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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Oct 18. 2019

'기대'는 나를 '노예'로 만든다

법륜스님에게 한 여성이 질문을 했다. 

“남편이 돈은 못 벌더라도 제 마음만 좀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어떡하면 좋을까요.”

스님은 대답했다. 

“아이고 그게 돈 벌어 오는 것보다 더 어려운데……. 상대가 자기 마음 안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자기도 상대 마음 몰라요. 내 불편한 것만 생각하지. 그런 기대는 너무 큰 기대다. 욕심 중에도 상욕심이에요. 마음을 알아준다…… 어떻게 저렇게 큰 꿈을 꾸셨을까.” 

듣고 있던 여성분은 머쓱해하며 다시 말했다.  

“기대를 하면 안 되는 건 아는데, 보면 또 자꾸 기대를 하게 돼서 힘들더라구요.”  

스님은 거기에 이렇게 답했다.  

“아무 기대도 하지 마요. 내 기대가 나를 괴롭히는 거예요. 상대가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고.”

그리고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요. 부처님이 나를 알아주길 원하면 나는 영원히 부처님의 노예가 되고, 하느님이 나를 알아주길 원하면 나는 영원히 하느님의 노예가 되고, 남편이 나를 알아주길 원하면 나는 영원히 남편의 노예가 되고, 부모가 나를 알아주길 원하면 나는 영원히 부모의 노예가 돼요. 노예가 될 뿐만 아니라 미워하게 돼요. 왜냐하면 현실은 안 알아주니까. 내가 그들을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살 필요가 뭐가 있어요. 그건 나의 어리석음이에요. 인생의 주인이 내가 돼야지. 누가 어떻게 해주길 원하는 거는 자기를 고통에 빠뜨리는 어리석은 행위에 속하는 거예요.”



누군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하고, 서운하다. 불안하고, 화도 난다. 화를 내자니 쪼잔해 보일까 봐 화도 못 내겠다. 참고 있자니 우울해진다. 그러면 그 사람이 싫어진다. 더 화가 나는 건 상대방은 내가 이렇게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럼 또 억울해진다.  


스님에게 질문을 던진 여성처럼 나도 남편이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다. 내가 회사에서도 힘들고, 집에 돌아와서도 힘들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애쓰고 있다는 것을, 둘 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랐다. 기대와는 달리 남편은 전혀 알아주지 않았다. 많이 섭섭했고 화가 났다. 우울했다. 내가 뭐 하러 이렇게 열심히 사나 싶기도 했다. 다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남편이 죽도록 싫었다. 


남편에게 더 이상 기대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는 듯했다. 기대를 놓기 시작했다. 알아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스스로를 달랬다. 남편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나를 알아주면 되지 않나 싶었다. 알아주지 않는 남편이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불가능한 것을 바랐던 내게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어리석었다고. 

마음이 좀 편해졌다. 생각해보니 나도 남편의 마음을 잘 몰랐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가진 힘듦이 제일 커 보였기 때문이다. 남편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자기가 처한 상황이 누구보다 힘들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나의 힘듦을 알아달라고 했던 건 역시 무리였음을 깨달았다. 


법륜스님의 말이 맞는 듯하다. 남편이 알아주기를 바랄 때 나는 남편의 반응을 주의 깊게 살폈다. 말투, 눈빛, 미간의 찡그림마저 눈에 들어왔다. 그 반응에 따라 나의 기분은 오락가락했다. 원하는 반응이 없을 때는 ‘네가 그렇지.’하면서 혼자서 분노를 삭였다. 이게 노예가 아니고서 뭐란 말인가. 내가 노예를 자초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던 것이다. 이렇게 아둔한 일이 또 있을까.


마음에 변화가 생겨서인지 남편은 나에게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내가 달라졌으니 이젠 너도 좀…… 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다 부질없음을 알기에 마음을 곧 고쳐먹었다. 사실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없애는 것은 쉽지는 않다. 순간순간 또 실망하고 또 서운해진다. 그럴 때마다 ‘에휴, 그렇지 뭐’란 마음이 절로 생긴다. 이럴 땐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모르면 좀 어때?’

‘알아주면 뭐 할 거야?


그러면 마음을 다잡는데 도움이 된다. 도를 닦는 심정이다. 이렇게 해서 종교인이 되어가는 건가…. 마음만 편해질 수 있다면 뭔들 못하겠는가. 오늘도 기도한다. 


“알아주길 바라지 않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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