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중학생 때부터? 아니 그보단 더 어렸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엄마가 나보다 더 어른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보다 많이 아는 것 같지 않았다.
엄마는 귀신 같이 나의 생각을 간파했다. 어쩌면 간파했다기보다 자격지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를 무시해?”라는 말을 자주 한 걸로 봐선.
엄마가 배움이 짧았던 건 사실이지만 내 생각은 단순한 지식에서 비롯한 건 아니었다. 엄마의 생각이 내 생각을 넘지 못함을 느꼈다. 내가 느긋하게 엄마를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다. 엄마와 내가 입장이 뒤바뀐 것 같았다.
엄마를 보고 있으면 머릿속에 많은 물음표가 떴다. 엄마는 왜 저렇게 말할까? 왜 저런 행동을 할까? 왜 저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할까? 하나하나 말해주고 싶었다. “엄마, 그건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엄마, 말을 왜 그렇게 해. 듣는 사람 상처받게.” “엄마, 어른이면 감정을 누를 줄도 알아야지.” 말하진 못했다.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삼킨 말들은 감정이 되어 끓어올랐다. 하지만 난 죽을힘을 다해 태연한 척했다. 왜냐고? 난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엄마를 닮고 싶지 않았으니까.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에게 자주 하던 말이 있었다. “애처럼 굴리마.” 지금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애가 애처럼 구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그때 아니면 언제 애처럼 굴 수 있다고.
‘애처럼 굴지 마’란 말은 여러 곳에서 힘을 발휘했다. 일단 난 떼를 써본 일이 없다. 뭔가가 필요할 때조차 부모님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포기할 건 포기했다. 꼭 이야기를 해야 할 땐 미루고 미루다 마치 죄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겨우 말을 꺼냈다.
토라지거나 화내는 일도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섭섭함이 가득 밀려와도 절대로 서운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토라지고 화내는 일은 몹시 유아적인 행동이라 여겼다.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최대로 이해하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면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웬만해서는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없었다. 모르면 쉽게 묻는 대신 찾아보고, 끙끙 앓더라도 혼자 해결하려 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에 도움을 청하는 건 민폐이자 게으름이라 생각했다.
애처럼 굴지 않으려는 노력은 실은 엄마 같지 않으려는 과한 강박이었다. 동시에 아이 같은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은 갈망이었다. 내겐 차가운 엄마가 친지들 앞에서 하는 “얘는 뭐든 제가 알아서 잘해”란 말이 커다란 칭찬처럼 들렸다. 지금은 이 말이 슬픔으로 다가오지만.
상담 선생님은 비슷한 나이의 같은 성별 혹은 비슷하게 우위에 있는 사람에게서 부모를 보는 일은 흔하다고 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혼란스러웠다. 빠르게 엄마와 상사를 비교해 봤다.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압도적인 권력이 있었다. 아이에게 엄마는 생명줄 같은 존재였고, 상사는 인사권을 갖고 있었다. 싫어도 함부로 저항할 수 없었다. 둘 다 내 눈엔 빈 구석이 많이 보였다. 엄마처럼 상사의 생각과 행동도 난 훤히 읽을 수 있었다.
상사를 대하던 당시의 감정을 하나하나 되짚어봤다. 아찔했다. 난 엄마를 보듯 상사를 봤다. 때로는 안타깝게 때로는 한심하게. 그럴수록 그릇되거나 부족한 행동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왜 저럴까'에 집착했다.
어쩌면 난 어릴 때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행동을 상사에게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알려주고 타이르고, 가끔은 분노를 터뜨리고. 그러면서 동시에 인정을 갈구하고. 엄마에게 받고 싶었던 인정을 여기서 얻어내려 했던 건 아닐까. "나 좀 봐줘"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