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따돌림
[앞 글에 이어]
언젠가부터 팀 내 공기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팀원들이 어쩐지 나를 피하는 것 같았다. 무슨 일만 있어도 곧바로 카톡을 보내던 영서도 조용했다. 내가 먼저 톡을 보내도 단답형의 대답만 돌아올 뿐. 처음엔 바쁜가 보다 했다. 나도 계속 바빴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누군가와의 대화 끝에 '팀 내에 나만 모르는 뭔가가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그건 팀장과 연관됐다는 직감이 스쳤다. 순간 불안감이 밀려왔다. 뭐지? 난 카톡을 열어 영서를 찾았다.
[영서야, 혹시 양 팀장하고 팀원들이 모여서 내 얘기했니?]
초조해졌다. 내 직감이 맞으면 어쩌지.
[아, 그게] 하는 영서의 대답에 심장이 덜컹하고 내려앉았다. ‘맞는구나….’ 영서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어 답했다.
[양 팀장이 팀원들을 한 명씩 따로 불렀어.]
[한 명씩 따로?]
[어. 한 명 한 명 불러선 너랑 일하기 어떠냐고. 힘들지 않냐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와, 이게 팀장이란 사람이 할 짓인가?! 이렇게까지 바닥이었나?’ 요 며칠 나는 양 팀장과 마찰이 있었다. 더 끼워 넣을 스케줄이 안 되는데 양 팀장은 무리하게 업무를 던져줬고 난 조정을 부탁했지만 양 팀장은 대뜸 화를 냈다. 혼자 힘드냐며, 못 할 이유가 뭐냐며. 난 일일이 내 스케줄 상황을 확인시켰지만 양 팀장은 듣기조차 싫어하며 나를 마치 일하기 싫어 뺀질 대는 애 취급을 했다.
꼭 이 일이 아니어도 그간 양 팀장과는 불편한 관계였다. 워낙 기분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은 ‘또 그러나 보다’하고 넘어가는데 난 그게 잘 안 됐다. 아마도 얼굴에 싫은 티가 다 났을 것이다. 그런 내가 못마땅한 양 팀장은 가끔 괜한 걸 트집 잡기도 했는데, 난 그럴 때면 기존 서류를 찾아서 들이밀며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시켰다. 그러니 쉽게 대할 수도 없었다. 말 그대로 눈엣가시였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유치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순간 열이 올라 애꿎은 영서에게 따지듯 물었다.
[질문이야, 동의를 구하는 거야? 아님 뭐 이간질이라도 하는 거야?]
[나도 좀 어이가 없긴 하더라. 그래서 난 그냥 아무 말도 안 했어.]
아무 말도 안 했다는 말을 영서는 변명처럼 했지만 난 그게 더 괘씸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내가 힘들긴 했다는 거야? 내가 자기한테 힘들게 한 게 뭐가 있다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간 느낀 이상한 기운이 괜한 게 아니었다. 말로만 듣던 직장 내 따돌림이 우리 회사, 우리 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니. 그것도 내가 대상이 된 채. 이들과 함께한 지는 10년 이상이 됐다. 10년 세월이 무색하게 부장의 몇 마디에 이렇게 단박에 돌아설 수가 있나. 그것도 평소엔 그렇게들 모여서 부장 욕을 하면서.
생각할수록 열이 올라왔지만 이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긴 팀 내 권력자가 그렇게 묻는데 뭐라고 답할까. 애초에 그렇게 묻는 사람이 잘못이지. 말은 말하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무게가 다르다. 동료가 열을 내며 “걔 좀 별로지 않냐?”는 말은 듣고 흘릴 수 있어도, 대표가 무심코 하는 “그 사람은 좀 어떤가?” 하는 말은 두고두고 의미를 찾게 된다. 그래서 높은 위치에 있을수록 말과 행동을 가볍게 하지 말아야 하고, 더불어, 자신에게 부여된 무게를 함부로 휘두르면 안 된다. 하지만 양 팀장은 반대로 행동했다.
마음이 복잡했다. 다른 이들은 ‘그래 그럴 수 있다’ 쳐도 그간 가깝다고 생각했던 영서마저 한 편에 섰다고 생각하니 서운함과 배신감이 밀려왔다. ‘나만 그랬나 보다’ 하는 마음에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영서에겐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미 날 등진 사람을 붙잡고 이것저것 캐묻는 건 날 더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래 알았다]란 말만 남기고 카톡 창을 닫았다. 영서도 다른 말이 없었다. 이후로도 줄곧. 내가 퇴사하는 마지막 날까지.
그랬던 영서가 지금 내 앞에서 양 팀장에 관해 푸념을 늘어놓고 있다. 영서는 내게 왜 보자고 했던 걸까. 푸념할 상대가 필요했던 걸까. 예전처럼. 난 영서에게 뭘 기대했을까. 무슨 마음으로 직접 회사까지 나온 걸까.
맞다. 난 내심 미안했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적어도 “그땐 눈치가 보여 어쩔 수 없이 양 팀장을 따랐어”라는 변명이라도 해주길 바랐다. 영서의 연락을 기다렸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난 여전히 영서가 내게 등을 돌렸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건가.
하지만 영서는 그 일에 관해선 아무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저 현재의 자기 상태가 안타까울 뿐. 그때도 영서는 그랬다. 내가 어떤 일을 당하든 자기의 안위만 중요했다. 그걸 이제야 깨닫나. 나 자신에게 혀를 끌끌 차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집으로 향하고 싶어졌다.
[다음 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