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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Oct 20. 2020

늙어서 호기심이 없는 게 아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는 게 재미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일도 재미없고, 사람 만나는 것도 재미없고, 여행마저 재미가 없다고 한다. 다 거기서 거기 또는 다 그게 그거라고 한다. 사람 역시 그놈이 그놈이라고 한다. 뭘 들어도 시큰둥하다. 다 아는 얘기라며. 당연히 집중해서 듣지 않는다. 앞 몇 마디 듣고 뒷얘기는 알아서 생각한다. 어떻게 아냐고 하면 ‘뻔하지’라고 한다. 


이런 증상은 대체로 마흔쯤부터 시작된다. 그때쯤엔 세상모르는 게 없는 것 같다. 일도 웬만한 건 다 해본 것 같고, 사람도 웬만한 사람을 다 겪어본 것 같다. 세상 돌아가는 것도 뻔해 보인다. 마치 통달한 사람 같다. 당연히 의욕도 없고, 열정은 더 없고, 뭘 해도 재미가 없다. 그러면서 제2의 사춘기가 찾아온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부터 일은 왜 하나, 나는 뭔가, 심지어는 왜 사나 란 생각까지 한다. 세상만사가 다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는 삶의 의미 같은 건 더 이상 찾지 않는다. 의미 따윈 이젠 의미가 없다. 어릴 때나 의미 찾고 뭐 찾고 하는 것이지 다 부질없다 한다. 일하는 재미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일은 재밌어서 하는 게 아니라 먹고살려니까 하는 거다. 어쩌다 누가 사는 낙이 없다 하면 다 그렇게 사는 거라며 죽지 못해서 사는 거라고도 한다. 



왜 이렇게 나이 들수록 사는 게 재미가 없는 걸까? 왜 이렇게 하루하루가 똑같고 지루하기만 한 걸까?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호기심이다. 호기심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더 알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없다. 당연히 뭘 더 알려고 하지 않는다. 호기심 없는 삶은 매일매일이 똑같다. 오늘은 어제와 같고 내일은 오늘과 같다. 알아가는 재미, 깨닫는 재미만큼 큰 재미도 없는데 알려고 하지 않으니 사는 게 재미가 없을 수밖에. 


나이를 먹으면 그만큼 살아낸 날이 많아서 그런지 경험과 지식도 그만큼 풍부하다 생각한다. 착각이다. 경험과 지식에도 종류와 깊이가 있다. 매일 똑같은 경험은 경험으로서 큰 의미가 없다. 편협한 지식은 분야만 바뀌어도 그다지 쓸모가 없다. 다른 곳에서는 거의 신생아 수준이다. 얄팍한 지식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많이 안다 생각한다. 왜일까? 첫째는 너무 몰라서 그렇다. 사람은 아는 게 없으면 오히려 모르는 게 없다 생각한다. 뭘 조금이라도 알아야 내가 모르는 게 무궁무진하다는 걸 아는데, 아는 게 없으니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다 그 얘기가 그 얘기다.’, ‘다 아는 얘기다.’ 책을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다 안다고? 라는 생각이 든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더 깊이 공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알수록 알고 싶은 게 많아진다. 아는 게 없으면 알고 싶은 것도 없다. 두 번째는 한 분야의 전문가일수록 그렇다. 한 분야를 많이 아는 것뿐인데 그만큼 다른 분야도 다 안다는 어이없는 착각을 한다. 그런 사람 중에는 자기가 하는 일이 최고로 어렵고 최고로 중요하다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다른 건 다 시시하다 여기고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라 한다. 몰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가끔 의사, 변호사와 같은 전문 직종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해당 분야 외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 물정도 모르고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자신은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호기심도 어릴 때나 있는 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틀린 말이라 생각한다. 호기심이 있어야 늙지 않는다. 반대로 호기심이 없으면 늙은이나 다름없다. 매사가 시큰둥하고 무의미하고 알아서 뭐하냐며 인생 다 산 사람처럼 구는데 이런 게 늙은이이지 늙은이가 따로 있을까. 


가끔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이를 잊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내 또래 혹은 어느 땐 나보다 더 젊은 것 같기도 하다. 나중에서야 나이를 생각해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 바로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다. 시대 흐름도 빨리 캐치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눈도 정확하다. 그만큼 아이디어도 넘쳐난다. 해서 뭐하냐는 말보다 일단 해보자는 말을 더 많이 한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허투루 듣는 법도 없다. 항상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이런 사람들과의 대화는 늘 즐겁다. 나이는 나보다 많지만 오히려 내가 에너지를 받은 기분이다. 



“세상사를 다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속 편한 확신을 떠받치는 것은 자신의 무지를 무시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이다” 노벨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의 말이다. 나이 먹을수록 잃지 말아야 할 것이 호기심이다. 나의 무지를 무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적어도 궁금해하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궁금하다 보면 찾아보게 되고 묻게 된다. 하나를 알면 다른 것도 궁금해진다. 이 궁금증은 생활에 활력을 준다. 간혹 이 나이에 배워서 뭐하냐는 사람들이 있는데 꼭 뭘 하려고 배우는 건 아니다. 배움 자체에도 즐거움이 있다. 알아가는 즐거움, 깨닫는 즐거움을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나는 특별한 재능이 없다. 열렬한 호기심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죽기 전까지도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연구를 계속했다고 전해진다. 다 늙어서 무슨 호기심이냐는 말은 하지 말자. 호기심을 잃는 순간부터 사는 게 재미없고 늙기 시작하는 거다. 늙는 것과 어른이 된다는 건 다른 문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성장과 발전을 의미하지만 늙는다는 건 시듦을 의미한다. 시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 rkit,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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