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새우회가 불러온 마지막 밤
응급실 바로 옆에 위치한 숙소였다. 그런데도 나는 응급실을 가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조금 더 지켜보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대명이는 당장 가야 한다며 단호했다. 투닥투닥 실랑이를 벌이며 고깃집에서 숙소로비로 도착했다. 로비에서 우연히 마주친 거울 속 내 얼굴을 보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얼굴은 과거의 어느 순간처럼 두 배로 부어 있었고, 여기저기에 붉은 반점이 가득했다. 거울을 보는 순간, 병원에 안가겠다고고 하는 건 그냥 나의 고집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대명이를 따라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한라대병원 응급실은 숙소 바로 옆이라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접수를 했고, 곧 보호자를 찾는다는 안내가 들려왔다. 대명이는 내가 보호자 없이 왔다고 하려는 찰나, 본인이 보호자라며 나섰다. 무언가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가 보호자라는 그 타이틀이 조금 나에게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시간이 지나고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몸이 가렵고 숨쉬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한 달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하자, 의사는 알레르기인지 몰랐냐며 약간의 호통을 쳤다.
억울했다. 파리에서 돌아온 직후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갑자기 알레르기가 생기는 경우는 드물다"며 검사를 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아무 소용없는 말이었다. 치료가 먼저였다. 알레르기 반응일 가능성이 크다며 수액을 맞았고, 언제인지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깼을 때, 내 옆에는 대명이가 있었다. 침대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대명이와의 여행 자체가 부담스러웠는데, 끝까지 이런 일까지 겪게 만들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사고뭉치일까?"
딱새우회를 먹으며 "너는 새우 알레르기라 못 먹어서 너무 안됐다, 내가 더 많이 먹어줄게!"라며 장난쳤던 게 떠올랐다. 어쩌면 벌을 받은 걸까? 추측해보니 나 역시 갑각류 알레르기가 생긴 것 같았다. 몇 시간 동안 수액을 맞고 숙소로 돌아왔다. 응급실에서 긴박한 환자들이 오가는 모습을 본 탓인지, 우리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기절하듯 깊이 잠들었다.
새벽녘, 눈을 떴다. 거울을 보니 부어올랐던 얼굴과 붉은 반점들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이제 곧 육지로 돌아가야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조심스레 대명을 깨웠다.
"대명아, 아침 먹으러 갈까?"
대명이는 내가 다시 아플까 걱정했지만, 나는 이미 완전히 회복한 상태였다. 우리는 제주도의 고등어김치조림 맛집을 찾았다. 몇 번이나 방문했던 곳이라 실패할 일이 없었다. 역시 맛있었고, 다행히 여행의 마지막을 좋은 음식과 함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후, 서울로 돌아와 알레르기 검사를 받았다. 제발 갑각류 알레르기가 아니길 바라며 긴장한 채 결과를 기다렸다. 며칠 뒤, 병원에서 전화를 받았다.
"새우에만 알레르기가 있네요."
갑각류 전체가 아니라 새우만? 천만다행인지, 애매한 불행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양념게장은 먹을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새우 알레르기 커플'이 되었다. 초밥을 먹어도, 파스타를 먹어도, 새우는 빼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음식 취향도 비슷하고, 알레르기도 같은 커플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의 연애는 순조로웠다.
제주도 여행 후 개학을 맞이했다. 그리고 내 인생 처음으로 캠퍼스 커플, 'CC'라는 걸 해볼 수 있게 되었다.
밤에만 다니던 학교를 이제는 대명이 덕분에 낮에도 제대로 누릴 수 있었다. 그는 학점 잘 받는 팁부터 교수님들의 시험 스타일까지, 수강신청의 작은 디테일까지 알려주었다. 어디에 도서관이 있는지, 어떻게 가면 비를 피할 수 있는지, 급식실이 몇 개고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까지 세세하게 챙겨줬다.
3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많았다. 학교 가는 날마다 새로운 기대가 생겼다.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는 것도, 캠퍼스 곳곳을 함께 걸어 다니는 것도 모두 새로웠다. 학교는 학점을 따기 위한 공간일 뿐이었는데, 대명과 함께하는 순간, 새로운 데이트 장소가 되었다. 도서관에서도, 급식실에서도, 캠퍼스 어느 곳에서든 우리는 함께였다.
내 마음은 마치 봄날 새싹처럼 피어났다. 모든 것이 잘 맞았고, 때로는 운명적인 만남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미국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고 있었고, 대명이는 취업을 앞두고 있었다. 우리는 바쁘겠지만, 그래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원래 미래는 예측할 수 없는 법이다.
이때 우리는 그걸 알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