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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기일 Nov 02. 2019

복학생 벤치

항상 계획을 세우며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페르소의 의견이었다.


"너가 할 수 있는 것은 사회가 요구하는 양식에 맞춰서, 계속해서 너를 만들어 나가는 것 밖에 없어."


이렇게 말하며 가만히 담배를 한 모금씩 빨아들이고 있는 친구의 모습은 생각보다 쓸쓸해 보였다.

연기가 자욱해지기 시작하자 담뱃불도 서서히 꺼져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러기 싫은데."


굳이 말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아 최대한 간결한 문장으로 내 의사를 전달했다. 물론 이 문장이 싸우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야 알고 있었지만,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지금 우리는 대학생이지. 우리가 해야할 것은 무엇이지? 공부, 공부, 그리고 공부! 그렇다고 공부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 아니, 우리는 여러 업적을 쌓아야 하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나는 여기 있는 이 사람들과는 같은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무수한 시체들의 무덤 위에 올라타기 위해서 우린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단 말이야. 그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시체들 위에 직장이라는 깃발을 꽂고 나면, 그렇게 끝이 날까? 우리는 또 다른 시체더미들을 만들어야 할 것이고, 또 다른 깃발을 꽃아넣어야 하겠지. 그렇다면 그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결국 수많은 사람들을 밟고 올라서 있는 피비린내로 가득한 내 자신만이 남을 거야. 결국 인생은 고독할 뿐이지.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려면, 뒤쳐지지 않으며 모두에게 광명 가득한 사람이라는 찬사를 들으려면, 결국 우리는 항상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는 말이야. 그런데 넌 그렇게 하고 있나? 전혀!"


나에게 쏘아붙이고는 담배 한 가치에 불을 붙이는 모습을 보니, 뭔지 모를 환멸감이 들었다. 단순히 날 깎아내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가치관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논리가 나에게는 너무나도, 불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뭔가 말하려고 하기도 전에 페르소는 입을 열고 주절주절, 더러운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지금 네 모습을 봐. 아는 게 뭐가있지? 네 전공에 대해서 뭘 알고있지? 학교에서 수업을 들었던 것 중, 너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뭐가 있느냐는 말이야. 다른 학생들은 교수님이 말씀해 주신 것을 모조리 받아적으며, 자신들의 세계를 넓혀가고 있지. 하나하나 외우며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하나 둘 늘려가고,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보다 훨씬 넓은 세계를 구축하겠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넌 결국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단 말이야. 다른 학생들이 목표를 가지고 가는 것과는 다르게, 너는 아무런 그림도 생각하지 않고 수업에 들어가지. 교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어본 적은 있나? 아니, 절대! 네 미련한 고집에 붙잡힌 네가, 교수님이 말하는 것조차 제대로 듣지 않는 오만방자한 인간이라는 증거지."


그렇게 말을 하는 동안 그의 손에 들려있던 담배가 절반이 타들어간 것이 보였다. 더럽게도 말이 많은 놈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어느정도 사실이었다. 나는 수업에 들어간다 해도, 수업을 잘 듣지 않았다. 뭔가 나와 맞지 않는다 싶으면 그 자리를 피해버렸고, 외워야 할 것이 생기면, 의무감에 공부를 하기 싫어했다. 어떤 원대한 목표보다는 그 하루의 분위기에 휘둘리는 사람이었다.


"그 결과로, 너는 그 모양 그 꼴을 하고, 적지 않은 나이에 학교를 다니며 변변찮은 성적조차 받지 못하고 있지. 공부를 하면 나온다는 그 성적조차 받지 못하면서 말이야. 지금 네 모습은 어떻지? 추하다고! 너무나도 한심하고 볼품없어서 헛웃음만 나오는, 패배자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그런 모습이라는거지. 넌 낙오자이며, 실패자이며, 그 누구에게도 승리하지 못한 패배자라고!"


그는 마치 내 모습이 담배꽁초같다는 듯, 담배꽁초를 들어올리더니 나와 번갈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공부는 왜 하는거지? 아니, 애초에 공부가 무엇인데?"


내가 던진 질문에 페르소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는 나에 대한 비웃음을 숨길 생각이 없어보였다. 


"아까 내가 장황하게 말해주지 않았나? 내가 말한 것의 요지조차 파악을 못하는 것을 보니, 정말 구제불능이구만. 그냥 썩어서 쓰레기통에 들어가면 딱 되겠어. 친구들이 필요하면 넌 참 편하겠어. 곳곳에 널린 게 친구들이니 말이야."


나를 향한 친구의 언사는 더욱 더 난폭해졌고, 당연히 내 기분은 좋을 리가 없었다. 방금 페르소가 버린 담배꽁초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 더욱 기분이 언짢아졌다. 수업 시간에 배우는 것이 전부라는 이 짜증나는 친구의 말에 나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었다. 


"잘 모르겠으니까 한 번만 더 말해줘."


화가 났지만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페르소에게 부탁하듯 말했다. 페르소는 거만한 표정을 짓더니, 날 잠시 내려다보았다. 


"남들보다 더욱 올라가기 위해서, 짓밟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는 말이야! 지식이 없으면 나아지지 못하지. 그리고 그 지식을 대변하는 것은 학점, 학점이라고! 학점을 잘 받으면 학교에서 더 좋은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지. 그것은 미래와 직결될 것이고, 더욱 더 많은 것들을 보며, 남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많은 것들을 접하겠지. 그럼, 결국 공부를 하는 이유? 남들보다 잘나기 위해서라는거지. 알아들었나? 머저리?"


   짜증이 솟구쳤다. 어쩜 이렇게 거만하고 예의없이 굴 수 있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정도로 재수없는 사람일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페르소의 눈을 피했다. 난 잘못한 게 없었지만, 그냥 더 이상 앞에 서 있는 것 조차 힘들었다. 머릿속이 소용돌이쳤다.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이유는 더 나은 진리를 찾기 위함일까, 혹은 단지 학점만을 위한 것일까, 혹은 자기 발전을 위한 것일까. 모든 사람은 다른 답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내 앞의 악마의 관점은, 수많은 사람들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었다. 목표라기보다는, 울며 겨자먹기로 하고 있을 터였다. 공허한 배움을 위해, 단지 적용만을 위해, 회색빛을 띠고 있는 형체가 뚜렷하지 않은 무언가를 위해.


아아, 하지만 난 페르소에게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입조차 열지 못하는 나는 무기력하고, 무엇 하나 잘난 것 없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칠흑 속에서 헤엄치며, 빛을 찾을 수 있다고 믿지만, 반짝임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페르소는 눈을 피하는 나를 보더니, 입에 장난기를 머금었다. 


"한 번 믿어봐, 네 그 오만하기 짝이 없고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허영된 희망을. 내가 더러운 말을 해도 결국은 더럽혀지지 않는 거만한 꿈을."


페르소가 가운뎃손가락을 올리며 말했다.


"결국 아무것도 못하겠지만, 믿어보렴."


그리고, 페르소는 사라졌다.


담배꽁초만이 조용히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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