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만나고 나면 마음이 더 공허해진다(D+7)

by 김자옥

명절엔 군에서 뭘 할까. 설 당일 메뉴를 보니 떡국에 산적에 잡채까지 있다. 그래도 명절 기분은 나겠다. 물론 훈령생들에게 명절이 무슨 의미일까 싶다만.

어제 아들은 통화에서 다른 힘든 건 없는데 시간이 잘 안 간다고 했다. 자유 시간이 주어줘도 핸드폰이 없으니 지루할 만도 하다. 1년 가까이 먼저 입대한 친구는 아들에게 책을 챙겨가라고 했다. 자유 시간에 정말 할 게 없다면서. 아들은 "가져 가도 안 읽을 것 같은데. 책이 눈에 들어오겠어?"라며 책은 빼기로 했다. 입대 전날 친구와 마지막으로 카톡을 한 모양이다. 아들은 슬쩍 책장을 기웃거리며 말했다. "책은 꼭 넣으라네. 자기도 훈련소에서 한 권 반이나 읽었다고. 걔가 책을 다 읽을 정도면 뭐." 난 반기며 이런저런 책을 권했지만 아들이 택한 건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였다. 더 지루해지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래" 외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아들은 3일간 책을 펼칠까. 재미는 있어할까. 만약 집이라면 책을 읽고 내게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조잘거릴 텐데. "엄마는 OO은 뭐라고 생각해? OO은 XXX다,라는 말은 맞는 말 같아? 나는...." 오늘도 전화가 오려나? 안 오려나? 이틀이나 통화를 했으니 어쩌면 엄마보다 친구를 더 찾을지도 모르겠다.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목소리라도 듣고 싶은데 아들 맘은 또 안 그러겠지?

(좀 전에 전화가 와서 책은 읽냐고 물으니 책 가방에 넣어 보냈는데 없냐고 되물었다. 책은 읽을 수 없다고 했다. 가방 안을 다시 확인하니 책은 안쪽 수납공간에 얌전히 있었다.)


엊그제는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설 당일 아빠와 함께 우리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부모님과는 아들 입대 전에 만나 식사를 했다. 그게 불과 보름도 안 됐다. 그래서 돌아오는 설엔 굳이 또 볼 필요가 있을까 하던 참이었다.

아마도 엄마는 이런 내 맘을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오라고 하면 더 이따 가겠다고 할 게 뻔하니 직접 가자 싶었는지도.

내가 회사를 그만둔 이후로 부모님은 입버릇처럼 심심하지 않냐고 묻는다. 매일 출근하던 애가 집에 있으면 답답할 텐데,라고 걱정을 늘어놓는다. 난 회사가 감옥 같았기 때문에 답답한 걸로 치면 회사가 몇 배는 더 답답했다. 난 지금의 자유가 너무 좋다는데도 부모님은 도통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건 예전부터 그랬다. 맞벌이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늘 "불쌍한 것. 남들은 다 집에서 살림이나 하면서 쉬는데"라며 혀를 끌끌 찼다. 난 살림엔 관심이 없고 일이 더 좋다, 집에서 살림하는 건 뭐 쉽냐고 하는데도 엄마는 기어이 날 딱하게 여겼다. 남편과 떨어져 지내게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밥 안 챙기고 살림 신경 안 써도 되니 오히려 좋다는데도 또 멋대로 측은하게 여겼다.

아들이 군대에 가면서 엄마의 측은지심은 정도가 더 심해졌다. 아들이 걱정돼 가끔 눈물짓긴 해도 전혀 심심하다거나 외롭지는 않다. 계획하고 있는 일도, 배우고 있는 것도 있어 오히려 어떻게 하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까 고민 중이다. 하지만 아무리 설명해도 이런 말은 어디에도 가닿지 않는다.

이쯤 되니 이런 생각이 든다. 엄마는 내가 걱정인 게 아니라 자식을 걱정하는 자신의 마음에 더 취해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실제의 내 마음은 하등 중요하지 않고 본인의 마음만 중요한 게 아닐까. 엄마의 걱정과 한숨이 듣기 싫은 이유도 이거다.


며칠 전에 봤는데 뭘 또 보냐는 말에 엄마는 아들도 없는데 쓸쓸할 거 아냐고 했고 난 그렇지 않다고 했지만 엄마는 한사코 오겠다고 했다. 그날 여는 식당이나 알아보라는 말과 함께.

사실 난 엄마를 만나고 나면 마음이 더 공허해진다. 전혀 가닿지 않는 말. 와닿지 않는 걱정과 조언. 널 위해서 하는 말이라지만 어디에도 배려는 없는 다듬어지지 않은 말들. 엄마가 떠난 자리엔 쓸쓸함만 남는다.

나도 아들에게 이런 존재가 되진 않을까 늘 조심한다. 조심하고 경계한다고는 하는데 쉽지 않다. 가끔은 나도 엄마처럼 진짜 아들의 상태나 마음보다 아들을 걱정하는 내 마음, 내 불안으로 유난을 떨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들은 "아후, 엄마 그렇게까지 걱정 안 해도 돼"라고 한다. 그럼 아차 싶으면서도 불안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탓에 "아니, 그래도. 혹시 또 모르니까..."라며 또 아들을 성가시게 한다.

어쩌면 지금이 그런지도 모른다. 아들은 괜찮다는데 나는 계속 걱정을 늘어놓고 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5화해군이 밥이 잘 나오기로 유명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