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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Oct 08. 2020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감정표현 방식도 되물림된다

하루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흥분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감정조절 장애가 있는 거 같애.” 갑자기 무슨 말인가 해서 자세히 물었더니 한 선생님이 별일도 아닌 것에 자주 화를 낸다고 했다. 그날도 무슨 이유에선지 뜬금없이 아이들에게 소리를 버럭 지르더니 심지어는 막말까지 했다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디까지나 아이의 입장에서 본 모습이고 선생님의 말도 들어봐야겠지만 대략의 상황이 어떤 건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도 그런 선생님들이 있었다. 기분이 안 좋을 때면 “그러니까 니들이 이것밖에 안되는 거야”, “생각들 좀 해”와 같은 말을 마구 던졌다. 더 어이없는 말은 “니들 지금 일부로 이러는 거지?”였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뭐를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기가 죽었고 선생님의 기분을 살피며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     

이런 사람들은 회사에도 있었다. 좋게 말해도 될 것을 인상부터 쓰고 화 먼저 내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과 일하다 보면 왠지 기가 빨리는 기분이었다. 에너지가 넘치다가도 그 사람만 보면 에너지가 고갈되는 기분이랄까.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이들을 가리키며 자란 환경 탓이라고 한다.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게 그것밖에 없어서 그런 거라고. 또 어떤 이들은 사랑을 덜 받아서 그런 거라는 말도 한다. 그놈의 사랑은 도대체 얼마나 받아야 하는 건지. 얼마만큼 받아야 성숙한 인간으로 크는 건지.      


어쨌든, 불쑥불쑥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을 보면 보통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심해지는 듯하다. 나이를 먹는 만큼 고집과 억지도 는다. 그러다 정말 힘 빠지고 누군가에게 의지할 때가 되어서야 한풀 기가 꺾인다. 근데 그때는 좀 많이 늦은 감이 있다.      


지인의 시어머니는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고 했다. 누군가의 말을 듣는 법도 없고, 본인이 원하는 것만 주장하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주변 상관없이 큰소리도 마구 친다고 했다. 지금은 몸이 약해져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데 자식들도 간호를 꺼린다고 한다. 게다가 자식 중 하나는 아예 등까지 돌렸다고 한다.      


뻔한 결말이 아닌가 한다. 안타깝지만 시어머니가 어떤 부모 밑에서 자랐고 어떻게 컸는지 또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는 주변인들에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런 사정은 당사자를 이해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될 순 있지만 이해와 수용은 다르다. 이해는 해도 받아들기는 쉽지 않다. 그것도 평생을. 하나 둘 떠나는 건 시간 문제다. 



정신과 전문의 전현태는 <자존심 내 청춘의 히든카드>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불안하거나 편하지 않은 성장 과정을 보냈다면 노력을 통해 새로운 자기표현의 길을 찾아야 한다. ...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정직하게 표현하고 현재의 모습을 만든 과거를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상처는 치유될 수 있고 부족한 부분도 채워질 수 있다. 그렇게 한 단계 성숙해진 자기의 모습 속에서 진정한 자존심도 그 힘을 발휘한다.”     


언제까지 화만 낼 건가. 또 언제까지 환경 탓만 할 건가. 계속 그렇게 사는 건 본인 자유이지만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어릴 적 환경을 내가 그대로 물려받은 것처럼 내가 만들고 있는 이 환경도 내 자식들에게 대물림된다는 사실이다. 나를 보고 자란 내 아이는 나와 똑같은 행동을 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내가 아무 때나 버럭 화를 낸다면 아이도 분명 그럴 것이고 내가 짜증이 많다면 아이도 짜증이 많을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고쳐야겠다고 크게 마음먹지 않는 한은 똑같은 인생을 살 확률이 높다.     

 

보도섀퍼의 <돈>에는 이런 말이 있다.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치욕이 아니다. 하지만 이 유산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명백한 치욕이다.” 감정 표현 방식도 마찬가지다. 건강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 감정 표현이 서툴렀던 건 내 탓이 아니지만 계속해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변화하려 하지 않는 건 게다가 대물림까지 하는 건 명백한 나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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