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갈림길

우리가 마주한 첫 번째 흔들림

by 오기우기

3학년 2학기, 새로운 학교생활의 재미로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 대명이와 함께한 학교생활은 늘 신선하고 설렘이 있었다. 어떤 날엔 대명이가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내 수업이 끝나면 함께 지하철역까지 걸어가기도 했고, 가끔은 그가 공부하고 있는 도서관에 내가 음료수를 사 들고 가 깜짝 놀래켜주기도 했다. 서로 다른 건물로 이동하다가 우연히 마주치면 그 반가움이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해줬고, 수업이 끝난 후에 함께 마시는 커피 한 잔도, 같은 공간에서 공부하는 시간도 참 좋았다.


그 시기 나는 미국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학교 수업과 병행해서 영어회화 학원에도 다녔는데, 금방 실력이 느는 건 아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언어는 어차피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거니까. 학원을 다니면서 미국 회사 면접도 여러 번 봤고, 마침내 한 회사에서 인턴십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남은 건 대사관에서 비자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전 세계가 멈춰버렸다.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팬데믹은 대사관의 문을 닫게 만들었고, 나의 계획은 더 이상 일정대로 흘러갈 수 없게 됐다. 미국행은 무기한 연기되었고, 나는 불안해졌다. 내가 그동안 준비한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까지 무시할 수 없는 것들이었기에 초조함은 점점 커져갔다. 시간은 흐르고, 나이는 들어가고, 언제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하고 무력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속상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불안한 감정을 꾹 눌러두기로 했다. 전 세계가 모두 혼란에 빠져 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대명이의 응원과 격려가 큰 힘이 되어주었다.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고, 비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원래는 3학년 2학기까지만 학교를 다니고 1년간 휴학해 미국에서 인턴생활을 할 계획이었지만, 일단 남은 4학년을 무사히 마치기로 했다. 인생이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다. 비대면 수업이 시작되었고, 마스크는 이제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그때 우리는 서로의 미래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적지 않은 나이였기에 진로에 대한 고민도,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두려움도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었다. 대명이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다른 학생들 못지않게 차곡차곡 스펙을 쌓아가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다는 생각도 자주 들었고, 그만큼 믿음직했다.

그러다 황당한 연락을 대명이에 받았다.

“나, 대학원에 갈 것 같아.” 평소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이야기였다. 우리 사이에 나눴던 대화들과, 그가 그려오던 진로의 그림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대명이는 대학을 가기 전 과외를 해주셨던 선생님의 어머니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대학원 진학을 권유받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부모님도 같은 의견을 내셨고, 이제는 실습을 거쳐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라고 했다.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오랫동안 준비해오던 길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걸까. 그것도 본인의 생각이나 의지에서 비롯된 결정이 아니라 타인의 권유로 말이다. 나는 대명이가 어떤 상황에서 학업을 해왔는지 잘 알고 있다. 대학교를 다니며 3개가 넘는 과외를 병행했고, 안정적인 공부 여건을 가진 친구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큰 결정을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을까.

우리는 처음으로 크게 다퉜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생의 선택은 본인의 생각과 의지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대명의 결정이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그가 그 선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대명이가 아니었다. 타인의 의견에 휘둘리는 모습이 낯설었고, 동시에 안쓰럽기도 했다. 물론 그는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여러 이유를 설명했지만, 그 어떤 말도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대명이는 대학원 입학이 부담스럽고, 여전히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현실이 두렵다고 털어놓았다. 그 긴 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그 고백조차도 나에게는 그의 선택을 믿지 못하게 하는 이유로 다가왔다. 본인조차 확신이 없는 선택이라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또 어떤 결정들을 타인의 말에 따라 하게 될까.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우리의 미래를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가령, 그의 부모님이 우리 관계를 알게 되었을 때 반대한다면? 그는 과연 그 말에 따라 이별을 선택할까? 그런 가정을 해보는 것조차 마음이 아팠지만,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관계는 어딘가 처음과는 달라져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지만, 연락의 빈도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일주일을 고민한 끝에, 대명이와 이별하기로 결심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그에게 조심스럽게 만나자고 연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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