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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기일 Nov 14. 2019

초침을 멈춘다면

-대학수학능력시험

눈을 떴다. 바람이 날카로웠다. 아까는 분명 따뜻한 날씨였는데. 꽃샘바람인가 보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 앞에 익숙한 학교가 보였다. 분명 내가 한참 전 시험을 치렀던 장소다. 19년의 시간을 평가받는 장소 치고는 너무나도 초라했기에 실망했던 기억이 있었다.


학교 앞은 북적거렸다. 분명 고등학생들은 방학을 했을 텐데, 왜 이렇게 요란한지. 


담배가 피고 싶어져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항상 있던 담배는 어디로 갔는지 느껴지지 않았고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 내가 어제 담배를 여기에 넣어두었을 텐데.


결국 주변의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에 들어가 직원분께 담배를 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신분증을 보여 달라 하시기에 지갑을 열어 신분증을 보여드렸다. 


“아직 학생 아니야? 학생은 안돼~”


너무나도 능청스럽게 말씀하시는 직원분의 말에 장난인 줄 알고 대충 받아들였다. 애초에 어리게 생긴 외모 덕에 이런 말을 자주 듣곤 했기 때문에 별로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기다려도 직원분은 담배를 주시지 않았다. 결국 계속 기다리다, 직원분께 쫓겨나고 말았다. 어처구니가 없어 한마디 하려 했지만, 걸리는 것이 있었다. 난 분명 신분증을 보여드렸다. 신분증을 보여드렸지만, 날 학생이라고 하신 것이다. 설마 하는 마음에 휴대전화를 열어보았다. 맞다. 열어보았다. 폴더폰이었다.


휴대전화 액정에는 D-0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싶었다. 나는 디데이 설정을 거의 하지 않았었다. 살면서 단 한번 했었다. 분명, 수능 디데이는 표시 해 놓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혼란스러웠다. 내가 왜 돌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혹시 난 계속해서 꿈을 꾸고 있었고, 사실은 수능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내 머릿속엔 수능 관련 지식은 사라진 지 오래였으니까. 머릿속에는 전공지식만 가득했고, 아니, 사실 전공지식도 없었다. 그냥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상황이 꿈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현실적이었고, 그렇다고 내가 지금 무언가를 할 수 있나 생각해봐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나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 시간을 살아가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돌아가지 못한다면 나는 이 수능 시험의 결과에 따라 살게 될 것이고, 내가 살던 삶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양상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수능 시험을 최대한 열심히 봐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열어보았다. 안에는 수험표와 컴퓨터용 사인펜이 있었다. 샤프도 있었지만, 수능 시험장 샤프가 있으니 크게 필요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일단 제쳐 두었다. 참고서는 단 한 권도 없었다. 요점정리 노트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수능 시험날에 봐도 크게 의미 없다는 생각에 두고 왔었다. 대신 어머니가 해 주신 김밥이 보였다. 수능 두 달 전부터 먹는 것에도 익숙해져야 한다며 김밥만 먹었었지 참. 결국 수능날까지 점심은 무조건 김밥을 먹고 한동안은 쳐다보지도 않았던 기억이 났다. 덤으로 어머니의 따뜻함도 잠시 추억했다.

시험 장소는 아까 그 익숙한 학교였다. 내가 겪었던 일들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심지어 자리까지도 내가 문제를 풀었던 때와 같은 곳이었다. 자리에 앉아 가만히 있었다. 가져온 게 없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도중 분명 잠을 깨겠다고 신 맛 스키틀즈를 먹었던 기억이 났다. 가방 앞주머니를 열어보니 역시나였다.


스키틀즈를 입 안에 넣고 굴리며 시험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내가 어떤 생각으로 문제를 풀었었더라. 아마도 그동안 공부한 것은 많으니, 그냥 아는 것만 다 맞자는 마음가짐이었다. 물론 국어부터 꼬이긴 했었지만.

국어 시험이 시작되었다. 분주하게 시험지를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마다 시작하는 포인트가 달랐었는데, 나는 항상 문법부터 풀었었다. 그래서 문법부터 풀기로 하고 11번 문제로 바로 넘어갔다.


‘모르겠다.’


문제를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문법 지식은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져 있었다. 검은 것은 글씨요, 하얀 것은 종이였다. 결국 보기를 하나하나 읽으며 천천히 풀어나갔다. 천천히 풀어보니 어느 정도는 다 푼 것 같았다. 풀다 보니 슈퍼문 지문이 나왔다. 지금이라면 읽고 이해하며 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해가 가지 않으면 곧바로 다음 문제로 넘어가자는 것이 그때의 내 원칙이었다. 결국 시간이 남으면 풀기로 했다. 어찌어찌 한 바퀴를 돌렸는데, 정확히 20분 남아있었다. 그제야 별표 쳐 놓은 문제들을 읽기 시작했다. 관동별곡은 지금 봐도 무슨 소리인지 알아먹을 수 없었고, 결국 별표 친 일곱 문제 중 두 문제는 찍을 수밖에 없었다.


국어가 어려웠던 기억은 있지만, 다시 보니 더욱더 남달랐다. 내 기억에는 그때 85점을 맞았었지만, 그 당시에는 국어는 3등급만 기대하자고 생각했다. 아는 것은 다 풀긴 했으니, 나머지 문제를 다 맞자라며 자신을 다독였었다. 하지만 뭐, 지금은 그날만큼 당황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 시간을 한번 더 지나는 것에 불과했으니까.

 

잠깐의 쉬는 시간이 지난 후, 수학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난 수학을 다 맞을 자신이 없었다. 왜냐하면 난 30번 문제에 너무나도 취약했으니까. 살면서 30번 문제를 맞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수학 시험지를 받자마자 문제들을 확인해 보았다. 국어도 똑같았으니, 수학 또한 똑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그 수학 시험의 마지막 문제 답만큼은 아직도 기억났기 때문에, 120을 적어 놓고 시작했다. 30번 문제만 맞으면 수학은 100점이었기 때문에, 가볍게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다른 문제의 개념이 기억나지를 않아 결국 하나를 풀지 못했다. 결과는 예전과 똑같았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왔다. 생각해보니 같은 고사장에서 시험을 치는 고등학교 친구가 있었다. 내 원래 시간에서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다. 그 친구가 나에게 걸어오더니 함께 밥을 먹자 했다. 난 김밥을 먹었고, 그 친구는 일반 도시락을 먹었다. 배가 너무 부르면 졸릴 것 같아 절반 정도만 먹었다. 친구는 배가 고팠는지 밥알 한 톨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기분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스무 살 때나 지금이나 정말이지 하나도 변한 게 없는 친구였다. 이 친구는 자신이 어떤 성적을 받게 될지 알까 생각이 들었다. 미리 말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냥 나만의 생각으로 남겨두었다.


영어는 큰 문제없었다. 영어를 좋아하기도 했고, 그 해 영어가 워낙 쉬웠으니까. 영어야 뭐, 무난하게 풀었다. 대신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세 번을 검토했다. 영어시간은 가장 빠르게 지나갔다.


탐구 시간에는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때 어땠지, 생각해 보니 그때도 집중력이 흐트러졌었다. 그리고 지금 내 신체 나이는 스무 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차피 한국 지리에서 네 개 틀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냥 되는대로 풀었다. 여태까지의 양상을 보아하니, 어떤 짓을 해도 내가 받을 점수는 똑같을 것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모든 영역이 끝나고, 교실을 나왔다. 모두들 분주했다. 시험이 끝났다는 기쁨에 환하게 웃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고, 시험을 망쳤다는 생각에 울상인 친구들도 있었다. 친구는 먼저 갔는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그대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학교를 빠져나가는 학생들이 보였고, 나 또한 걸어 나가고 있었다. 내가 걸어 나가고 있었다. 내가 걸어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와는 분리된 채로, 천천히 발을 내딛고  있었다.


그 해 수능 시험을 보고,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지금이야 결과를 모두 알고 있지만, 그때는 시험을 망쳤다는 생각에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났다. 정시로 XX대학교를 가려면 어느 정도의 점수가 필요한지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두 번째 도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준을 제대로 만족하지 못했다는 것에 큰 절망을 느꼈었다. 그때는 정말 XX대학교가 내 삶의 목표의 전부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어서 그런지 더욱 적적했다. 지금은 안다.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수험생의 입장에선 다르다. 자신의 살아온 모든 세월을 바친 중요한 시험이고, 그만큼 이 사건은 어떤 것에도 비견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말을 걸어도 되나 잠시 고민했다. 천천히 내 뒤로 다가가서 어깨를 다독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현재의 나를 느낄 수 없는 것 같았다.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내 뒤를 쫓아가다 결국 내가 눈물을 남모르게 훔쳤던 장소에 도착했다. 그때의 나는 울기 시작했다. 


함께 한 시간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다독여주면서, 들리지 않는 말들을 건넸다. 

그동안 공부하느라 마음 힘들었을 것이라고.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해도, 더 예쁜 세상이 널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마음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너의 삶은 이제 시작이라고.


수능은 결국 수많은 너의 결 중 극히 일부분만을 보는 것이라고, 너의 수많은 다른 결들은 널 앞으로 더 따뜻한 미래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너는 네가 살아가고 있는 흐름의 한 부분에서 최선을 다 한 것이라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말로 고생했다고.


한참을 허공에 말했지만, 내 말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과거의 나의 마음 한 구석에라도 조그맣게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현역 때도 울고, 재수 때도 울었으니까. 결과가 어떻게 되든, 다 너의 다음을 위한 발자국이니까.


그때, 내가 왜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기억났다. 내가 죽으려 하기 전, 누군가 나에게 물었었다. 초침을 단 한 번만 돌릴 수 있다면, 어디로 돌아갈 것이냐고.


망설임 없이 재수할 때의 수능이라고 대답했었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고, 목표가 사라져 버린 난, 그 후 몇 년 동안 방황했었다. 공부도 하지 않았고,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었다. 그때의 상처에 너무 깊이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면 지금은 더욱 나아지지 않았을까.


과거의 나에게 속삭이고 싶었다. 그래서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리고, 수능 시험을 본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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