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삶의 주체

by 오기우기

나는 항상, 내 인생의 주인은 나 자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누군가 대신 살아줄 인생이 아니기에, 어떤 순간에도 나의 선택과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부모님께 배웠다. 그래서일까. 대명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진로 문제로 다투고 서먹해진 지 일주일. 오늘은 내가 이별을 고하기로 마음먹은 날이었다. 만난 기간이 길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대한민국 대학생들이 어떻게 취업을 준비하는지, 대명이를 통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6년 전의 취업시장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아니면, 그땐 내가 너무 어려서 몰랐던 걸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의 대학생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피부로 느꼈다는 것이다. 대명이는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했고, 생계를 위해 수많은 과외를 병행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한두 명도 아닌, 여러 학생을 주 1~3회씩 가르쳤고, 시험기간에는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그런 대명이가 대학원을 진학하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 나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느꼈다. 어쩌면 그 순간, 대명이에게서 벽을 느끼기 시작했던 걸지도 모른다.


사당역 근처 약속한 카페로 향하는 길, 우리 사이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사람이 얼마나 열심히 살 수 있는지, 얼마나 섬세하고 배려심이 깊을 수 있는지, 타인을 대하는 태도까지. 나는 대명이를 통해 많은 걸 배웠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그걸 온전히 느끼게 해준 사람이었다.


카페에 도착하니 대명이는 이미 와 있었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왜 만나자고 했는지 눈치챈 듯했다. 그걸 모르면 정말 바보일 것이다. 나는 미리 준비한 말들을 꾸밈없이 꺼냈다.

"우리가 만나면서 나눴던 이야기들, 그리고 갑작스런 진로 변경의 이유가 너의 의지보다 타인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 같아 보여. 너와 나의 가치관이 다른 것 같아. 헤어지자."

대명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고, 이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말없이 흐느끼는 그 모습에 나도 10분 정도 더 기다렸지만, 그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번 마음먹은 이상, 매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면, 난 갈게."

그렇게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이미 일주일 동안 마음의 준비를 했던 터라, 눈물은 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대명에게서 장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 메시지에는 우리가 이렇게 헤어지는 게 아쉽다는 말과, 진로를 바꾼 것이 꼭 타인의 의지 때문만은 아니라는 해명이 담겨 있었다. 앞으로 어떤 노력을 할지 지켜봐 달라는 말도 있었다. 어떤 고난과 역경이 있더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더 열심히 하겠다고, 그는 말했다.

그 글을 읽다 보니 눈물이 났다. 나는 누구보다 대명이가 잘되기를 바라고 있었구나. 내가 화가 났던 건, 그의 인생에서 주체가 대명이가 아닌 타인일까 봐, 그래서 걱정되고 두려웠던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번 그의 글을 읽고 나서, 나는 한 시간 뒤에 ‘조금만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 후로 나는 계속 대명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생각해보면, 대명이는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수능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해 아쉬운 마음으로 대학에 입학했고, 심지어 군 복무 중에도 다시 수능을 준비하며 삼수를 했던 친구였다. 그런 그였기에, 대학원을 고민하게 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부모님 역시 대학원 진학을 응원해주셨다고 했다. 또 한편으로는 대명이는 워낙 말이 없던 성격이라, 과외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조차 부모님은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말이 많던 대명이라도, 부모님에겐 모든 걸 털어놓는 사람이 아니었다.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도 부모님은 모르고 계셨으니.

모든 사람이 나처럼 모든 것을 공유하며 사는 건 아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다. 그리고 ‘다르다’는 건 곧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우리는 다시 만났다.


이때 그냥, 각자의 삶을 응원해주며 각자의 길을 갔더라면 우리는 더 행복했을까?

이전 14화첫 갈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