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전날, 우리는 이별했다.
대학교만 졸업하면 내 모든 세상이 바뀔 줄 알았다. 첫 사회생활을 ‘고졸’이라는 타이틀로 시작했던 나에게, ‘대졸’은 꿈같은 말이었다. 졸업을 준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미 나는 모든 것을 계획해두었으니까.
보통 졸업식엔 가족들이 와서 함께 사진을 찍고 축하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내 곁에는 대명이가 있으니까, 우리는 둘이서 조용히 사진만 찍으면 될 거라 생각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모두 오시겠다고 했지만, 나는 혼자 다녀오겠다고 했다. 요즘은 졸업식에도 부모님이 잘 오지 않는다고, 시대가 그렇다고 변명했다.
졸업식 전날, 대명이에게 말했다. “우리 학교 근처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같이 졸업식 가자.”
대명이는 흔쾌히 승낙했고, 나는 숙소를 예약했다. 대명이는 대학원 실습을 마친 후 숙소로 왔다. 나는 입실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졸업식 전날이라 마음이 들떴다.
먼저 도착한 나는 대명이를 기다렸다. 조금 늦게 온 대명이, 피곤한 얼굴로 말수도 줄어들어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나를 보러 온 것이라 생각하려 했지만, 마음 한켠에 서운함이 자꾸 피어올랐다. 방학이 되면서 만남은 줄었고, 실습과 과외로 바쁜 대명이는 자꾸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지쳐 있는 모습이, 나 혼자 이 관계에 매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따지듯 물었다.
“요즘 나 사랑하는 거 맞아?”
“표현도 줄고, 만나는 횟수도 줄었잖아.”
내 질문에 대명이는 말이 없었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할 말이 없는 거야?”
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쏟아냈다.
“너, 날 사랑하긴 해? 좋아는 하는 거야?”
한참을 침묵하던 대명이는 결국 말했다.
“잘 모르겠어.”
그 말은 나를 산산이 부쉈다.
그래도 나는 말했다.
“네가 날 좋아하는 감정이 아직 있다면, 난 바쁜 널 이해해보려 노력할게.”
하지만 대명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내가 먼저 ‘헤어지자’ 말하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
결국 내가 말했다.
“날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면, 우리 그냥 그만하자.”
대명이는 아무런 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나도 울었다.
2시간가량의 침묵과 눈물 끝에, 대명이는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홀로 남겨진 숙소에서 잠을 청했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혼자 당당히 졸업식 가면 된다’며, 가족들까지 뿌리치고 준비했던 이 하루가 왜 이렇게 쓸쓸한지.
이럴 줄 알았으면, 가족들과 함께할 걸. 비싼 숙소를 혼자 쓰려고 잡은 건 아닌데.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감정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숙소를 체크아웃하고 학교로 향했다.
드디어 졸업식. 그토록 기다려온 날이었다.
이동 중 대명에게 만나자며 연락이 왔다.
‘안 만나겠다’고 했지만, 나도 ‘알겠어’라고 답장했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 너무 아팠고, 나는 아직 대명과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었다.
대명이는 꽃다발을 건네며 졸업을 축하해줬다. 그 꽃다발을 받으며 또 눈물이 날 뻔했지만 꾹 참았다.
졸업식이 끝난 뒤, 나는 마지막으로 대명이를 붙잡아보았다.
하지만 대명이는 단호했다.
우리는 그날로 완전히 끝이 났다.
이별 후, 나는 짝꿍을 잃은 것 같았다.
작은 일에도 함께 웃던 친구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기분.
우리의 연애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푸른 들판을 달리는 듯했지만, 이별 후엔 늘 먹구름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대명에게 만나자고 했고 카페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만나자고 했다.
하지만 대명이는 말했다.
“추억은 추억이기에 아름다운 거야. 우리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어.”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정말 끝이었다.
마음을 정리하는 데 약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가난하고 불안정했던 시절, 나의 손을 잡아주던 사람.
고마움과 미안함이 늘 함께였던 연인.
그래도, 잘 지냈으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는 몽마르트 언덕에서 스쳐간 바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