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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기일 Nov 02. 2019

미친 목련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좋아했다. 카메라 안에 다양한 그림들을 그리는 것이 가장 즐거웠었으니까 말이다. 요즘은 카메라 기술이 많이 발달해서 이 비싼 장비를 굳이 돈 주고 사지 않아도 수많은 사진을 어느 정도까지는 예쁘게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약간의 거무퀴퀴한 느낌이 드는 필름을 사용해서 사진을 찍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주머니 사정이 녹록치 않았기 때문에 어떤 구도로 사진을 찍을 지 머리를 싸매며 고민해야 했고, 수많은 고민 끝에 하나의 사진을 담아냈을 때는 정말 즐거웠다. 이 카메라를 통해서 보는 세상은 정말 그 자체로 소중했다. 대상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적당히, 모나지 않게 둥글둥글 담아냈을 때는, 자신의 조각과 사랑에 빠졌던 피그말리온 마냥 한참동안 그 사진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혹시나 누군가 나에게 사진에 대한 철학이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사실 그런 거창한 것은 없었다. 나는 그저 사진을 찍기 좋아하며, 고민하는 것을 약간 즐기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우연히 멋진 사진을 찍게 되었을 때, 원하던 색깔의 풍선을 쥔 아이마냥 즐거워하던, 약간은 어린 티가 나는 한 명의 사람이었을 뿐이다.

 

요즘은 디지털 기술이 많이들 발달해서 간단하게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많이 찍고, 그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잘 나왔는지 선별한다. 그렇게 선택받지 못한 사진들은 데이터베이스의 저편으로 보내진다. 혹은 그 존재가 사라지는 경우까지도 존재한다. 너무나도 간단히 찍힌 사진들이기 때문에 잊히기도 쉬운 작은 데이터들이기에, 이들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는 드물다.

 

사람들의 의식이 물질문명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인지, 혹은 그 반대인지는 나도 알 수 없다. 절대 결론이 날 수 없는 주제이고, 덕분에 여러가지 이론들이 나와있으니까. 분명한 것은, 의식과 물질문명은 함께한다는 것이다.

 

연애관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여러 사람을 만나보라는 많은 사람들의 말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간편한 디지털 카메라나 휴대전화에 내장된 카메라를 이용해서 수많은 사진을 찍으라는 의미로밖에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아날로그 인간이었고, 하나의 대상의 특징들을 미묘하게 잡아내며 행복함을 느끼는 나의 성격은 연애관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한 사람만을 소중히 여기고 싶어했고, 가볍게 누군가와 만난다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서론이 길었다. 그냥 담담하게 나의 찌질하다면 찌질했던, 순수했다면 순수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대학에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나는 밝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동기들과 지내는 것을 좋아했고, 시덥잖은 농담을 수시로 던지며 함께 웃으면서, 중앙광장 잔디밭에서 새내기 고대생이라면 누구나 만끽하는 그 기분을 느끼는 것을 좋아했다. 물론 취미도 그 시절의 나와 함께했다. 다람쥐길의 귀여운 다람쥐 동상을 보며, 어떤 구도로 찍을까 한참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사선으로 찍는 것이 가장 귀엽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조심스럽게 셔터를 눌러 다람쥐의 모습을 추억의 한 조각에 담았다. 애기능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고려대학교의 수많은 명물 중에서도 문과대학 서관 앞에 있는 미친목련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보통 다른 목련이 피는 시기와 다르게 혼자서 피어나는 모습을 담아내는 것은 항상 즐거웠다. 국제관에서 법대 신관으로 향하는 도중 주변에 누군가 없나 두리번거리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그 자태를 담아냈을 때, 쾌감은 말로 이루 표현 할 수 없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네 가지 계절의 모든 목련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고, 내 자취방의 책상에는 항상 이 네 컷의 사진들이 붙어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동기들과 시간을 보내다 혼자 맥주 한 캔을 들고 사진들을 보며 사색을 하곤 했다. 상상의 공간에 있는 나는 자유로웠고, 이 목련은 나에게 날아다닐 수 있는 힘을 주는 환상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하루 하루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웃고 떠드는 즐거운 생활은, 모종의 사건과 군입대라는 장벽이 내 삶의 셔터를 누름으로 평생 그 자리에 남게 되었다.

 

군대를 다녀오고 난 뒤의 학교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미묘하게 바뀐 것 같으면서도 바뀌지 않은 것 같은 학교의 모습은 나에게 약간의 위화감을 심어주었다. 함께하던 동기들은 모두 자신의 길을 걸어가느라 바빴고,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다. 역시 내가 가장 먼저 발걸음을 향한 곳은 목련 앞이었다.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었는지, 이 목련나무는 꽃이 만발해 그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바뀐 이 학교에서 목련만이 자신을 지키고 있었다. 

 

문득 목련이 보고싶어 3-4교시가 끝나고 그 앞으로 갔을 땐,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추억을 남기고 있었다. 오랜만에 찍는 목련의 사진이었기 때문에 더 신경 써서 찍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어림구도라도 잡아보려 했는데, 목련 앞에 무언가 아른거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와 수업을 같이 듣는 여성분이 그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화사했다.

 

학교에서 가장 아름다웠다고 생각했던 목련보다 은은하게 밝았고, 사시사철 변하는 모습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미친 목련보다도 다채로웠다. 혹시나 미친 목련을 보다 내가 미쳐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시 황급히 눈을 돌리고 다시 돌아봤는데, 변한 것은 없었다. 여전히 목련 주변은 일곱 빛깔로 가득 차 있었다. 예전에도 호감을 가진 적은 많았기 때문에, 단순히 호감이라는 생각을 계속 되뇌었다. 예전부터 호감을 가져도 적극적으로 표현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생각의 도랑으로 감정을 흘려버렸다.

 

단순히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했던 이 감정이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장 6교시가 그 분과 함께 듣는 수업이었다. 물론 수업만 간단히 듣고 나온다면 별 신경을 쓰지 않았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우리는 같은 조별 과제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교수님이 이름과 학번을 불러 주시며 우리가 어떤 조에 속하는지 알려주셨다. 이러쿵  저러쿵 조별과제를 진행해야 한다고 교수님께서 열변을 토하셨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문득 그 분이 어떤 조인지 궁금해서 유심히 쳐다보던 도중, 나와 같은 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름을 처음 들어보았기 때문에, 문득 그녀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함이 없이 부드럽게 나아가는 발음이 너무나도 이름의 주인을 잘 표현해 주는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의 이름에 대해서 이러한 감정을 느껴본 것도 처음이었다. 하필 첫 발표였기에, 우리 조는 모두 잠시 모여 이야기를 하기로 했고, 각자의 이름과 학번을 말했다. 풋풋하고 밝은 모습을 보며 새내기일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정말 새내기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는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도 그럴 게, 나와는 네 살 정도 차이가 났으니까 말이다. 조별 모임이 끝나고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말을 걸었으면 완벽했겠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내 마음 속에서 누군가 쾅쾅 두들기는 소리가 난다는 생각을 하며 모든 생각이 멈춰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후에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고 며칠이 지나갔다. 아, 물론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 둘 사이의 관계에 한정해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가까워지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생긴 변화를 살짝 말해보자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캠퍼스에 예쁘게 피어 있는 꽃들을 보면 그녀 생각이 났고,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나무를 보면 그녀도 하늘하늘 흔들릴까 잠시 망상을 펼쳤다. 이런 생각이 드는 빈도는 점점 잦아졌고, 내 마음은 점점 그 모습으로 인해 채워졌다. 짝사랑인데 채워진다는 표현이 이상할 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이 마음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그 때는 잘 모르고 있었다.

 

다시 한번 목련 앞으로 가 보았다. 흔히 보는 로맨스 드라마 같은, 환상적인 우연을 빚어내는 한 권의 소설같은 장면은 없었다. 내심 그녀가 목련 앞에 서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목련은 혼자서 그 자태를 뽐내고 있을 뿐이었다. 누구보다 빨리 꽃을 피우는 목련, 이유는 모르겠지만 누구보다 봄을 빨리 맞이하고 싶을 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지금의 나도 봄을 맞이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고, 목련과 크게 다르지 않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방에 있는 목련 컬렉션들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자취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취방은 목련과는 약간 떨어진 정문 쪽에 있었기 때문에 중앙광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없는 세월 동안 너무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서관 앞에 있던 건물은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이 세워지고 있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막상 밤에 그 모습을 보게 되니 감회가 남달랐다. 다른 사람들은 왜 감회가 남다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랬다. 흔히 복학생 벤치라고들 부르는 서관 옆의 벤치 근방에 비스듬히 만들어져 있는 길을 통해 내려갔다. 중앙광장을 지나는데 꽤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날이 따뜻해서 그런지, 음식을 시켜놓고 간단하게 맥주를 마시는 모습도 보였고 소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보였다. 혹시 그녀가 있나 조심스럽게 둘러보며 광장을 가로질렀지만, 그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정문을 통과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니 침대 하나와 사진들이 날 반겨주었다. 집 안 냉장고에는 항상 여러 맥주들이 구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습관처럼 냉장고를 열어 무엇을 마실까 고민하다가, 아사히 맥주 한 캔을 꺼냈다. 개인적으로 일본 맥주를 좋아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캔을 땄다. 목련나무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해졌다. 자기 작품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이런 감정인가 싶어 잠시 우두커니 서서 보고 있었다. 방 안에 있는 네 장의 목련 사진 중 화사하게 꽃을 피운 모습을 찍어 놓은 사진에 시선이 멈췄다. 귀엽게 웃고 있던 그녀가 생각나서 잠시 멈칫했다.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잘못은 절대 아니지만, 애초에 시간의 격차가 너무 많이 났다.

 

단순히 시간의 차이가 났기 때문에 망설임이 들었다면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사실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나를 보는 대다수의 동기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적어놓았지만, 그들과 나의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었다. 몇몇 동기들과는 아주 즐겁게 지냈고, 지금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지만, 그것도 소수의 친구들이었다. 

 

학교에 처음 들어와 느낀 것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동네 주민들이 더욱 많겠지만, 무언가를 배우는 장소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것은 처음 보았으니까. 또한 배우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더욱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고 충돌하는 곳이었다. 건전한 토론을 지향한다면, 누군가를 존중하고 싶다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이 옳을 터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한낱 꿈이었다. 건전한 토론을 지향하던 많은 이야기들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갈등관계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이익과 반하는 의견은 자신과 다른 영역에 서 있음을 전제하고, 심리적인 갈등을 부추기는 경우가 정말 많았다. 내 생각을 소신 있게 발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히려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꽤 많았다. 물론 잘못된 의견을 개진했기에 적이 많아졌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당시에 내가 했던 발언들은 꽤나 빠르게, 이 작은 사회에 받아들여지고 천천히 공동체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작은 감상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어쨌든 이런 시선들 때문에 같은 과의 누군가에게 다가간다는 것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다. 어쨌든 내 평판은 좋지 않았고, 내가 대다수의 동기들과 등을 돌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나의 이야기가 나 몰래 어딘가를 헤집고 다닌다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결국 마시던 맥주를 남김없이 비운 뒤, 냉장고 위에 얌전히 세워 두었다.  내 마음도 저렇게 얌전히 있어 달라는 소망을 담아서 세워 두었건만, 살짝 취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다 캔을 툭 치고 말았다. 시끄러운 소리가 내 귀를 찔렀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크다고 할 수 있는 변화가 시작된 것은 그날 밤이었다. 보통 알코올을 가볍게 섭취했다면 솔솔 잠이 오는 것이 당연한데, 머릿속에 자꾸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너무나도 예뻐 보였던 모습이 자꾸 아른아른 그려져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평균 수면시간에 비해 한참 부족하게 잠을 자게 되었고, 눈이 퀭한 상태로 수업을 나가야 했다. 하필 그 날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던 사람과 함께하는 수업이 있었고, 이 초췌함을 가리려 몇번이고 세수를 했다. 조금 나아졌나 싶어 거울을 봤지만, 별로 나아진 것은 없어 보였다. 결국 포기한 채로 강의실로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조별로 앉아야 했기 때문에 나는 우리 조를 찾아가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부드러운 향이 내 코를 간지럽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목련꽃 향기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 냄새가 나는 쪽을 바라봤는데, 그녀가 휴대전화를 만지고 있었다. 오늘도 그녀는 생글생글 웃고있었다. 화사하게 핀 목련 앞에서 사진을 찍던 모습이 생각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웃음이 나오는 말일수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향기와 닮았기 때문에, 그녀는 내 마음에 더욱 짙은 향을 남겼다.

 

잠깐이나마 고민했다. 어떤 단어를 전해야 할 지, 어떤 이야기로 이끌어 나가야 할 지. 접점은 아무것도 없던 내가, 이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다가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저런 고민을 내 머릿속에서 그리던 도중, 조별로 이야기를 해 보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있으셨기 때문에, 그 생각은 설레설레 흩어졌다. 우리는 하나의 시에 대해서 논했다. 하지만 시가 어떤 느낌인지는 전혀 신경 쓸 수 없었다. 그냥 그 친구에게 모든 정신이 쏠려 있었으니까.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가 그녀의 형태를 그린 것 같았고, 그 형태는 내 마음 속에 다시 한번 새겨졌다.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수업이 끝나고  나는 쭈뼛쭈뼛 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아무런 접점도 없고, 단지 같은 조라는 연결고리만이 있었을 뿐이지만,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정말 적은 정보 뿐이었으니까. 같은 조였기 때문이었는지, 그녀는 나에게 웃으면서 번호를 알려주었다.

 

단순히 번호를 알고 연락만 하면 되지 않을까 하던 나의 안일한 생각은 불과 몇 시간만에 박살이 나버렸다. 첫 문장을 뭐라고 보내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첫 문장에 함께 밥이나 먹을까요?라고 하는 것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어선 행동이었고, 그렇다고 단순히 '안녕하세요' 라는 말을 보내기에는 너무나도 성의가 없어 보여 계속 지우고 쓰는 행동만을 반복하고만 있었다.

 

결국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정말 별 것 아닌 하나의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답장이 오지 않아 그 시간동안 계속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결국 천년 같던 시간 후에 온 답장은 정말 간단한 대답이었다. 그런데 웬걸, 여기서 답장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 또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같은 단어들을 썼다 지우고, 친구들에게 어떻게 보내야 할 지 물어보기도 하고, 고민과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나는 간신히 밥 한끼 하자는 연락을 보낼 수 있었다.

 

이 친구는 답장이 꽤나 느린 편이었나 보다. 다시 나는 대답 없는 시간 속에서 온갖 생각들의 파도에 휩쓸리고 말았고, 감정선의 요동침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렇게 고통의 시간을 보낸 후, 나는 결국 그렇게 하자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간신히 날짜와 시간을 잡고, 그 날 만을 기다리는 나날이 시작됐다.


그 나날들 동안 주고받기를 계속했던 메시지들은, 하나같이 의미 없는 무미건조한 메시지들 뿐이었다. 이 모든 메시지들을 보내고 받으면서 나는 오직 하나의 생각에만 몰두했던 것 같다. ‘당신을 알고 싶다’라는 간단한 생각이었지만, 공통점이 생각보다 없었던 것인지, 그 친구가 그저 나에게 관심이 없었는지 돌아오는 대답들은 눈물이 날 만큼 애매한 지표들이었다. 


결국 시간은 흐르고 흘러, 약속의 시간 전날까지 하염없이 흘러갔다. 전날 밤이 가장 긴장되었던 것 같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긴장해 본 경험이 있었던가.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긴장하는 수능 시험에서도 이렇게까지 떨어본 기억이 없었다. 결국 나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게 되었고, 제대로 수면도 취하지 못한 채 그 친구와 함께하는 수업으로 향했다.


“저희 오늘 밥 먹기로 한 것 맞죠?”


미묘하게 스며오는 향에 그 친구가 거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변에 가면 아까말했듯 항상 같은 향기가 났었고, 정말 이상하게도 그 향기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한번씩, 혹시나 눈이 마주칠까 걱정하며 소심하게 돌리게 하는 은은한 향기였다.


“네 맞아요. 혹시 드시고 싶은 것 있으세요?”


흔히들 밥약이라고 부르는 자리는 많이 해봤지만, 마음에 그득하게 자리잡은 사람과 함께 밥약속을 한다는 것은 살면서 처음이었기에, 메뉴조차 제대로 제시할 수 없었다. 보통 선배라고 하면 안암 맛집을 제시하며 새내기 후배님에게 소개하는 모습을 기대할 만 한데, 나는 복학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결국 메뉴는 그 친구가 제시한 것 중 하나로 결정되었다. 


수업이 끝난 후, 저녁시간이었기에 우리는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그 친구가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는 계속해서 마음에 따뜻하게 와 닿았다. 정말 사소한 것일지라도, 자신은 달콤한 게 좋다든가, 이런 스타일의 노래가 좋다든가 하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물어볼 수 있는 것들이라도, 모두 그 사람을 이루는 하나의 색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생각이 든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부드럽게 스미지 않았나 싶다. 머리보다는 마음으로 느끼던 것이 더 큰 느낌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정작 밥을 먹는 자리에서 나는 거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을 계속해서 듣다 보니, 네 살이라는 차이가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당시에 하고 있던 고민들은 학기 초 새내기라면 잘 생각하지 않는 것들이었고, 혹시나 내가 계속해서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꺼낸다면 공감하기 힘들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대부분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식사자리는 끝이 났다.


그 친구를 환하게 웃으며 역까지 마중해준 후, 그 친구에게 조심해서 들어가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형식적인 답장인지, 친해진 사람의 답장인지 구분이 잘 가지는 않았지만 답장이 오긴 했다. 그렇게 연락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그 후에 연락이 잘 되지는 않았다. 수업에서 마주쳤을 때도, 그저 웃음과 함께 인사만 나누었을 뿐, 사담을 할 수는 없었다.


그 후에 나 혼자 조바심이 났던 것인지, 시덥잖은 이야기들로 대화를 이어가려 했던 것이 그 친구에게는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금 돌아보면,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 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느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안하기도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처하기 싫은 상황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사과의 마음을 가지고 학기의 나머지 시간을 흘려보냈다. 


시덥잖은 이야기들로 서서히 친해지며 서로를 알아가며, 관계를 쌓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애초에 마음이 너무 커지면, 그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뭔가를 하려고 해도 몇 번씩 곱씹어보게 되고, 혹시나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폐가 되지는 않는지 고민하게 되니까 말이다. 


방학동안 그 친구와 연락을 하는 일은 없었다. 연락을 하지 않으니 근황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서서히 잊어가고 있던 찰나, 카메라 앨범을 정리하다가 하나의 사진을 발견했다. 내려오기 직전에 찍었던 목련 사진이었다.


종강 후에 집에 내려가기 전, 서관 앞으로 향했었다. 바보같이 구석에 서 있는 목련을 보고 있으니 마치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지 못한 것이었고, 그 친구에게는 그저 그런 사람이라는 인상만 심어주었을 뿐이다. 어차피 이 목련도 똑같았다. 누구보다 일찍이 꽃을 피우고, 일찍이 꽃이 지고 나면 보통 그 존재는 다음 꽃이 필 때까지는 잊힌다. 나와 다르지 않다. 나는 너무 빠르게 혼자만의 봄을 맞이했다. 그런 바보 같은 여름의 목련 사진을 몇 장 카메라에 담았다.


이제 보니, 내가 담아 놓은 꽃이 지고 난 뒤의 목련의 모습도 조금 봐 줄만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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