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봐, 엄마가 있어야 되지?

by 김자옥

입대 전 아들은 핸드폰 요금제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군대에서는 와이파이가 안 되고 기존 데이터로는 턱 없이 부족해서 영상 몇 개 보면 끝이라고 했다. 이런 고충을 아는지 통신사엔 따로 군인 요금제가 있었다. 데이터는 많고 그에 비해 요금은 조금 저렴한. 아들은 계속 "오늘은 해야지"라고만 하더디 입대 하루 전, 그것도 밤 10시가 넘어 핸드폰을 만지작했다. 뭐가 잘 안 되는지 컴퓨터를 켜고 한참 검색에 들어갔다.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슬쩍 곁으로 가니 아들이 말했다.

"입영통지서를 보내야 한다네. 근데 지금 근무 시간이 아니라..."

깝깝해졌다. '아니 그러니까 미리 했어야지'라는 말이 차올랐지만 뱉진 않았다. 내일 입대하는 애 마음을 이런 걸로 상하게 할 순 없었다. 아들은 당황한 눈빛이 역력했지만 침착함은 잃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아들은 당황스러운 상황에 더 차분하다. "아, 씨! 어떡하지"라며 호들갑을 떨 법도 한데 조용히 다른 해결 방법을 찾는다.

아들은 결국 군인 요금제 대신 그나마 쓸만해 보이는 다른 요금제를 택했다. 그러곤 얼마 안 가 통화에서 데이터가 부족한지 핸드폰이 느리다고 했다. 방법이 없을까 하고 네이버 카페를 찾았다. 역시 여기엔 모든 답이 있다. 군인은 본인이 아니어도 부모가 대신 요금제를 변경해주기도 한다고 했다(대신 입영통지서나 가족임을 증명하는 서류가 있어야 한다). 거기다 군인 요금제보다 일반 데이터무제한 요금제에 군인할인을 받는 게 더 나을 거라고 했다. 군인 할인이 있는 줄은 몰랐다. 안 찾아봤으면 제대하는 날까지 20개월을 할인 없이 쓸 뻔했다.

설 연휴가 끝나고 바로 통신사에 전화를 걸어 요금제를 변경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혹시 요금제를 바꿨냐고 물어 그렇다고 하니 "어쩐지 빠르더라"라며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덩달아 나도 신이 나 "이건 네가 말한 군인 요금제 아니고..."라며 내가 알아보고 처리한 일을 자세히 얘기했다. 물론 아들에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을 거다. 그냥 전보다 나으면 그만이지.


전화를 끊고도 난 한참 뿌듯했다. 핸드폰 요금제 바꿔준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너무 많은 걸 신경 쓰나. 하여튼 부모가 문제야. 요즘 애들이 약한 게 아니고 부모들이 그렇게 만드는 거라니까'라며 난 나를 비롯한 요즘 부모들을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나치게 염려하고 챙겨주는 게 다 본인들의 불안 때문이라며.

지금은 살짝 '아니 애들이 잘 모르니까' '지들이 알아서 잘 챙기면 이러지 않지'라는 마음이다. 안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실수하고 손해 봐도 그런대로 다 경험이 되어 살아가는 데 밑거름이 되는 걸. 부딪히면서 알아가고 그러면서 강해진다는 것도. 근데 당장 눈앞에 힘들어하고 불편해하는 게 보이는 걸.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해결이 되는 걸. 알면서 참는 것도 쉬운 게 아닌 것 같다.


입대를 앞두고 혹시 미리 알아둬야 할 게 있나 하고 검색에 들어갔다가 난 깜짝 놀랐다. 무슨 준비물이 그렇게 많은지. 무릎 및 팔꿈치 보호대(보급되는 건 너무 얇아 효과가 없다), 물집방지패드 및 깔창(딱딱한 군화 신으려면 필수다), 수면 안대(잠이 잘 안 온다), 귀마개(코 고는 사람이 있으면 괴롭다), 상비약(군에서도 나오긴 하지만 필요할 때 바로바로 탈 수 없다),....

마치 무슨 입학 준비물이라도 되는 듯 보기 좋게 정리해서 올려 둔 글도 많았다. 뒤늦게 마음이 급해졌다. 난 언제나 그렇다. 입시 때도 그랬다. '본인이 알아서 하는 거지'라며 느긋하게 있다가 어떤 일이 닥치면 멘붕상태가 됐다. 그러곤 '뭘 저렇게까지 해'라며 비난하던 부류에 합류해 나도 똑같이 유난을 떨었다.

이번에도 비슷했다. 사람들이 정리해 논 '입영 준비물' 목록을 혹시라도 빠뜨릴까 캡처까지 해서 저장해 두고 하나씩 챙겼다. 그러고 나니 짐이 한가득이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건지, 여행을 보내는 건지. 나도 내가 한심스럽다가도 가서 불편할 아들을 생각하니 뭐 하나 뺄 게 없었다.

아들은 투덜거리면서 들고 갔다. 그중 몇 개는 집으로 돌아왔고 아들 말에 의하면 몇 개는 쓸 일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너무 호들갑이었나 싶어 무안해지긴 했지만 마음 한편에선 '그래도 있으면 언젠간 잘 쓸걸? 그때 가면 엄마한테 고마울 거야'하는 마음이었다.

난 아직까지 '거봐. 엄마가 있어야 되지?'라는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말로는 매번 "이제 다 컸으니까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라지만 시선은 계속 아들에게 머물러 있다. 행여나 놓치는 일은 없은지. 먼 길을 돌아가는 건 아닌지. 적당한 때에 바로 투입될 수 있게 늘 대기 상태로 있다.

아들도 툭하면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라지만 어느 땐 아무렇지 않게 "엄마 이것 좀 해줘"라며 내게 기댄다. 아들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이젠 떨어질 때라는 것도 알고, 떨어지고도 싶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분리는 어쩐지 섭섭하고 불안한. 우리의 이 어정쩡한 관계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내 염려와 참견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워도 이 마음은 여전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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