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만남

혼동 속에서 내린 결정

by 오기우기

우리가 한국에서 재회한 지 며칠이 지난 후, 나는 외할머니댁이 있는 경기도 오산에서 당분간 지내기로 했다. 아직 대학교는 방학 중이었기에 시간이 있었다. 마침 작은아빠가 그 근처에서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일손이 부족하다는 연락을 받아 알바라도 하기로 했다.

그날 대명의 고백을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우리 사이는 여전히 이어졌다. 아니, 오히려 대명이는 더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알바 때문에 자주 연락을 하지 못해도, 출근길, 점심시간, 퇴근길마다 짧은 통화를 이어갔다.


나만 바쁘게 사는 줄 알았는데, 대명이는 나보다 더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내가 아는 대명이는 단지 유럽을 여행하는 대학생에 불과했지만, 한국에서의 그는 과외를 하루에 두세 개씩 하며 중·고등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쳤고, 취업을 위해 다양한 자격증 공부와 서포터즈 활동까지 병행하고 있었다. 한때 회사를 다니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녔던 내 자신이 꽤나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퇴사하고 방학을 맞이하고 나니, 나보다 더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알바를 시작한 지 나흘째 되던 날, 대명이는 공장 근처까지 나를 보러 왔다. 서울에서 오산까지 대중교통으로만 왕복 네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오산에는 외할머니댁 외에 아는 사람이 없어 외로웠고, 새로운 알바 환경에도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익숙한 얼굴을 보니 반가움이 밀려왔다. 우리는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친한 친구가 미국 인턴을 다녀왔다며 관련 자료를 받아다 주었다. 내 성격이라면 미국에서도 잘 적응할 거라며, 언어도 금방 늘고 잘 해낼 거라는 응원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대명이가 나를 위해 애쓰는 만큼, 고마움과 미안함이 공존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장거리 연애를 할 자신이 없었다. 스무 살 때도 군대 간 남자친구를 기다려본 적이 없었으니, 누군가에게 나를 기다려 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대화 끝에, 대명이는 외할머니댁 앞까지 바래다주고 다시 서울로 향했다. 바쁜 와중에도 나를 위해 이 먼 길을 오가는 그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렇게 알바를 마칠 즈음, 갑작스럽게 몸이 무너졌다. 대명과 함께 갔던 스시집에서 먹은 어리굴젓 때문인지, 노로바이러스에 걸려 일주일 내내 외할머니댁 거실에 누워 있어야 했다. 장과 위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 속에서 구토와 설사가 반복되었고, 가까운 병원에서 수액을 맞아도 나아지지 않았다. 대명이는 자신이 골랐던 음식 때문이라며 더 걱정했다. 결국, 왕복 네 시간이 걸리는 길을 달려와 할머니댁 앞에 죽을 사다 두고 갔다. 그때는 너무 아파서 그의 정성에 온전히 감사할 여력조차 없었다. 그렇게 8일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몸이 회복되었다.


몸이 나아진 다음 날,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대명의 고백을 거절한 후, 우리는 세 번 더 만나기로 했는데, 오늘이 그 마지막 날이었다. 마음이 흔들렸다. 대명이는 너무 좋은 사람이었고,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존재였다. '미국에 가기 전까지만이라도 연애를 해볼까?'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답을 내리기보다, 대명과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대명이는 이번에도 내가 있는 곳까지 한 시간이나 걸려 와주었다. 이제 만남이 익숙해졌고, 함께 밥을 먹고 카페에 가도 어색함은 없었다. 그런데 막상 카페에 앉자 우리는 마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처럼 잠시 침묵에 빠졌다. 커피가 나오고 나서도 짧은 정적이 이어졌고, 결국 대명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빨리 취업을 하고 싶었고, 지금까지 쌓아온 스펙을 활용해 취업 준비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과외도 계속하면서 앞으로도 열심히 살 거라며, 내가 미국에 가더라도 그는 한국에서 더 빨리 자리 잡을 거라고 했다. 자신의 계획을 상세히 설명하는 그의 눈빛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내가 우려하는 부분을 모두 덜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자, 대명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점점 촉촉해졌다. 초조해하는 그의 모습이 귀여웠다. 원래 귀여운 사람을 보면 게임에서 진 거라고 했는데, 난 확실히 졌다.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직은 서로 잘 모르지만, 우리 한 번 잘 만나보자."

내 대답을 들은 대명이는 안도한 듯 웃었다. 그는 오늘이 마지막 만남이 될까 봐 어젯밤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같이 먹은 저녁도 제대로 넘기지 못해 배가 고프다고 투덜거리는 그의 모습이 왠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도 어느새 대명이를 많이 좋아하고 있었다. 그렇게, 파리에서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연인이 되어 이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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