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세우며 강력한 왕권이 필요했다. 새 왕조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혼란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유교의 핵심 덕목인 충(忠)과 효(孝)는 매우 효과적인 사상적 도구가 될 수 있었다.
백성은 나라, 곧 왕에게 충성을 다해야 하고, 가정이라는 사회의 최소 단위에서는 부모에게 효를 다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결합하면 개인에서 가정, 사회, 국가로 이어지는 위계질서가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통치하기에 더없이 좋은 틀이 된 것이다.
하지만 공자 사상에서 보다 근본이 되는 덕목은 인(仁)이었다. 인은 "사람다움", "타인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뜻하는, 추상적이면서도 관계적인 덕목이다. 공자는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규범적 명령보다는 ‘이런 태도가 곧 인이다’라고 구체적 상황 속에서 말하곤 했다. 인은 고정된 틀이 아니라 관계와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드러나는 덕목이었다.
반면 조선의 성리학에서는 외면적 형식과 예법을 통한 실천을 효의 핵심으로 삼았다. 이는 조선이 안정적 권위를 확보하려는 필요와 맞닿아 있었다. 강력한 권력과 통제를 원하는 조직일수록 지켜야 할 의례와 규범은 많아지고 엄격해는 법이다.
오늘날 우리는 조선 시대를 지나 새로운 사회를 살고 있다. 여전히 '효'를 말하지만, 그 의미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 자체는 소중하다. 그러나 그것은 억지로 강요될 수 있는 도덕이 아니다. 사랑과 배려가 바탕이 되는 관계가 오래 지속될 때 저절로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마음이 효일 것이다.
효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성인인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먼저 충분한 사랑과 배려를 보여야 한다. 단순히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걸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부모로서의 최소한의 책임이니까.
중요한 것은 자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아낌없이 사랑하는 마음일 테다. 자녀를 자신의 감정을 푸는 도구나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룰 존재로 삼는다거나, 필요시 혹은 내킬 때만 관심을 보인다면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없다.
"자식이면 당연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말은 전통 유교에서는 당연한 도리로 받아들여졌지만, 현대의 관점에서는 완전히 타당하다고는 할 수 없다. 사랑이 오간 관계 속에서 저절로 피어나는 마음이 효라면, 그것은 더 이상 강요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자연스러운 열매일 것이다.
따라서 효를 강요한다거나, 효를 다하지 않는다고 쉽게 비난할 수는 없다. 각자의 배경과 상황이 다르고 마음의 크기도 다르다. 마음을 어떻게 표하든, 혹은 굳이 드러내지 않든, 그것은 결국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