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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Oct 17. 2019

내가 즐거운 여행을 하고 싶다

대학 친구 모임이 있었다.   

우리는 스무 살 때 만나서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제는 중년이라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학교 졸업 후에도 우리는 꽤 자주 만났다. 회사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배우자를 궁금해하고, 아이의 돌잔치를 축하해줬다. 


그러던 우리는 본격적인 육아의 길로 접어들면서부터 서로 약속을 잡기가 어려워졌다. 누구는 주중은 힘들다, 누구는 주말에만 나갈 수 있다, 남편이 아이를 맡아 주기로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봐준단다, 시어머니가 말도 없이 올라오셨다, 나가려고 했는데 애가 아침부터 열이 난다 등등등의 이유로 날짜를 맞추기도 힘들었고, 약속 당일에 못 나온다는 친구도 생겼다. 또 기껏 모임에 나와서는 내내 집 걱정만 하다가 결국에는 일찍 들어가는 친구도 있었다. 


이 복잡한 모임을 오랫동안 이끌었던 건 친구 H였다. 그녀는 늘 나서서 모임을 제안했고 날짜를 잡았고, 공지를 했다. 그것도 모자라 일일이 연락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한가했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맞벌이를 했고, 아이를 여기저기 맡기며 늘 동동거렸고, 매일 야근을 하는 친구였다. 그렇게 바쁜 친구가 공지를 하고 일일이 연락을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그날 별일 없으며 나갈게' 정도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의 노력에 비하면 너무나도 성의 없는 대답이 아니었을까 싶다.  


언젠가부터 그녀로부터 연락이 없었다. 만나자는 얘기도 안부 전화조차도 없었다. 막연히 이젠 지쳤나라고 생각하던 중 누군가로부터 그녀의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걔도 이젠 그런 거 안 하겠대"


모임은 없어졌다. 아무도 그녀를 대신하는 사람이 없었다. 개별적으로 몇 명이서 만나는 일은 있었지만 예전처럼 다 같이 모이는 일은 없어졌다.



가까운 친척 모임이 있었다. 

어른들의 나이도 비슷하고 아이들의 나이도 비슷하여 만나면 이야기도 잘 통했고, 아이들도 잘 어울려 놀았다.

이 모임을 주도하는 건 거의 나였다. 캠핑 모임, 가족 해외여행, 연말 모임 등을 제안하고 날짜를 조율하고, 캠핑장을 예약하고, 비행기를 예매하고, 일정도 짰다. 또 여행지에 가서는 앞장서서 길을 찾았고, 늘 다음 일정을 생각했다.  


나도 한가하지는 않았다. 회사에서는 점심때 시간을 내서 캠핑 장소를 알아봤고, 여행 일정을 짰다. 퇴근해서는 다 다 치우고 나서 밤늦은 시간에 여행 동선을 확인해보고, 근처 식당도 알아보고, 더 가볼 만한 곳은 없는지 찾아봤다. 다음 날 아침이면 출근을 해서는 업무를 보기 전에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곤 했다. 대답은 늘 비슷했다. 

"오케이"


우리 세 식구 모임도 그랬다. 남편은 늘 막연하게 여행 제안을 했다.

"이번 겨울에 한번 나갔다 오자.", "곧 애 방학인데 어디 한번 갔다 오자."

남편의 '어디 한번 갔다 오자'는 말에 제일 바빠지는 건 나였다. 우선 갈 곳과 날짜를 정해야 했고, 예약을 해야 했고, 일정을 짜야했다.  


이런 나를 두고 남편은 항상 실행력 하나는 인정한다고 했지만, 특별히 실행력이 있어서 했던 건 아니다. 다들 언제 한번 모이자, 언제 한번 여행이나 같이 가자라고 하지만 움직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내가 안 하면 아무도 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했던 일들이다.  


다 즐거우면 됐지, 나 하나 피곤한 것쯤이야라고 생각했다. '내가 안 하면 누가 해'라며 기꺼이 나섰고, 다들 즐거워하면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나도 어느 순간부터 예전의 대학 모임을 이끌었던 친구처럼 이젠 이런 거 안 하고 싶어 졌다. 다 같이 즐겁자고 하는 모임인데 정작 나는 피로감이 쌓여갔다. 

그동안 남들 즐거운 건 챙기면서 정작 내 즐거움은 너무 모른 채 했던 건 아닌가 싶었다. 남의 즐거움을 나의 즐거움으로 착각했던 건 아닌가란 생각마저 들었다. 


이 모든 것을 안 하기로 했다. 

그러자 당연하기라도 하듯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고 연락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며칠 전에야 한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왜 요즘 연락이 없냐고. 섭섭하다고. 내가 섭섭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 집도 마찬가지이다. 남편은 여전히 예전처럼 어디를 가자고 막연히 말을 던지지만 내가 움직이지 않으니 아무 진전이 없다. 아이 마음만 설레게 해 놓을 뿐이다. 내가 다시 움직이지 않는 한 아마도 한동안은 이러지 않을까 싶다.


이젠 내가 즐거운 여행, 내 마음이 편한 여행을 하고 싶다. 누군가를 이끄는 여행, 대리만족을 하는 여행은 그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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