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목요일 점심은 전 팀원이 함께한다. 번역할 때 고민됐던 표현이 있으면 상의도 하고, 거래처의 새로운 요구 사항도 공유하고, 일하면서 힘든 것도 나누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그랬던 모임이 뒷담화의 장으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중심엔 언제나 은희가 있었다.
은희는 번역팀 팀장으로 이 회사에만 20년 가까이 다니고 있다. 경력직으로 들어온 내게 서로 편하게 말을 놓자고 먼저 제안한 건 은희였다. 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은희는 팀을 대표해 여기저기 불려가거나 팀원들보다 상사와 직접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은희는 의사 표현을 확실히 하는 성격이 못 된다. 그러다 보니 쌓이는 게 많았다. 게다가 연차도 높다 보니 우리보단 고급 정보가 많았다. 은희는 일주일간 담아둔 스트레스를 비롯해 이곳저곳에서 들은 회사 소식이나 누군가에 대한 소문 등을 목요일 점심이면 한꺼번에 풀어놓았다. 나머지 팀원들은 모르는 뒷얘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맞장구를 쳤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저번에 강 부장랑 점심 먹었는데 강 부장이 뭐라는 줄 알아? 아, 나 진짜 어이가 없어서”
“왜요 왜요? 또 이상한 소리했어요?”
“자기는 여기 그만두면 카페 차려서 편하게 살 거래. 그러면서 나보고는 여기 그만두면 할 거 없지 않냐면서 열심히 다녀야겠대.”
“헐 진짜요? 대~박”
“와이프 집이 그렇게 부자라잖아. 그래도 그렇지. 회사 부하직원한테까지 돈 자랑을 해야겠냐? 하여튼 인간이.”
하루는 늘 자기만 뒷담화를 하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은희는 팀원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뭐 힘든 거 없었어? 다들 풀어놔 봐”
‘어서 말해 봐. 나만 못된 거 아니잖아. 너희도 불만 많잖아.’ 하는 표정이 다분히 보였다. 다들 뭔가 할 말은 많아 보였지만 선뜻 나서지 않자 은희는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우리가 이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야지 어디서 풀겠어. 안 그래? 우리끼리 있을 때 욕도 하고 그러는 거지. 쌓아두면 병 생겨.”
은희의 말은 꽤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언제나 듣기만 하던 팀원들은 하나둘 쌓인 얘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엔 다들 조심스럽게 꺼냈지만 어느덧 서로의 얘기에 흥분하고 같이 화내주고 그러다 점점 말도 과격해졌다. 뒷담화의 대상은 바로 위 상사에서 다른 팀 사람, 임원, 대표까지 퍼져갔다. 직접 겪은 얘기부터 일명 ‘카더라’하는 식의 출처가 불분명한 얘기, ‘그런 거 아냐?’ 하는 추측성 얘기까지 내용도 방대하고 거침도 없었다.
유발 하라리 말에 따르면 뒷담화 능력 덕에 호모 사피엔스가 세계를 정복했다지만, 우리는 뒷담화 타임 덕에 회사를 정복한 느낌이었다. 부장, 전무, 대표할 것 없이 다 우리 밑에 있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의 부족함을 지적하고 “나 같으면 그렇게 안 한다”며 상대를 열등한 존재로 만들고 한심하게 바라보면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고 우쭐한 마음이 생긴다. 적어도 난 그보단 나은 사람 같으니까. 하지만 얼마 못 가 공허하다. 그냥 기분이 그럴 뿐인 거니까. 실제가 아니고.
난 슬슬 현타가 왔다. 아무리 잘난 척해봐야 난 부장이나 전무의 밑이고 대표 회사의 직원인걸. 게다가 한참 험담의 세계에 빠져있으면 어디선가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넌 뭐 잘났냐?’라며. 그럼 혼자 얼굴이 화끈했다. 실은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나도 일에 실수가 있고, 판단을 잘못할 때도 있고 무엇보다 떳떳하게 인격적으로 훌륭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뒤에서 신나게 남 험담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누가 누굴 욕하나.
현실에 눈뜨면 급격히 낮은 자세가 되었다. 아, 이러지 말자. 듣는 것까진 어쩔 수 없되 적어도 가담은 하지 말자.
그랬다. 분명 그랬다. 하지만 무슨 일인가 생기고 마음이 갑갑해지면 다시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라며 열을 올렸다. 예를 들면 지난번 회의 같은 일이. 난 빨리 목요일 점심이 돌아오길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