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 으레 대접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어른들이 있다. 공경 혹은 존경까지 바란다. 어떤 때는 대놓고 요구하기도 한다.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되거나 아랫사람과 동등한 입장이 취해졌을 때는 요즘 것들은 어른을 존중할지 모른다며 분개한다.
얼마 전 지하철을 탔는데 조용하던 지하철 내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났다. “왜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자꾸 시비를 걸어요”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넌 몇 살인데 이렇게 어른한테 대들어?” 뒤이어 60대쯤 될 것 같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말에 젊은 남자는 나이 먹을 만큼 먹었다며 응수했다. 60대 남자는 조금은 당황한 듯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어디 어른한테”라며 더 큰 소리를 쳤다. 이 말에 젊은 남자는 지금까지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아예 놓기로 작정한 듯 보였다. 나이 먹은 게 무슨 벼슬이냐, 행동을 똑바로 해라, 마지막에는 그렇게 나이 먹지 말라는 말까지 쏟아냈다. 이쯤 되자 가만히 듣고만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끼어들었다. “아무리 잘못했어도 그렇지 나이 든 사람한테 그러면 되나.”, “젊은 사람이 좀 참지 그래요.” 어떤 이는 60대 남자를 나무라기도 했다. “아저씨도 좀 그만하시죠. 뭐 잘한 것도 없는 거 같은데” 이 소란은 젊은 남자가 다음 역에서 내리면서 마무리가 되었다. 60대 남자는 뻘쭘한 채로 남아 있었고 분위기상 어떤 지지도 받지 못하는 듯했다.
대형 마트에서의 일이다. 직원 두 분이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둘 다 60은 충분히 넘어 보였다. 먼저 들어온 듯한 직원이 갓 들어온 듯한 다른 직원에게 조언하듯 말했다. “나이 먹었다고 이렇게 대충 일하고 그러면 안 돼요. 이런 데 나와서도 대접받을 생각 하면 일 못하지. 그럴 거면 그냥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게 나아요.”
종종 나이 먹었다는 걸 무슨 무료 패스권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이를 먹었으니 억지를 좀 부려도 이해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기준에 좀 못 미치더라도 나이 든 사람이 하는 건데 좀 봐줄 수 있지 않냐 한다. 나는 좀 편하게 때론 함부로 대하더라도 상대방은 깍듯하길 바란다.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의 작은 곳에서부터 챙겨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별일도 없으면서 안부 전화를 기다린다. 안부 전화가 없으면 내가 잘 지내는지 궁금하지도 않냐며 섭섭함을 드러낸다. 명절이면 은근히 명절 메시지를 기다린다. 아무리 형식적인 메시지라도 보낸 사람과 안 보낸 사람을 구별하고 기억한다. 가족의 대소사까지 챙겨주면 그건 뭐 거의 내 사람이나 다름없다.
나이 든 부모들 중에는 말끝마다 여태껏 키워놨더니, 죽어라 공부시켰더니, 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식이 부모 생각대로 고분고분하지 않을 때 많이 하는 말이다. 뭘 하든 맞다, 알았다는 말을 해주길 기대한다. 자기 생각을 좀 어필하면 머리 컸다고 이제 부모를 가르치려 든다고 한다. 머리가 컸으면 자기 생각도 어필할 줄 알아야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언제까지 부모 말 잘 듣는 어린 애로 있길 바라는 걸까.
한근태 작가는 <나는 심플한 관계가 좋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모 자식의 관계는 쌍방향이다. 예전의 효가 한쪽 방향이었다면 지금의 효는 쌍방향으로 가야 한다. 한쪽의 일방적인 강요나 의무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효는 강요하 수 없는 것이고,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물었다. “지금 자식의 눈에 비친 당신은 어떤 존재일까? 효도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가? 자식이 의무감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와 당신의 집에 오는 것 같은가?”
존경, 대우, 대접, 효 등등이 나이 먹는다고 저절로 따라오는 것들일까? 나이를 먹으면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들일까? 혹은 나이랑 상관이 있을까? 난 나보다 어려도 열심히 뭔가에 계속 도전하는 사람을 보면 존경심이 절로 든다. 닮고 싶은 사람은 먼저 마음이 간다. 당연히 마음의 표시도 하고 싶어 진다. 나이와 상관없이 바른 생각을 갖고 바른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기꺼이 어른 대접도 해주고 싶다. 반대로 나이 먹었다는 이유로 뭔가를 계속 바라는 사람은 나도 모르게 마음이 뒷걸음질을 치게 된다. 이건 어쩔 수가 없다. 마음이 그렇게 움직인다. 그래도 겉으로라도 존경심을 표시해주길 바란다면 해줄 수는 있지만 분명 마음은 아니다.
“강하고 차분한 사람은 늘 사랑받고 존경받는다. 그는 메마른 땅에 그늘을 만들어 주는 커다란 나무 같고, 폭풍 속에서 몸을 피할 수 있는 큰 바위 같은 존재이다. 어느 누가 평온한 마음과 상냥한 품성과 안정된 삶을 좋아하지 않을까?” 제임스 앨런의 <생각하는 모습 그대로>에 나온 말이다. 가끔 "넌 날 존경은 하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뭔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뜻이기도 하면서 존경 좀 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다. 본인 입으로 존경을 요구하다니. 어디 존경이 하란다고 해지는 거든가. 나이 먹고 존경이 받고 싶다면 바라지만 말고 존경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