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료식 날
수료식 전날. 나와 남편은 진해로 내려갔다. 집 근처에서 타서 군부대 앞까지 갈 수 있는 K-버스를 미리 예매해 뒀지만 수료식을 며칠 앞두고 연락이 왔다. 먼저 예매한 사람들로 자리가 꽉 차서 이용할 수 없다고. 무슨 일을 이렇게 하나 당황스러웠지만 화를 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급하게 서울역 출발 KTX에 자리가 있는지 알아봤다. 보다 보니 새벽에 서울역까지 가는 것도 만만치 않은 것 같아 차라리 여유롭게 하루 먼저 내려가기로 했다.
두 번째 가는 진해는 여전히 멀었다. 이동하고 대기하는 시간까지 더해지니 5시간은 훌쩍 넘었다. 남편은 연신 "와~ 멀다"를 외쳤고 나는 "이 시간이면 일본을 왔다 갔다 했겠다"며 맞장구를 쳤다.
수료식 당일 일찍 눈이 떠졌다. 아침은 걸렀다. 소화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우린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근처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내다 훈련소로 향했다. 입구엔 벌써 차들로 붐볐다. 마음이 급해졌다. 아들이 서있을 대열 앞에 자리를 잡을 생각이었다.
행사장에 들어서는데 멀리서 봐도 벌써 앞자리는 자리가 찼다. 커피숍을 괜히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하는 수 없이 멀찍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마저도 조금만 더 늦었으면 없을 뻔했다. 행사 시작은 아직 1시간이나 남았다. 게다가 날도 추웠다.
입대 날처럼 군악대가 들어왔다. 장르도 다양하게 여러 곡을 연주하며 흥을 돋웠다. 익숙한 트로트 반주가 흘러나오고 군장병이 구수하게 노래까지 불렀을 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여기서 이런 노래를 들을 줄이야.
연주는 조금씩 끝을 향해갔다. '군악대가 들어가면 곧 아이들이 들어오려나.' 점점 마음이 설렜다. 연주가 끝나고 군악대가 자리를 뜨자 이번엔 의장대가 들어왔다.
의장대의 퍼포먼스는 멋졌다. 여러 번 박수도 쏟아졌다. 근데 마냥 편히 볼 수는 없었다. '저 정도 하려면 훈련을 얼마나 했을까. 총이 꽤 무거울 텐데'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총 무게가 3.5kg이나 된다고 했다. 딱 신생아 무게 아닌가. 그냥 들고만 있어도 무거울 텐데 매일 던지고 받고 했으면 팔이 남아나질 않았겠다 싶었다.
의장대 행사가 끝나고 다시 군악대가 등장했다. 이번엔 운동장 양 사이드에 자리를 잡았다. 이번엔 또 무슨 행사인가 싶은 순간. 앞쪽 사람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어떤 엄마가 흥분하며 말했다. "어머어머. 저기 애들 들어온다! 아, 어떻게 어떻게."
고개를 들어 멀리 운동장 끝을 바라봤다. 뭔가 까만 무리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대열을 맞춘 까만 무리는 점점 앞쪽으로 다가왔고 드디어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각을 맞춰 걷는 아이들을 보니 울컥하면서 눈물이 맺혔다.
아이들은 소대별로 들어와 운동장의 빈자리를 하나씩 채웠다. 드디어 아이가 속한 소대가 들어올 차례가 됐고 난 고개를 있는 힘껏 빼고 아이를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내 자리에선 누가 누군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그래도 몇 분 후면 본다는 마음으로 서운함을 달랬다. 잘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몇몇 행사가 진행됐고, 아이들은 중간중간 경례를 하기도 늑대와 같은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그때마다 부모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얼마 후 무슨 명령이 내려졌는지 차렷 자세로 있던 아이들은 들고 있던 흰 정모를 두 손으로 잡고 앞으로 팔을 뻗었다. 이번엔 또 뭔가 하며 어리둥절하게 있는데 어떤 계급이 높아 보이는 분이 앞을 지나가며 말했다. "내려가시면 됩니다." 그제야 부모들은 알아차리고 우르르 각자의 아이들을 향해 달리다시피 걸어 나갔다.
나와 남편도 뒤늦게 "이제 가는 건가 봐"하며 아이를 찾아 나섰다. 해당 대열을 한참을 가도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왜 안 보여. 어딨는 거야'하며 초조해지려는 순간 아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놀랄 만큼 살이 빠졌다.
아들은 먼저 우리를 발견했는지 이미 얼굴에 웃음기가 번져 있었다. 그러면서도 흐트러지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히 보였다.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참고 아들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다행히 고생해서 빠진 얼굴이라기보다 더 건강하고 단단해진 모습이었다. 해군 정복을 입은 모습도 멋졌다. 집에서 보던 앳된 얼굴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아들이 낯설면서도 대견해 보였다.
남편은 아들이 들고 있는 모자를 받아 머리에 씌워줬다. 아들은 옆에서 보기에 일직선이 되어야 한다며 수평이 맞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다. 모자까지 쓰고나니 늠름해 보였다. 나는 그제야 아들을 안을 수 있었다. 역시 단단했다.
흥분과 설레는 마음으로 남편과 돌아가며 사진을 찍고 셋이서 셀카도 찍고 있는데 비슷한 제복을 입은 누군가가 지나가며 다시 대열을 정리하라고 했다. 순간 아들에게서 난생처음 들어보는 목소리가 들렸다. "예! 알겠습니다!" 낯선 저음에 목소리도 우렁찼다. 아들에게 이런 목소리가 있었나 싶었다.
부모들은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가고 몇몇 행사가 더 있었다. 해군은 5주간의 훈련기간이 끝나면 2박 3일간의 외박이 주어진다. 우린 남은 행사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모든 게 끝나고 우리는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나와 남편은 다시 아들을 향해 가는데 대열이 빠르게 흩어졌다. 먼저 자리를 뜨는 아이, 서로 모여 사진을 찍는 아이들이 섞이면서 우리가 대열 속으로 들어갔을 땐 이미 대열은 사라졌고 그 속에서 아들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한참 동안 아들을 찾지 못하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남편에게 아들 이름이라도 불러보라고 했지만 남편은 머뭇거렸다. 다른 때 같으면 벌써 이름을 크게 부르고도 남았을 텐데 행여나 아들 입장이 곤란해질까 조심하는 눈치였다.
한참을 헤맨 끝에 겨우 아들을 찾았다. 그 짧은 순간 어찌나 애가 타던지. 혼자 멀뚱히 있는 건 아닌지, 동기들과 사진도 못 찍고 가는 건 아닌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애타던 나와 달리 아들은 덤덤했다. 지나가던 동기들과 인사를 나누고 몇몇과는 사진도 찍고, 소대장을 만났을 때는 우르르 모여들어 단체 사진도 찍었다.
아들의 짐은 꽤 무거웠다. 창원중앙역에는 까만 정복에 하얀 모자, 그리고 보기에도 무거운 까만 배낭을 둘러맨 아들 같이 아이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난 참 낯설었지만 이곳에선 흔한 풍경이겠다 싶었다.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아들은 도넛이 먹고 싶다며 도넛을 사왔다. 도넛을 한 입 베어문 아들은 마치 천국의 맛이라도 되는 듯 "와!" 소리를 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곤 한 봉지를 뚝딱 해치웠다. 그런 아들이 귀여우면서도 안쓰러웠다.
나는 기차 안에서 연신 아들의 손을 잡았다. 얼마나 그리웠던 촉감인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