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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Oct 06. 2020

집에서 뒷받침만 좀 해줬어도

언제까지 이럴 거야

나이가 40, 50이 되어서도 부모 탓, 환경 탓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부모가 좀 더 배운 사람들이었더라면, 우리 집이 좀만 잘 살았더라도, 혹은 결혼할 때 조금만 보태줬더라도 라며. 그랬다면 지금처럼은 살지 않았을 거라 한다.   

   

예전에 한 부장은 “내가 집에서 뒷받침만 좀 해줬어도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지는 않지”라는 말을 종종 했다. 그때 그의 나이는 거의 50이 다 됐던 걸로 기억한다. 내 생각이지만 그는 집에서 뒷받침을 해줬어도 거기에 있었을 사람이었다. 그 이상은 힘들어 보였다. 사실 거기까지 온 것도 다행이지 싶었다. 굳이 이유를 설명하자면, 우선 굉장히 부정적이고 비관적이었다. ‘안 되면 어쩔 거야’, ‘이게 되겠어?’와 같은 말을 많이 했다. 오던 복도 내쫓을 타입이었다. 둘째, 능력이 그다지 있는 편은 아니었다. 쉬운 일도 어렵게 만드는 타입이랄까. 일의 핵심을 잘 못 짚었다. 셋째, 대인관계가 매끄럽지 못했다. 사람들이 듣기 싫어할 만한 말이나, 듣는 사람을 무안하게 만드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몰라서 하는 말일까 알고 하는 말일까 항상 궁금했다.    

   

친구 한 명은 “결혼할 때 집에서 도와준 거랑 아닌 거는 천지 차이야. 나도 누구처럼 도움 좀 받았으면 이러고 살진 않지.”라는 말을 자주 했다. 친구가 이런 말을 하면 나 역시도 격하게 공감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니까. 내 말이. 에혀” 신세 한탄은 덤이었다. 근데 그런 말도 몇 년 하다 보니 지겨워졌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하는 생각도 들고, 도와주는 게 당연한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도와주면 고마웠겠지만 못 도와주는 게 잘못은 아닌데 어쩌자고 자꾸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나 싶었다. 친구의 말에도 점점 맞장구 대신 “이제 와서 그게 뭐가 중요해.”란 말을 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그전까지 나는 남과 나를 비교하며 내가 남보다 못하다 싶을 때면 어김없이 ‘그래서 환경이 중요해’란 말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또 성공한 사람을 보면 그의 노력보다는 환경을 먼저 봤다. 내 예상과 비슷하면 ‘거봐’라며 그 사람의 노력은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만큼 내가 이루지 못한 건 전부 환경 탓으로 돌렸다. 나도 저런 환경이었으면 저렇게 했지, 라는 식이었다. 지금 이 말을 쓰면서도 부끄럽지만 어쨌든 만족스럽지 못했던 환경은 나에게 숨기 좋은 훌륭한 방패막이었던 셈이다. 


여전히 우리 집이, 우리 부모가, 를 외치고 있는 사람을 보면 이젠 좀 한심하단 생각이 든다. 부모가 책임져야 할 20년보다 두 배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20년 이상이면 뭘 해도 했을 나이 아닌가. 그 긴 세월 내내 우리 부모, 우리 집 타령만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싶다. 임경선 작가의 <태도에 관하여>를 읽다 크게 공감했던 부분이 있었다.      


“과거에 이런 일이 있어서…….”

“우리 가족이 이래서…… 지금의 내가 이럴 수밖에 없고…….”

항변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나이 서른 넘어서까지 그럴 수는 없다. 어느 시점이 되면 어떻게든 꾹 삼키고 알아서 처리해버려야 한다. 애초의 원인 제공자가 누구든, 누구나가 인생의 한 시기에는 저마다의 지옥을 품고 가는 것이고, 훌쩍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라는 과거에 휘둘리면서 고여 있기를 자처하면 슬슬 그 사람 자체의 기량이나 자립 여부를 묻게 된다.     

 

그렇다. 나 역시 이젠 자랄 만큼 자란 어른이 아직도 부모 탓을 하고 있는 걸 보면 그 사람을 한번 찬찬히 둘러보게 된다. 스스로 뭔가를 해낼 자신이 없나? 아직도 부모와의 연결고리를 놓고 싶지 않은 건가? 능력에 한계를 느끼나? 아님 아직도 마음은 다 자라지 못한 건가? 근데... 그럼 언제쯤 다 자라지? 60? 70? 


최근에 산책 중에 우연히 70은 되어 보이는 두 분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어려서부터 부모 복이 없어가지고...’ 몇 년 전 얘길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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