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훈련소 앞, 아직까지 믿기지 않아

by 김자옥

진해 훈련소에 가기 전날. 다음 날 이른 새벽에 출발하려면 일찍 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며칠 전 가입한 인터넷 카페 '군인아들부모님 카페'를 통해 알아본 입영 준비물을 하나씩 다시 체크하고, '이건 빼도 돼. 아니야, 없으면 불편하대. 이런 건 군대에서도 다 보급돼. 바로는 안 나온대, 그리고 필요할 때 바로바로 쓸 수 없대'라는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몇 차례 반복하고, "자, 이걸로 끝! 이젠 자야 돼"라고 한 게 1시였다.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일부러 다른 생각을 했는데도 갑자기 심장이 뛰고 '설마'하는 방정맞은 생각이 훅 치고 들어왔다. 건넌방의 아들은 잠들었을까.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렇게 밤을 새웠다.

운전을 못하는 아내 덕분에 남편은 혼자서 진해까지 왕복 운전을 해야 했다. 오가는 동안 차에서 졸면 너무 미안한데, 하며 졸지 않으려 단단히 마음먹었지만 잠은 전혀 오지 않았다. 신기할 정도로.


"어! 여긴가 본대?"

인적 없어 보이는 시골 동네를 한참 지나다 보니 바깥세상과 경계를 짓는 긴 담벼락이 나왔다. 철창 같은 살벌함 대신 말끔하고 단정한 담이었지만 어쩐지 엄숙함이 느껴졌다. 심장이 조금씩 두근댔다. 담벼락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훈련소 정문이 보였고 앞에는 두 명의 앳된 군인 아저씨(많아야 아들보다 한 두 살 더 많을까)가 보초를 서고 있었다.

12시 반부터 입장할 수 있다고 했지만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10시 남짓이었다. 일단 위치를 확인했으니 밥을 막기로 했다. 네이버 후기를 보고 찾아간 집은 의외로 맛집이었다. 아들과 남편은 몇 년간 먹은 돼지국밥 중에 단연 최고라며 연신 감탄했다. 난 국밥을 좋아하지 않아 국밥 맛은 잘 모르겠지만 김치 맛은 최고이긴 했다. 걱정과 달리 맛있게 먹는 아들을 보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아들도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나 보다. "훈련소 앞에서 밥 안 넘어간다고 굶지 말고 마지막까지 잘 먹고 오라던데 난 밥만 맛있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아들이 귀여우면서 또 애처로웠다.

밥을 먹고도 시간이 한참이나 남았다. 우린 근처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기대를 전혀 하지 않고 들어갔지만 깔끔한 인테리어와 바다가 바로 코 앞에 보이는 전경에 다들 "오!"하고 외쳤다.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앞에 보이는 바다와 떠 있는 배들을 보는데 마음이 또 싱숭생숭해졌다. 저런 배를 탈 거 아냐.

KakaoTalk_20260210_140320757.jpg 진해 훈련소 앞 카페에서


처음 "해군은 어떨까"란 말을 아들에게 들었을 땐 "해군?!" 하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해군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배 타는 게 보통 일이 아닐 텐데. 아직 뭘 모르고 하는 말이겠거니 했지만 아들은 점점 해군 쪽으로 생각을 굳혔다. 지원서를 쓰고 1차 합격하고 2차 인터뷰를 보고 입대 날짜가 정해졌다. 그때까지도 실감하지 못했다. 아니 몇 분 후면 아들을 훈련소에 들여보내야 하는 순간까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해군 훈련소는 꽤 멋졌다. 뒤에는 나지막한 산이 둘러싸고 있어 어쩐지 포근한 느낌마저 들었다. 건물이며 잔디밭이며 운동장은 모두 널찍널찍하면서도 단정했다. 다행이다 싶었다. 시설이 후줄근했으면 마음이 영 좋지 않았을 텐데.

운동장엔 큰 트럭 한 대가 자리 잡고 있고 그 위에서 장병들이 연주를 하고 있었다. 몇 명은 관객(입대를 기다리는 예비 군인들과 부모들)의 호응을 이끌었고 사람들은 그에 맞춰 박수를 치거나 때때로 크게 웃었다. 그런 중에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잠깐 나와 무슨 말인가를 했다. 부모들을 안심시키는 말 같았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다만 마지막에 "요즘은 뭐 때리거나 하는 일은 없어요. 하라는 대로만 잘하면 돼요. 하지 말라는 거 안 하고"라는 말만 정확히 들렸다. 안심이 되면서도 불안한 말이었다. 하라는 대로 못하면 때리기도 하나??


공연은 꽤 길었다. 점점 추워졌다. '언제까지 해. 빨리 들여보내지'하는 마음과 '이거 끝나면 이제 진짜 들어가는 거네'하는 두려움이 교차했다. 아들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봐둬야 할 것 같았다. 아들을 올려다보니 아들이 "왜?"하고 물었다. "들어가기 전에 더 봐두게"라고 하자 아들은 멋쩍게 웃어 보였다.

드디어(결국) 공연이 끝나고 큰 트럭은 자리를 떴다. 잠시 후 안내 방송이 나왔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소리가 너무 울려 뭐라는지 전혀 들리지 않았지만 아들들이 우르르 나가는 걸 보니 입대자는 모이라는 소리 같았다. 나와 남편은 허겁지겁 아들을 껴안았다. 입을 맞추고 볼을 비볐다. 아들은 긴장한 채 가방을 들쳐 메고 운동장 앞으로 나갔다.

'이렇게 가나' 하는데 아들이 가다 말고 뒤를 돌아 손을 흔들었다. 가기 싫은 곳을 제 발로 걸어가야 하는 마음이 오죽할까.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참았다. 아들 맘이 더 복잡할 테니.


몇 명이나 될까. 천 명? 이천 명? 그중에서 아들의 모습을 놓칠세라 멀리서 뚫어져라 아들의 모습을 좇았다. 흰 모자를 쓰고 오길 잘했다 싶은 순간이었다. 아들은 자리를 잡고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빨간 모자를 쓴 조교들이 돌며 모자를 벗으라고 했는지 하나 둘 모자를 벗었다. 아들도 모자를 벗었다. 앗! 온통 까까머리들 속에 아들의 모습이 희미해졌다. 눈에 더 힘을 줘야 했다.

구령에 따라 아들들이 경례를 했다. 주변에서 오~ 하는 환호성이 터졌다. 어떻게 하는지도 모를 경례를 얼결에 따라 하는 아들들이 대견하면서 짠했다.

몇 번의 경례와 뭔지 모를 선서가 더 있고 단체로 부모님을 향해 절을 했다. 멀리서 아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니 왜 내 아들을 멋대로 데려가냐고. 나라가 앞으로 뭘 해줄 건데. 왜 이 애들이 희생해야 하냐고. 국방의 의무고 뭐고 그 순간만큼은 개나 줘버리고 싶었다.

엉거주춤 일어나는 아들을 포함은 앳된 아이들을 보며 문득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져 지켜지는 평화가 아니었음을 그동안 너무 몰랐다.


주인을 떠나보낸 아들 방엔 아침에 갈아입은 옷이 그대로 있었다. 옷가지와 몇 가지 물건을 정리하는데 마음이 휑하다. 아들은 오늘 밤 잠이 올까.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하진 않을까. 같은 방에 코를 고는 사람은 없을까. 아침엔 잘 일어날까.

생각이 많아선지 밤늦도록 졸리지 않았다. 겨우 자리에 누웠는데 아들 방의 허전함이 전해졌다. 내일부턴 진짜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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