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3일 내내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매일 오는 전화에 딱히 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아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아들의 목소리는 점점 긴장에서 지루함으로 변해가는 듯했다. 아직 특별히 힘든 건 없는데 '대기'가 길어 서 있는 시간이 많다고 했다. 기다리는 거 싫어하는 아이인데. 앉아서 편히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계속 서서 긴장한 채 있는 거면 지칠 법도 해 보였다.
하긴 대기는 앉은 자세라도 피곤하긴 하다. 일할 때도 결재가 늦어지면 점점 예민해지지 않던가. 처음엔 '빨리하지' 했다가 슬슬 '뭐 실수한 건 없겠지?' 했다가 나중엔 '뭐가 잘못됐나?' 하는 게 검사받는 사람의 마음 같다.
아들은 얼마 후면 직별을 정해야 하는데 고민이 된다고 했다. 해군 직별에는 전탐, 갑판, 무장병, 조타, 정보 등이 있다(아들을 해군에 보내니 이런 것도 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전탐은 레이더 관측을, 갑판은 배의 유지 보수를, 무장은 병기 운용을, 조타는 항해에 관련한 일을, 정보는 통신 업무를 맡는다. 이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는 것 같지만 아들은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3 지망까지 있는데 우선 1 지망으로 전탐과 갑판을 놓고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정보가 부족한 아들을 대신해 난 전화를 끊고 바로 검색에 들어갔다. 네이버 카페엔 나 같은 부모들이 이미 있었다. 직별을 고민하는 글도, 그런 부모들을 위해 먼저 보낸 아들의 얘기를 해주는 글도 많았다.
조금이라도 편하고 안전한 일을 했으면 했지만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편한 일은 없었다. 전탐은 전문 직별로 외우고 익혀야 할 게 많았다. 후반 교육도 다른 직별에 비해 더 길었다. 무엇보다 하루 종일 레이더를 보면 눈이 빠질 것 같다고 했다. 갑판은 그에 비해 몸을 쓰는 일이 많았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힘이 들어 곧바로 쓰러져 잘 정도라고 했다.
카페 글 중엔 여러 댓글은 종합한 후 "그럼 아들에게 OO 하라고 해야겠네요"라는 글이 몇몇 보였다. 음? 하는 기분이 들었다. 본인이 복무할 것도, 대신 힘들어 줄 것도 아닌데 뭘 해라 마라 하는 게 맞나 싶었다.
비슷한 의문은 대학 입시 때도 가진 적이 있다. 고등학교는 합격만 생각해서인지 너무 안정적인 대학만 제시했고, 학원은 나중의 홍보를 위해서인지 어렵지 않을까 하는 대학 위주로 권했다. 가장 현실적인 말을 들을 수 있는 곳은 네이버 카페였다. 전년도 경험담, 재수나 삼수하는 입장, 첫째 입시를 치르고 둘째 입시를 맞는 학부모. 여러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정보를 얻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뭐든 넘치면 탈이 나는 법. 가끔은 올라오는 글을 보다 보면 머리가 지끈했다. "여기 여기 써야겠네요." "일단 들어가라 하고 반수 시켜야겠어요." 심지어는 "여기 붙었는데 이 정도면 괜찮은 학교인가요? 재수하라고 할까요?" 학교를 가는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 누구 인생인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나가가선 나중에 아이가 "엄마(아빠)가 그러라며. 엄마(아빠)가 정해준 거잖아"라고 원망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시대가 바뀌어도 왜 입시는 안 바뀔까. 바뀌긴 커녕 왜 점점 더 심해질까 하는 회의감마저 들었다.
그래도 학교는, 대한민국에서 사는 한 여전히 학벌은 평생 따라오고, 뭘 하든 학벌이 좋으면 유리한 건 부인할 수 없으니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복잡한 제도와 본인 일이지만 엄마가 자세히 알아봐 주길 은근히 바라는 아들을 보면서 나도 점점 신경이 곤두 섰고 나중엔 정신마저 혼미해졌다.
입시로 모든 게 끝일 줄 알았다. 부모의 정보력이 중요할 일도, 카페를 들락날락하며 전년도 경험담을 듣는 일도, 좀 더 미리부터 신경 쓸 걸 그랬나 하는 후회를 하는 것도. 아무래도 끝은 없나 보다.
아들이 영문과라는 말에 주변인들은 그럼 일찍부터 카투사를 준비시키지 그랬냐고 했다. 많이들 대학 들어가면서부터 준비한다며. 난 처음 듣는 얘기였다. 어쩐지 부지런하지 못한 엄마 탓에 아들이 괜찮은 기회를 놓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전혀 내 탓이 아님에도. 심지어 아들은 카투사엔 관심도 없는데도.
이런 걸 보면 아이들 일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부모 본인들의 선택임이 분명하다. 본인들이 아쉬운 마음에, 불안해서, 여전히 자기 통제 하에 두고 싶어 등 여러 이유로 손을 못 떼는 것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캡처해서 아들에게 보냈다. 행여라도 특정 직별을 권유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조심하며 양쪽 정보를 골고루 보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인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것도 불필요한 걸지도.
나는 왜 아들의 전화를 끊고 득달같이 정보를 찾았을까. 행여나 아들이 힘든 일을 하게 될까 걱정되고 불안해서? 아직은 엄마의 힘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아들을 못 믿어서? 뭐가 됐든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져서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