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딱새우회
오랜만에 연애를 시작했다. 아직 서로를 잘 몰라 알아가는 단계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점점 더 좋아하고 있는 듯했다. 다양한 인연을 거쳐 연인이 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연애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점점 어려워졌다. 예전에는 모르면 알아가고, 맞춰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애초에 나와 비슷하거나 잘 맞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졌다.
사귀기 전, 대명이가 내 이상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대화가 잘 통하고 취미가 맞았으면 좋겠어"라고 답했었다. 그걸 기억했는지 연애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명이는 "우리가 파리에서 만났으니 가까운 제주도라도 다녀오자"며 개학하기 전에 제주 여행을 제안했다.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 망설였지만, "여행은 늘 옳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함께 떠나기로 했다. 오랜만의 제주 여행도 기대됐지만, 늘 혼자 다니던 제주를 남자친구와 함께 간다는 생각에 더욱 설렜다. 서로 자유여행을 선호하는 스타일이라 일정 짜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제주에서는 내가 운전을 맡고, 대명이는 맛집과 카페 노선을 정리했다. 하지만 첫 여행이다 보니 여행 스타일이 맞지 않을까 살짝 걱정도 됐다.
며칠을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보내다 보니 드디어 제주 여행 당일이 되었다. 김포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공항에서 본 대명이는 조금 낯설었다. 파리에서 만난 친구가 이제는 남자친구가 되었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그날따라 대명이가 멀게 느껴졌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행 스타일이 달라 맞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한편, 대명이는 신났는지 옆에서 쫑알쫑알 이야기를 했고, 나는 몇 마디만 건네며 여행 일정을 다시 확인했다. 나만 걱정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었던 듯, 대명이는 들뜬 표정으로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비행기에 올라 눈을 감았다가 떴더니 벌써 제주에 도착해 있었다.
제주의 첫날,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막상 제주 땅을 밟으니 걱정은 사라지고 신이 났다. 강풍이 불어 나뭇잎이 흔들리고, 시원한 빗줄기가 심란한 마음까지 씻어주는 듯했다. 우산이 없던 우리는 편의점에서 투명한 우산 하나를 사서 함께 썼다. 지금 생각하면 왜 우산을 두 개 사지 않았을까 싶어 웃음이 난다.
원래도 여행을 좋아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혼자 떠나는 일이 많았다. 마음이 복잡하거나 심란할 때면 유럽으로 훌쩍 떠나거나, 제주도에서 일주일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남자친구와 함께였다. 대명이는 제주도가 오랜만이라고 했고, 좋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다. 그래서 알고 있는 맛집과 대명이가 가고 싶어 했던 곳들을 위주로 일정을 짰다. 신난 대명이를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2박 3일 중 이튿날, 우리는 동문시장에 들러 회를 사기로 했다. 제주도에 오면 꼭 먹어야 할 음식으로 흑돼지, 고기국수, 고등어회, 딱새우회를 떠올린다. 하지만 대명이는 새우 알레르기가 있어 딱새우회를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딱새우회 한 접시, 대명이는 고등어회 한 접시를 샀다. 숙소에서 포장해 온 회를 먹으며 "이렇게 맛있는 걸 못 먹다니 아쉽다"며 딱새우회를 흡입했다. 사실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는 이성을 잃는 편이다.
간식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저녁으로 흑돼지를 먹기로 했다. 그런데 낮잠을 너무 푹 자버렸는지 일어나 보니 해가 많이 져 있었다. 서둘러 대명이가 꼭 가고 싶어 했던 흑돼지 맛집으로 향했지만, 웨이팅이 1시간 30분이나 걸렸다. 기다리는 동안 강한 제주 바람이 불어 얼굴이 간질거렸지만, 오래 서 있는 게 힘들어 간지러움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침내 자리에 앉아 세팅을 기다리고 있는데, 대명이가 나를 빤히 보더니 물었다.
"너 얼굴이 왜 그래?"
"내가 왜?"라고 되묻고 화장품에 달린 거울을 봤다. 순간 깜짝 놀랐다. 얼굴 곳곳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파리 여행 마지막 날의 악몽이 떠오르며 아찔했다. 하지만 1시간 30분을 기다려온 곳이라 애써 외면하며 "괜찮아, 잠깐 긁어서 그래"라고 대명이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대명이는 표정이 심각해졌다.
고기가 나왔고, 처음엔 맛있게 먹었지만 점점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얼굴이 점점 뜨거워지고 손끝까지 저릿해졌다. 대명이는 이상함을 감지하고 말했다.
"안되겠다. 너 알레르기 같아. 새우 알레르기 너도 있는 거 아니야? 어쩌면 파리에서도, 지금도 새우 때문일지도 몰라. 당장 병원 가자."
"기다린 게 아까워, 조금만 더 있다 가자"며 참으려 했다. 무엇보다 대명이가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곳에서의 추억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상태는 점점 나빠졌고, 대명이는 단호했다.
"지금이 문제가 아니야. 병원 가자."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명이는 내 손을 잡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어느새 그의 표정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식당 앞 차가운 밤공기에 노출되자, 몸이 더 으스스해졌다. 혹시 이 여행이 우리에게 나쁜 기억으로 남을까 봐 마음이 조급했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과 달리, 대명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응급실로 향했다. 그의 따뜻한 손이 손끝까지 저릿한 내 손을 감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