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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Oct 18. 2019

자꾸만 눈치 보는 내가 싫다면

너무 어려서부터 엄마 손을 떠난 탓인지 우리 아이는 나이에 비해 조금 어른스러웠고, 분위기 파악이 빨랐다. 이를 보고 어떤 지인은 내게 말했다. 

“애가 너무 일찍부터 눈치를 많이 보는 거 같애.”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다. 살짝 기분이 언짢았다. 난 “그런가? 좀 어른스럽기는 하지.”라고 되도록 좋은 쪽으로 돌려 말했다. 나의 의도 따위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그 지인은 마음 상하는 한마디를 더 했다.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거 별로 안 좋은 거야. 애는 애다워야지.”

'네 애나 잘 키워. 쓸데없는 참견은….'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했다.  

내 눈에는 배려심 많고, 상대의 마음에 공감할 줄 알고, 센스 있는 아이로 보이는데 그 사람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눈치와 센스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회사에서 한 상사는 대표님의 눈치를 유독 많이 살폈다. 결재를 받으러 갈 때도 대표님의 기분을 살폈고, 기분이 좋지 않다 싶으면 결재를 미뤘다. 보고를 하러 갈 때는 더 심했다. 마치 어딘가로 끌려가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전화를 받아도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아, 네네. 아 그게 아니고…… 아 알겠습니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안쓰럽기까지 했다.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우리끼리는 얘기했다. 

“평소에 일을 잘했어봐. 눈치 볼 게 뭐가 있겠어.”

“그러게. 참, 왜 저러나 몰라.”

이건 분명 눈치였다. 센스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꽃보다 할배>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네 명의 원로 배우들과 배우 이서진, 최지우가 함께 두바이 여행을 갔다. 두바이의 무빙워크는 유난히 길었다. 평소 다리가 불편했던 백일섭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바로 이서진은 최지우에게 눈짓을 보냈다. 최지우는 그 의미를 알아차리고 백일섭에게 얼른 다가가 팔짱을 끼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쌤~ 너무 길죠?”

이 한마디에 굳어있던 백일섭의 표정은 풀렸다. 이서진과 최지우의 센스가 넘치는 순간이었다.  


눈치와 센스는 똑같이 분위기를 살피고, 상대방의 표정을 읽는 것이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분위기를 살피면서 내가 작아지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닐까 한다. 회사의 상사는 분명 대표님의 기분을 살필 때 작아졌다. 작아지다 못해 때로는 저러다 증발해 버리는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다. 내 의견이 사라지고, 내 목소리가 사라지고, 내 존재가 사라질 것만 같다면 눈치가 확실하다. 이때는 당연히 마음도 괴롭다. 반면 센스는 내가 작아지지 않는다. 얼핏 그 순간은 작아진 것처럼 보여도 절대 마음은 그렇지 않다. 상대방을 위해 혹은 전체 분위기를 위해 잠시 나를 낮출 수 있는 건 마음이 단단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아이는 내 기분이 안 좋으면 바로 알아차린다. 와서 왜 기분이 안 좋은지 물어본다. 그리고는 나를 안아주고 애교를 부린다. 가끔 목소리만 듣고서도 “엄마 왜 화내요?”라고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러면 조금 무안해지기도 한다. 

“아닌데? 화나 보였어?”

“응”

“아니 네가 준비를 빨리 안 하니까. 엄마가 조금 답답해서.”

“그럼 그렇게 말을 하지. 빨리 준비할게요.”

그리고는 나를 녹이는 한 마디를 더 한다.

“엄마, 나 한 번만 안아줘요.” 

아이는 작아지지 않았다.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그럼 이건 센스가 아닐까?          



항상 눈치를 보는 내가 싫다면 눈치를 살짝 센스로 바꿔 보는 것은 어떨까. 습관처럼 자꾸 남의 기분을 의식하고 분위기를 살핀다면, 먼저 내가 작아질만한 상황인지 생각해 봤으면 한다. 전혀 그럴만한 이유가 없다면 상대를 위해 잠시 나를 내려놓는 것뿐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나를 잠시 내려놓는다고 내가 정말 내려가는 것은 아니니까. 분위기 파악이 빠른 것은 꽤 큰 장점이다. 분위기 파악을 못해 주변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지 않는가. 여러모로 참 곤란하다. ‘너도 즐겁고 나도 편해지자’란 마음으로 이 장점을 활용한다면 마음이 훨씬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꽤 매력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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