고 전달하려는 시도보다는 나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펼치는 것이 즐거웠던 것이 아니었을까.


취업은 생각보다 더 어렵다. 인턴을 거치고, 부트캠프를 진행하고, 또 인턴을 하고 있다. 일련의 흐름을 정리해보기 위해 정말로 오랜만에 노트북을 켜고, 브런치에 접속했다. 글을 쓰지 않으니 사고가 경직되는 느낌도 많이 받는다. 취업 준비의 과정을 다시 한 번 적어본다.


1. E 기업 인턴 경험

인사에는 뜻이 없었지만, 명확한 산업군 지망이 없었던 나는 대부분의 기업에 반드시 필요한 인사직무에 지원하자고 생각했었다. 진정 하고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취업 상담도 받고, 여러 고민을 해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경영 관련하여 아는 것이 없었던 나는, 무작정 학교 생활에서 겪었던 모든 일들을 동원하여 자기소개서를 작성했었다. 학교에 애정을 가지고 싶어 시작했던 학생회장 경험을 새로운 체계를 만들었던 경험으로 해석하고, 인사를 하고싶다는 '마음'만을 담았다. 왜냐하면, 나는 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일과 관련된 것들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직무 적합성'을 따지는 요즘 시대에 참 취직하기 어려운 학과이다.

운이 좋게 한달 반의 인턴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전략기획 직무를 경험하였다. 이게 어쩌면 취업기간이 길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아닐까 싶다. 일이라고는 서른살에 처음 해보고, 그마저도 이것저것 휘말려 잘 하지는 못했으니 말이다. 배운 것은 분명히 많았지만, 대부분 후회와 회한, 그리고 분노가 가장 컸다.

처음이라는 핑계로 못하고 싶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가루가 되어있던 자존감과, 업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나를 보고서는 더욱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들어갔다. 하지만 의외였던 것은, 기획 직무가 괴롭기는 하지만 과정 자체는 나름 즐거웠다는 점이었다.


회사를 처음 경험하였고, 그렇기에 많이 위축되어있었다. 덕분에 나는 돌파력, Grit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단되었고, 떨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후에는 경험을 살려야겠다는 일념만으로 전략기획에 지원하고, 굉장히 많은 혼란을 겪었다. 그러다 급부상하는 AI의 물결을 바라보며, 새로운 기술을 익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국비교육을 받게 되었다.


2. KPMG DX 컨설턴트 과정

인턴 과정에서 내가 겪었던 Pain Point는 두 가지였다. 첫째, 프로젝트를 A to Z까지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 둘째,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지 못했다는 것.

과정을 진행하며 이 둘을 해결하기 위해서 했던 행동은 두 가지였다. A to Z를 파악하기 위해, 과정에서 배우는 지식들을 확실하게 익혀두고 정리해두며 끊임없이 구상할 것. 둘째,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려운 일에는 자원을 하며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포지션을 경험할 것.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둘을 해소하는 데는 어느정도 성공했다. 프로젝트 팀장을 맡아 A to Z를 관리하며 발표까지 끝마칠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다들 하지 않으려고 하는 부분들을 주도적으로 맡아 해결해나갔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날 싫어하는 사람까지도 설득하여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팀워크가 깨지지 않도록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아쉬운 부분이 하나가 있었다. 바로 리서치였다. 상황 분석을 위해 찾는 자료는 고작해야 뉴스기사 정도였고, 이 정도로는 깊이 있는 기획 의도와 명확한 프로덕트를 만들 수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의 결과물이 다소 아쉽게 나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3.KMAC PA

바로 위에서 겪었던 아쉬운 부분을 해소해보고 싶어 제안이 들어온 리서치 인턴에 원서를 넣었다. 다행히도 일을 바로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과정을 현재 겪고 있다.

이랜드에서 겪었던 회사생활과는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도적으로 문제를 발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Why 사고를 끊임없이 해야했던 것과는 달리, 여기서는 끊임없이 들어오는 일들을 말 그대로 '쳐내야' 하는 생활을 보내고 있다. 워드프로세서, 엑셀, 한글, PPT는 배운적도 없고 제대로 사용해본 적도 없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문서작업 하나 하는데도 하루 종일 걸려 진행했고, 알게모르게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했었다.

하는 일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VOC 분석 기초 만들기, PPT 활용 자료 Desk Research, 제안서 기반 문서 작성하기, 제안서 오탈자 체크 및 수정하기, 워크숍 준비물 챙기기, 인쇄물 준비하기, 편지 보내기, 스캔하기, 데이터 가공하기, 짐 나르기 등 모든 일들을 가리지 않고 하고 있다.

전문성을 생각하면, 일 경험을 생각하면, 이것은 커리어를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가끔 내가 뭐하고있나 싶기도 하지만, 이 업무들은 사실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알게 모르게 비즈니스 상대의 인상에 이미지를 심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가 명찰을 대충 만들거나, 서류를 대충 만든다면? 혹은 오탈자를 솎아내지 않아 그대로 상대방에게 틀린 철자로 된 자료가 간다면?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데 있어 그다지 좋은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기본도 못하는 회사에게 더 큰 일을 맡기고자 하는 바보는 없으니까.


이제야 1/3정도 한 상태이지만, 남은 기간동안은 어떻게든 더 치열하게 살아가려고 한다. 누군가는 나보고 이제 기회는 없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나이만 먹고 할 줄 아는 게 없다며 손가락질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보다 진입하는 게 조금씩 늦더라. 공부도, 대학도, 그리고 일도. 그래도 나름 잘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루하루 밟아나가다 보면, 무언가 반짝이는 조각을 발견하며 환하게 웃을 날도 올 거라 믿는다.


만일 이 글을 모두 읽어주셨다면 정말 감사드리고, 작은 행복의 조각을 발견하며 미소짓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연습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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