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친구들로부터 “너네 애는 공부 잘해?”라는 질문을 받지만 아이가 어릴 때는 “너네 애는 말 잘 들어?”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오랜만에 소식을 전하는 사이에서도 안부 인사처럼 “애는 말 잘 듣고?”라는 질문을 받았다.
말을 잘 듣는다는 건 뭘까? 하라는 걸 잘 따라 하는 걸 말하는 걸까, 아니면 하지 말라는 걸 하지 않는 걸 말하는 걸까? 아니면 말대꾸를 하지 않는 걸 말하는 걸까? 간혹 자기 애를 두고 “아휴 힘들어 죽겠어. 말대꾸를 꼬박꼬박 해.”라고 하는 친구나 지인들도 있었다. 그런 걸 보면 말을 잘 듣는다는 건 어쩌면 내가 하는 말에 다른 의견 없이 “네, 알겠어요.”라고 답하는 걸 말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아이가 엄마 아빠가 하는 말에 전부 다 “네, 알겠어요.”라고 하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모르는 것도 많고, 신기한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을 때인데 엄마 아빠의 말에 전부 “네”라고 하는 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로봇이나 하는 대답이다. 나는 어릴 때 부모님께 어디서 말대꾸를 따박따박하느냐는 말을 자주 들었다. 말대꾸가 아니라 내 생각을 얘기하는 거라 하면 더 혼이 났다. 끝까지 말대꾸를 한다며.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인가, 생각이 나더라도 말을 하지 말라는 말인가.
'말 잘 들어'란 얘기는 곧 '생각하지 마'란 얘기이다. 나도 가끔 아이에게 “선생님 말 잘 들어.”라고 할 때가 있었다. 멀리 현장학습을 갈 때다. 혹시라도 혼자 떨어져 길을 잃거나 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하는 말이었다. 호기심에 여기저기 둘러보다 선생님이나 무리를 놓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말 잘 들어’라는 말은 그야말로 선생님이 하는 말을 잘 귀담아듣고 하라는 대로 하라는 얘기다. 혼자 판단해서 행동하지 말라는 말이다.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이런 말을 할 일조차 사라졌지만 어쨌든 이런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는 나는 선생님 말 잘 들으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아이가 학교에서 선생님 말을 잘 듣고 오기보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오길 바란다. 그리고 의문을 많이 갖길 바란다. 가능한 질문도 많이 했으면 좋겠는데 이건 아직까지는 주변 분위기를 잘 살펴야 할 것 같다. 안타깝지만.
엄마인 나의 말에도 “네”라고 대답하기보다는 자기 생각을 먼저 표현하길 바란다. 그래서 늘 자기 생각이 중요하다, 네 생각은 어떠냐고 묻는다. 가끔 아이의 심오한 질문에 말문이 막혀 당황스러운 때도 있고 때로는 피곤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내 앞에서 이런저런 자기 생각을 재잘거리는 아이의 모습이 좋다. 말 잘 듣는 아이보다 생각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