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싫어한다. 재미가 없다. 요리를 하는 일련의 과정이 귀찮다. 재료를 다듬고 씻고 데치고 볶고 양념하는 모든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진다. 뭘 하나 만들어도 항상 레시피를 찾아보는데 과정이 좀 길다 싶은 건 패스하고 가장 간단한 방법을 택한다.
특히 요즘은 아주 죽을 맛이다. 다시 심각해진 코로나와 방학 덕분에 하루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차려야 한다. 아이는 자기 전에 내일 아침 메뉴를 묻고 아침 식사 후에는 점심 메뉴를 묻는다. 점심을 먹으면서 저녁 메뉴를 궁금해한다. 마치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과가 먹는 일인 것처럼. 거디다 메뉴도 꽤 중요하다. 있는 거랑 해서 대충 먹자고 하면 실망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이에 비해 내가 할 수 있는 메뉴는 아주 한정적이다. 점심 뭐 먹을 거야? 카레 먹을까? 그거 며칠 전에도 먹었잖아, 같은 대화가 매번 오간다. 그럴 때마다 밥 좀 안 먹고살 수 없나 하는 고민을 심각하게 해 본다.
얼마 전에는 아이가 갑자기 나물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것도 명절에나 먹는 삼색 나물을. 좀 편해보자고 비빔밥을 점심 메뉴로 제안했다가 일이 더 복잡해졌다. 내가 생각한 비빔밥은 대충 있는 반찬에 고추장, 참기름 넣어서 먹는 거였는데 비빔밥에는 삼색 나물이 들어가야 맛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고사리랑 도라지나물 먹어 본 지 너무 오래됐다며 해주면 안 되냐고 묻는다. 그런 건 할머니 집에 가서나 먹는 거야. 아님 사 먹든가. 근데 비빔밥 한번 먹자고 삼색 나물을 사는 건 그렇지 않아? 그럴 바에 비빔밥을 사 먹지.
암튼 나는 끝내 삼색 나물은 하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하면 손질법부터 레시피까지 다 나오겠지만 어디 요리를 방법을 몰라서 안 하는 거겠는가. 대신 마트에서 나물 코너를 그냥 지나치기가 그래서 평소에 잘 안 해 먹는 것 중 그나마 간단할 것 같은 고춧잎을 골라왔다. 씻어서 데치기만 하면 되겠거니 했는데 생각보다 줄기가 거칠어서 다듬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슬슬 짜증이 올라오고 한숨도 나왔다. 이래서 내가 요리가 싫은 거다.
아들은 곧 고 2 선택과목을 정해야 해서 진로를 아주 구체적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 전부터 아들은 나와 달리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그렇지만 그냥 관심 정도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아이가 관심을 보였던 직업분야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한동안은 빠져있다가 대체로 얼마 지나면 이러이러해서 이건 별로겠다며 관심을 접거나 이건 그냥 취미로 해야겠다로 결론짓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근데 이번은 좀 다르다. 꽤 오래가고 게다가 진지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더 확고해지는 듯하다. 내가 봐도 아들은 요리 얘기를 하고 요리 프로그램을 볼 때면 눈이 반짝인다. 슬쩍 그럼 백종원처럼 요식 사업을 해보는 건 어떠냐고 했더니 자기는 사업이 아니라 요리가 하고 싶다고 한다. 확고하다.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이 있는데 거기 나오는 유튜버가 요리사 출신이기도 하고 최근에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모습을 찍어 올리는데 함께 나오는 셰프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다. 정말 선망의 대상을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이런 일이 하고 싶은 거냐 물으니 그렇단다.
참 신기하다. 분명 나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텐데 나와 너무 다르다. 물론 남편도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주 귀찮아하고 요리를 하느니 차라리 나가서 사 먹자고 한다. 외식을 사랑한다.
이런 걸 보면 가끔 부모들이 아이에게 하는 "내가 널 모를까. 내 뱃속에서 나왔는데"라는 말, 혹은 "너는 내가 제일 잘 알아" 같은 말은 정말 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내 뱃속에서 나왔다고 나와 같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나나 남편의 유전자를 받았으니 아이도 이러이러할 거라는 짐작도 버려야 하지 않을까.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얜 누굴 닮은 건가 할 때가 참 많다. 둘의 유전자로 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결과물이다 싶을 때가. 근데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그것도 좀 웃기다. 누구 닮은 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매번 누구 닮은 건지 고민을 하는 건지. 아이는 누구와 누구의 결합물 혹은 조합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완전히 새로운 독립체인 것 같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내 아이는 이과 성향일 거라 생각했다. 아니다. 우리 아이가 이과 성향일 거라 생각했다기보다 대체로 남자아이들은 이과를 택하니 우리 아이도 그러지 않을까 혹은 그래야 하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학교 설명회 때도 열심히 이과만 메모를 했다. 이제 와서 찾아보니 인문사회 계열 메모가 없다.
생각해 보면 아이는 이과 쪽보다 문과 쪽 성향이 더 짙다. 수학, 과학은 매번 이걸 왜 배우는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사회, 역사, 국어는 꽤 관심을 갖는다. 얼마 전에는 과학이 왜 싫으냐 물으니 사회는 세상을 멀리서 전체적으로 보는 느낌이고 알아 두면 사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과학은 뭔가에 필요 이상 초근접해서 하나하나 쪼개서 보는 느낌이고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란 생각이 든다고 한다. 확 와닿는 설명이었다. 근데 난 그 하나하나 쪼개서 보는 게 재밌었는데, 성적과 무관하게. 이 역시 많이 다르다 싶었다.
아이가 커갈수록 아이에 대해서는 독단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을 거란 생각도 든다. 내 아이가 요리사를 꿈 꿀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