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시간과 거리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시간

by 오기우기

우리에게 있었던 큰 산 하나를 넘고, 겉으로 보기엔 나름 평탄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대명이는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실습을 1년간 진행하게 되었고, 덕분에 훨씬 더 바빠졌다. 매일같이 실습에 나갔고, 과외와 학업을 병행했으니 당연히 바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데이트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누구보다 고생할 대명이를 보며, 나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물 안 개구리’ 같다고 느끼며 회사를 그만둔 지 몇 개월이 지났고, 늘 열심히 사는 대명이를 보며 나는 점점 더 심리적으로 초조해졌다. 뭔가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스물여섯 살인 내가,아직도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대학교와 학원만 다니는 게 괜찮은 걸까? 한 달 한 달 나가는 고정비도 무시할 수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마스크를 쓰고 다녔고, 경제는 어두웠다. 미국 대사관이 열리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간에 돈이라도 벌어야겠다.' 그런 결심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밖에 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짧은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싶었지만, 가게에 사람이 없어서인지 공고 자체가 별로 없었다. 결국 나는 인턴 면접을 보고, 종로에 있는 회사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대명이는 늘 나를 응원해주는 친구였다. 내가 무엇을 하든 항상 지지해주고, 응원해주었다. 그는 늘 내 옆에서 이것저것 도움이 될 만한 방법들을 알려줬다. 나는 늘 겁이 많았고, 그래서 그의 조언에 늘 보수적이었지만 말이다.

종로 회사에서 월급을 받게 되면, 그 돈으로 제일 먼저 대명이에게 가장 맛있는 밥을 사주고 싶었다. 늘 미안한 마음이 컸다. 내가 가장 가난할 때 만난 친구라, 쓸 수 있는 지출이 한정적이었다. 미국에 간다고 에이전시에 지출한 비용도 컸고, 학원을 다니는 비용, 고정비까지 감당하다 보면 한 달에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이 많지 않았다.

대명이는 대학원 준비와 과외까지 병행하고 있었기에, 그런 그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번 돈으로 그에게 꼭 맛있는 밥을 사주고 싶었다.


인턴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명이가 점심을 먹자고 종로로 찾아왔다. 귀여운 하트 모양의 선인장을 선물로 주며, “늘 응원한다”는 쪽지도 함께 건넸다. 매번 느끼지만 그는 참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닌 지도 몇 개월이 되었고, 여름이 다가와 반팔을 입는 계절이 찾아왔다. 평소처럼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연락을 하던 어느 날, 대명이는 갑자기 말했다.

“요즘 들어, 숨 쉬기 어려워.”

나는 열이 있거나 몸이 피곤해서 그런 게 아니냐고 물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마스크 쓰고 더운 여름을 보내다 보니 그런 거 아닐까?”
그는 “그런가…”라고 대답했고, 나는 그 말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핑계를 대자면, 나 역시 마스크가 너무 답답했으니까.

하지만 이때는 정말 몰랐다.
내가 알고 싶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그냥, 무지했던 걸까.


내 취미는 여행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1년간 모은 돈으로 중고 경차를 한 대 샀다. 어릴 때부터 집에 차가 있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국내여행은 떠날 수 있었다. 혼자든, 친구들과든 정말 잘 돌아다녔다.

우리는 여행에서 만났기에, 연인 사이가 되고 나서도 여행을 자주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바빠진 대명이의 일정 탓에 1박 2일은 물론 당일 여행조차 드물어졌다. 실습이 시작되면서 데이트도, 연락도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그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믿었다.

그렇게 대명이가 바쁘게 실습을 한 지도 어느덧 10개월.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대명이는 어디선가 귀찮다는 기색이 느껴졌다. 나는 애써 모른 척했다. 크리스마스에 입으려고 산 빨강과 초록색 체크무늬 커플 잠옷도 준비했고, 여행지와 계획도 직접 세웠고, 운전도 내가 맡았다.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이어서 정말 설레었는데, 대명이의 눈에는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그가 잘되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도,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자 가슴이 저릿저릿 아파왔다. 여행지에서도 그는 잘 웃지 않았다. 마치 억지로 놀러가자고 하는 여자친구를 맞춰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녀오고 나서도 즐겁지 않았고, 내가 억지로 우리 사이를 잡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씁쓸함만이 남았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아끼던 시절을 지나고 있었다.

끝이 올 줄은 알았지만, 그 끝이 언제일지는 모르는 척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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