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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그러네 Mar 10. 2021

바보 아버지.

탐관오리(貪官汚吏). 탐욕스러운 관리와 더러운 벼슬아치. 옛날이야기에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통사람들만 멍이 드는 느낌이 아닌가. 국민이 모아준 세금으로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할 터에, 일터에서 얻은 정보를 가로채 자신들만 배를 불렸다. 국민을 대신해서 일하라 했더니, 국민을 속이면서 얼마나 고소했을까.


도둑이 들끓는다 듣기는 했지만, 이처럼 당하고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게 만약 공직사회에 만연한 평균적 조류라면, 국민은 누굴 믿고 일상을 이어갈 것인가. 나라의 내일은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 다음세대에게 우리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선진국이 된다한들 무너질 질서를 어찌할 것인가.      


70년대와 80년대를 가로지르며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이어질 무렵에 기초조사와 기본설계의 맨 앞에서 일했던 토목기술자가 있었다. 필자의 선친이었던 그는 사업가였던 선대의 핏줄을 따라, 나라의 동맥을 연결하는 일이 부동산에 미칠 영향을 잘 알고 있었다. 장차 고속도로가 완성되면 주변의 땅값은 폭등할 것이며 한 덩어리라도 구입하면 큰 이득이 생길 것도 알고 있었다.


공직자로서 그는 그리 하지 않았다. 손수 설계하고 모든 정황을 다 꿰뚫고 있었지만, 아내에게마저 한 톨도 발설하지 않았다. 나라의 운명을 가를 대역사를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모친은 지금도 당시 일을 회상하며 안타깝다 하신다. 한 자락만 알려줬어도 아쉽지 않은 세월을 보냈을 터인데. 하지만, 어머니도 아버지의 어깨에 걸렸던 성실함과 정직함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신다. 아들은 직장생활 몇 년 만에 모은 돈만 가지고 떠난 유학길에서 동네 신문도 배달했었다.     


아버지는 바보였을까. 나라가 맡겨준 일을 통해 획득한 정보가 본인에게는 나름 기특할 것이다.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공유하게 된 정보를 사사로이 유용하면 챙길 이득이 분명히 있다. 거대한 부와 걱정없는 내일이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여, 어지러워질 세상과 복잡해질 속내는 어찌해야 하는지 생각하기 싫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국가와 국민에 대한 신의와 성실을 지키며 밤낮을 뛰는 공직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들 덕에 나라가 굴러가고 사회가 평안하다.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당신같은 관리들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이만큼 자라왔다는 믿음이 있다. 바보같이 욕심없이 섬겨온 덕에 나라의 길들이 무사히 이어졌을 터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시인 윤동주가 적어내린 심정에 우리는 어떻게 답하여야 하는가. 공직을 사익에 이용한 당신은 그래도 잘못이 없다고 우길 참인가. 공직사회의 청렴함을 회복하기 위해서 정부는 특단의 결단을 하여야 한다. 다음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물려주기 위하여 사회가 맑아져야 한다.


그의 삶이 일을 잘하기 위한 욕심으로 가득했었지만, 어느 한 자락도 자신을 위해서는 쓰지 않았던 ‘바보 아버지’가 오늘 새삼 그립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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