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나흘 째 밥통에 밥이 없다. 아들이 입대하는 날은 새벽같이 나가야 해서 밥을 할 필요가 없었고 그 이후로도 밥은 하지 않았다. 끼니때가 찾아와도 딱히 배도 안 고팠고 뭘 차려 먹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편의점에 가서 김밥이나 닭가슴살, 삶은 고구마 같은 걸 사 와선 싱크대에 서서 후딱 먹고 치웠다.
남편과는 주말(혹은 격주) 부부다. 아들도 없으니 어쩌면 보는 일이 더 뜸해질지도 모르겠다. 20년 넘게 산 부부가 둘이 마주 앉아서 딱히 할 말도 없지 않나. 가끔 전화나 톡으로 아들 얘기나 나누겠지. 엄마가 "혼자 있다고 대충 먹지 말고"라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도 괜한 소리는 아니다. 어쩌면 나흘간 내가 먹은 걸 알면 기겁하며 요란을 떨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밥이 보약이라며 쌀밥을 꼭 먹어야 한다고 믿는 엄마다.
예전부터 종종 생각하던 게 있다. 안 먹고살 수는 없나? 알약 같은 건 개발 안 되나? 아들과도 한번 비슷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밥 대신 먹는 알약이 나오면 먹겠냐는. 난 먹겠다고 했다. 밥 먹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않냐는 게 내 주장이었다. 장 보고, 요리하고, 차리고, 먹고, 치우고. 그것도 하루 세끼 혹은 적어도 한 끼 이상은 해야 하는데 그 시간만 절약해도 엄청나지 않을까.
아들은 먹는 재미가 있지 않냐고 했다. 그러면서 물었다. "시간 절약해서 뭐 하게?" 난 좀 당황했다. 아들은 가끔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 묻는다. "시간 절약하면 그만큼 많은 걸 할 수 있지. 공부도 할 수 있고, 다른 걸 즐길 수도 있고"라면서도 뜨끔했다. 이런 건 단지 시간이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니니까. 아들은 만들고 먹는 시간도 소중하지 않나,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여느 집 같으면 "그럼 네가 해보던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집은 좀 예외다. 요리는 나 못지않게 아들도 자주 했다. 전공을 요리 쪽으로 할까 고민했을 만큼 요리에 관심이 많다. 같은 걸 만들어도 나는 대충 하는 반면 아들은 제대로 된 요리법을 알아보고 타이머와 온도계를 썼다. 심지어는 내게 요령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게 늘 신기했다. 나나 남편 둘 중 누구도 요리에 관심이 없다. 남편은 주로 남이 해주는 걸 먹는 편이고 나는 별로 미각이 발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냄새에 예민해서 꺼리는 게 있다. 물에 담가지거나 냉동실에 있다가 나온 고기 등. 덕분에 아들이 식사 준비를 할 때면 냄새 잡기에 더 공을 들였다. "난 괜찮은데 엄마 한번 먹어봐. 냄새 나나 안 나나." 아들의 마음 씀이 고마워 간혹 냄새가 올라와도 난 "음! 좋아" 하곤 했다.
남편과 떨어지면서 그나마 밥을 해 먹은 건 아들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아들은 끼니때가 다가오면 "뭐 먹을까?"라며 진지하게 메뉴를 고민했다. 내 대답은 대체로 "너 먹고 싶은 거"였고 아들의 제안에 따라 마트에 같이 가거나 배달 앱을 켰다.
마트는 온라인 주문도 정기적으로 했지만 아들은 직접 가서 보면서 그날의 메뉴를 정하길 좋아했다. 장보기를 주도하는 건 늘 아들이었다. 카드를 끄는 것도, 어느 코너를 갈지 두세 개의 제품 중 어떤 걸 고를지 정하는 것도. 난 그저 아들의 선택을 따랐다. 이것저것 따지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아들의 얼굴을 보는 건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도보로 10분 남짓 걸리는 마트에 오가는 길에 나누는 대화는 꿀 같았다. 집안에서도 많은 대화를 나누지만 어쩐지 밖에서 나누는 대화는 더 즐거웠다. 그래서 마트에 가자고 하면 거절하지 않았다.
이젠 당분간 마트에 갈 일도 배달앱을 켜서 뭘 먹을지 고민할 일도 없을 것 같다. 오늘은 온라인 장보기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며칠 새 유통기한이 지난 것도 있고 이미 시들해진 식재료들도 있다. 적어도 한 끼라도 해 먹어야지. 아들도 당부했다. "나 없다고 아무거나 먹지 말고!" 내가 이럴 줄 알아서였을 거다. 부모 말엔 시큰둥하면서도 자식 말은 새겨듣게 되는 건 무슨 조화인지. 인간의 본능인가.
그나저나 아들은 훈련소에서 잘 먹고 있겠지? 배는 안 아픈지. 민감성인데 화장실 문제는 없는지. 보낸 유산균은 챙겨 먹고 있는지. 나도 엄마처럼 호들갑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