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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Oct 21. 2020

진심은 언젠가는 통한다?

미스트롯이 한참 인기를 끌었다. 그 인기에 힘입어 ‘미스트롯 시즌2’가 진행된다는 기사를 봤다. 이에 시즌1의 TOP6가 자신들의 뒤를 이을 예비 후배들에게 지원 독려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트롯을 향한 열정과 사랑이 가득한 분이면 된다. 실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눈에 확 띄는 개성을 지니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하다. 어디서든 또 누구에게든 진심이란 늘 통하는 법이니까”     

보자마자 살짝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트롯을 사랑하는 진심만 있으면 된다고? 오디션은 대부분 진심을 갖고 참가할 텐데 누구 진심이 더 간절한가에 따라 우승이 갈리나? 그 진심을 심사위원들은 어떻게 알아보고 판별하지? 등등의 의문이 생겼다.      


안티팬이 적지 않던 한 연예인은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평소 생활하는 모습과 솔직한 자기 생각을 털어놓으면서 호감을 얻기 시작했다. 그는 말했다.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고 생각한다. 진심을 계속 갈고닦으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하겠다.”     


또, 한 가수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소문이 돌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문은 점점 사실이 되어 가는 듯했다. 그러자 소속사에서 입장을 발표했다. “팬분들에게 부끄럽거나 떳떳하지 못한 행위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입니다. 저희는 믿습니다. 진심은 통한다는 것을.”     



진심은 정말 통할까? ‘진심은 언젠가는 통한다’는 말을 잘 들여다보면, 진심이 통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 자 혹은 앞으로 계속 기다려야 할 자에 대한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가 들어있다. “거봐. 진심은 통한다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진심은 통하게 되어 있어.”와 같이 쓰이는 걸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때로는 자기 암시와도 같다. “진심은 통하게 되어 있어. 언젠가는 알아줄 날이 올 거야.”      


근데 진심이 그렇게 잘 통하던가? 기다리면 언젠가는 다들 내 진심을 알아주던가? ‘언젠가는’이라고 말할 정도로 진심은 통하기 어렵다. 그만큼 진심이 통하기를 기다리는 데는 많은 노력과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때로는 이 말이 희망 고문이 되기도 한다. 그 ‘언젠가는’이 금방 찾아올 것 같지만 좀처럼 오지 않는다.  

   

진심은 거짓 없는 진짜 마음을 말한다. 비슷한 말로는 본심, 본의 등이 있을 수 있겠다. 이쯤에서 다시 의문 하나가 생긴다. 나는 내 진심을 잘 아나? 우리는 “진심으로 축하해.”, “진심으로 미안해.”, “진심으로 응원해.”, “진심으로 원해.”와 같은 말을 자주 한다. 좀 엉뚱하지만, 진심을 순도로 따진다면 이때의 진심은 순도 100프로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내 경우는 좀 아닌 듯하다. 축하는 하지만 그 안에는 부러움도 있고, 약간의 시기도 있다. 사과는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이 정도도 이해 못 해주나? 나만 잘못했나?’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또 누군가를 응원은 하지만 내심 내가 더 잘되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원한다고는 했지만 ‘안되면 할 수 없고’란 마음이 있기도 하다. 이럴 때면 내 진심은 좀 의심스럽다. 정말 ‘진심으로’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싶다. 이렇게 나도 확신할 수 없는 진심이 상대방에게 전달되고 통하기를 바란다는 건 좀 과한 욕심이지 않을까. 어쩌면 이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더 이상 보여줄 게 없을 만큼 내 마음을 다 보여줬는데도 상대방이 전혀 진심이라 생각하지 않을 때가 있다. 마음을 꺼내서 보여줄 수도 없고 이럴 땐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다. 반대로 그다지 진심까지는 아니었는데 상대방이 내 마음을 진심이라 여길 때도 있다. 너무너무 고맙다며, 너의 마음이 충분히 전해진다며 뜻밖의 과한 반응을 보이면 그렇게 당혹스러울 수가 없다. 아니라고 하기도 뭣하고, 긍정하자니 마음이 좀 찔린다.   

   

또 하나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모든 진심은 옳은가’이다. 나는 진심일 수 있지만 그 진심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일 수도 있다. 나에게도 진심이 있듯이 상대방에게도 진심이 있다. 난 진심으로 좋아하지만, 상대방은 진심으로 싫어할 수 있는 것처럼.      



진심은 늘 통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무리 진심이라 할지라도 상대방이 왜곡해서 보고자 한다면 통할 리가 없다. 진심은 내 의지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진심이 통하느냐 안 통하느냐 보다 내 진심이 정확히 뭔지, 진짜 진심인지, 혹시 내 진심으로 인해 불편해하는 사람은 없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우선이다. 내 진심에 확신이 서고, 그것이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 판단된다면 최대한 진심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 말로는 진심이라면서 행동에서는 전혀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진심이라 하기 어렵다. 행동으로까지 나타냈다면 그다음은 내 몫이 아니다. 진심이 통할지 안 통할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난 그저 진심이 통할 때까지 붙잡고 매달릴지 아니면 다른 내 일들을 씩씩하게 해나갈지만 결정하면 된다.   

© markuswinkler,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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