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옷이 돌아왔다

by 김자옥

외출하고 돌아오니 문 앞에 어제 주문한 식료품들이 배송되어 있었다. 그중엔 커다란 박스 하나도 같이 있었다. ‘박스채로 뭘 시키진 않았는데…. 혹시 남편 회사에서 보낸 설 선물인가’하고 보낸 사람을 확인하려는 순간, 익숙한 글씨체의 아들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 말로만 듣던 ‘눈물 박스’구나.

마음이 급해졌다. 대충 다른 짐들을 집안으로 옮기고 박스를 거실로 들였다. 늘 글씨를 대충 휘갈겨 써 가끔은 알아보기도 힘들었는데 박스에 써놓은 글씨에서는 한 글자 한 글자 신경 쓴 게 느껴졌다.


혹시 딸려 보낸 물건이 죄다 들어있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상자를 열었다. 가방과 점퍼 그리고 먼저 입대한 친구가 챙겨 가는 게 좋다고 언질을 준 두루마리 화장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화장지는 보급이 되긴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며 네이버 카페 등에서도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땐 좀 화가 났다. 화장지도 제대로 안 주는 건가 싶었다. 그대로 돌아온 거 보니 다행히 그렇진 않은가 보다.

친구가 화장지와 더불어 챙기라고 한 것 중엔 도톰한 양말(군화가 많이 딱딱하다)과 쉐이빙 폼(비누로 하긴 불편하다. 있으면 좋다)도 있었다. 둘 다 돌아왔다. 내가 챙긴 뿌리는 근육통약도 함께 돌아왔다. 아들은 이런 건 없어도 된다며 뺀다는 걸 다들 가져간대, 라며 우겨서 넣었던 거다. 아무래도 쉐이빙 폼이나 뿌리는 약은 스프레이라서 반입이 안 된 게 아닐까 싶다. 훈련소마다 규정이 다르다더니 진해는 불가인가 보다.

내심 아들이 챙긴 것도 함께 돌아와서 다행이다 싶었다. 안 그랬으면 “그러니까 이런 건 안 된다니까”라고 하지 않았을까. 물론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점퍼 밑에는 후드 티와 바지가 있었고 한 구석엔 돌돌 말아 놓은 양말과 속옷이 있었다. 속옷을 보니 또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속옷 하나 맘대로 못 입는 곳에 가 있구나. 아들은 짐을 싸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제 진짜 사회와 단절이구나 싶었을까. 여전히 현실이 믿기지 않았을까.


저녁에는 해군교육사령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훈련병들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다행히 사단별로 나뉘어 있어서 아들 얼굴은 금방 찾았다. 온통 밤톨머리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어떤 건 모자까지 쓰고 있어 찾기가 쉽지 않겠다 했는데 아들 얼굴은 대번에 눈에 띄었다. 눈매만 봐도 알 것 같았다. 입대 날 영상에 찍힌 넋 나간 표정은 여전했다. 입대하고 이삼일 정도 후에 찍었을 테니 아직 멍한 상태긴 할 터였다.


아들은 생각이 깊고 많은 편이다. 내게도 “엄마는 이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라며 사회 여러 문제나 나라 현안에 관해 자주 묻는다. 난 편하게 의견을 얘기하고 아이의 말에도 귀 기울인다. 둘의 의견은 때로는 같고 때로는 완전히 다르기도 한다. 그럴 때는 대화가 길게 이어진다. 그러다 보면 어느 땐 “아니, 그건 아니지”하며 흥분하기도 하고 잠깐 서로 감정이 상하기도 하지만 적당한 선에서 “뭐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니까”라며 합의점을 찾는다.

아들과의 대화는 대체로 즐거운 편이지만, 가끔은 생각이 어디까지 가는 건가 싶어 걱정이 될 때도 있다. 본인은 피곤한지 모르고 생각에 빠지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복잡한 얘길 싫어한다. 조금만 깊어져도 “뭘 그렇게까지 생각해”란 말이 돌아온다. 이건 꽤 외로운 일이다. 내가 많이 겪어봐서 잘 안다.

한 번은 조심스럽게 “근데 다른 사람들하고도 이런 얘기해?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하고 묻자, 아들은 “엄마니까 하는 거야. 다른 데선 이런 얘긴 꺼내지도 않아. 그냥 농담 따먹기나 하지”라고 했다. 안심과 약간의 뿌듯함 그리고 조금의 씁쓸함이 뒤섞인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들의 성격을 생각해서 하는 말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남편은 훈련소로 들어가는 아들에게 '깊게 생각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유 같은 거 따지면 군생활이 괴로워진다며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아들도 “응. 당연하지. 다들 뇌를 비우래”라며 밝게 응했지만 어쩐지 마음 한 편이 찌릿했다. 그게 쉬운 애가 아닌데. 넋이 반쯤 나간 듯한 아들의 표정을 보니 더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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