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유튜브 영상을 하나 보여줬다. 영상 속에는 한 여성이 지하철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는 남성의 바지에 표백제가 든 액체를 뿌리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이 표백제는 일반 표백제보다 30배가 더 농축된 것으로 옷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남긴다고 했다. 나중에 자세히 찾아보니 해당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다리를 넓게 벌리고 앉는 일명 ‘쩍벌남’에게 이런 행동은 남성성을 전시하는 행동이며 주변인들 특히 여성과 어린이에게 불편을 끼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목적으로 이 영상을 제작했다고 한다. 뒤이어 런던의 디자인상을 받은 한 의자가 소개됐는데 여자에게 주어진 의자는 의자 가운데 장애물이 있어 다리를 넓게 벌리고 앉을 수밖에 없고, 남자에게 주어진 의자는 다리 쪽 폭을 줄여 저절로 다리가 오므라지게 하는 형태였다. 주어진 의자에 앉은 영상 속 각각 남녀의 얼굴엔 꽤 어색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이 의자는 이후 많은 이슈를 낳았다고 했다. 영상에서는 남자는 왜 다리를 벌리고 앉는지에 대한 설명이 담긴 또 다른 영상이 소개됐다. 남자는 음경과 고환이 다리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에 이것이 장애물이 되어 다리를 오므리기가 힘들고 고환의 온도는 약간 낮아야 정자 생성에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영상을 소개한 유튜버는 주변에 피해를 줄 만큼 다리를 과하게 벌리고 앉는 남자도 문제지만 기본적인 신체 구조 차이에 대한 어떤 이해도 없이 과격한 행동을 취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영상이 끝난 후 아이는 내게 엄마는 이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나 역시 이 이야기에 동의했다. 가끔은 아니 종종 마치 ‘나 남자다잉’이라는 듯 과하게 쩍벌하고 앉아 있는 진짜 매너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남자도 있긴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고서는 여자는 오므리는데 남자는 왜 못하냐, 그럴 생각이 전혀 없으니 그런 것 아니냐, 남자도 여자랑 ‘똑같이’ 다리를 딱 붙이고 앉으라며 몰아세우는 건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한다. 영상 속에 나오는 남자 중에는 정도가 그렇게 심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옆 자리가 비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보기도 그렇고 옆에 앉으면 불편한 건 맞지만 굳이 의사 표현을 저런 식으로 했어야 했을까 싶었다. 과연 저 행동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의도가 정당하다고 행동까지 정당한 건 아닐 수 있는데.
예전에 남편과도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남편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남자는 신경을 써도 얼마간 시간이 좀 지나면 다리가 저절로 벌어지게 된다고.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난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크게 공감했던 내용이 생각나 아이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평등하기 위해서는 차이를 알아야 한대. 엄마는 맞는 말 같아. 서로의 입장 차이를 몰라서 차별이 더 생기는 것 같아.” 사실 그랬다. 여자로서 불편한 일, 편견에 따른 부당한 대우 등을 아무리 얘기해도 귀 기울지 않고 인정하려 하지 않을 때 차별은 쉽게 없어지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건 아마 나도 그랬을 거다. 나 역시 남자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탓에 갖고 있는 편견이 분명 있을 테고 그로 인해 나도 모르는 차별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건 비단 남녀 문제뿐만 아니라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사회 곳곳에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뭐든 ‘똑같이’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먼저 차이를 이해하고 서로를 배려하면 굳이 평등을 주장할 일도 없어지지 않을까 한다. 좀 이상적이고 막연한 말이지만.
대충 이런 뜻에서 아이에게 대답은 했지만 순간 아이가 내 말을 알아들었을까 싶었다. 너무 친절하지 못한 대답이었나? 좀 더 자세히 얘기해 줘야 할까? 이어지는 아이의 대답을 듣고 내가 아이를 너무 어리게만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대답은 이랬다. “그치. 근데 차이하고 차별을 구별 못 하는 사람들이 있어. 차별은 있으면 안 되는 거지만 차이는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건데. 아니 차이는 인정을 해야지.” 내가 더 보탤 말도 해줄 말도 없었다. '그러게'란 말 외에는.
문득 이번 올림픽에서 안산 여자 양궁 선수의 숏컷에 대해서 운동과 전혀 상관없는 여러 말이 오가는 상황이 떠올라 아이의 생각이 궁금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물었더니 시원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왜들 그렇게 남자 여자를 나눠. 아주 지긋지긋해 죽겠어.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앞으로 아이가 사회에 나갈 때쯤에는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즉 좀 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구별과 차별이 적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살짝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