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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그러네 Sep 01. 2021

답이 없다는데 웃음이 나오나.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언론중재법)’이 겨우 파국은 면하였다. 개정안을 다루던 국회가 그 통과 여부를 놓고 대치하던 중, 의장의 중재로 논의를 한 달간 계속하기로 하였다. 다툼이 멎어 다행이라지만,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아 바라보는 국민은 답답할 뿐이다. 문제는 어디에 있었을까. 언론을 개혁하겠다는 국민의 의지와 변화를 부정하는 언론의 입장 사이에 국회가 끼인 게 아닌가. 개혁 대상으로 지목된 언론이 목소리를 높이는 건 아무래도 어색하다. 이왕 확보된 한 달 동안 우리 언론을 개선하여 ‘시민의 눈초리이자 목소리’로서 언론이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생각을 다듬어야 한다.      


미확인보도와 허위정보, 가짜뉴스와 왜곡보도 등이 지속적으로 발견되면서 언론을 향한 시민의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고 독자 대중의 신뢰를 잃어오지 않았는가. 일차적인 책임은 언론 스스로에게 있다. 매체환경이 급격히 바뀌면서 취재와 보도에 있어 속도경쟁이 가속화된 사정을 이해하고 남는다. 그렇다 해도, ‘사실확인’에 충실해야 함은 저널리즘의 양보할 수 없는 본질이 아닌가. 언론지상에서 이따금씩 목격되는 확인없이 또는 취재없이 적혀내린 기사는 기자 스스로 자존감을 훼손하는 결과를 빚게 마련이다. ‘따옴표’ 언론도 사라져야 하고 미확인보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언론기관 내외부로부터 전달되는 유무형의 압력으로부터도 기자는 자유로와야 한다.      


대선상황을 취재하는 현장의 모습이 전달되곤 하지만, 기자정신은 아직 저널리즘의 핵심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대선후보의 기자회견에 준비한 질문을 던진 일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답하기 곤란하다’는 후보의 답변에 기자들은 ‘와’하고 웃음으로 양보하며 물러선다. 이게 말이 되는가. 기자라면 ‘가파른 질문으로 맞서야 하고, 적절한 답을 듣기 전에는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기자는 누구에게라도 겁 없이 맞설 줄 알아야 하며, 또 기자라면 누구라도 겁을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눈치를 보며 대강대강 얼버무리는 일은 누구는 못하는가. 당신이 기자인 까닭은 물러설 수 없는 등 뒤의 낭떠러지를 분명히 인식함이 아닌가. 당신의 등 뒤엔 독자가 기다리고 있다. 답을 구하며 물었으면서, 답이 없다는 답을 인정하고 돌아서는 처사는 누구를 위한 언론행위인가.      


한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바뀌어 갔으면 하는 방향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언론이 먼저 자성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국민은 사실확인에 충실하고 기자정신으로 충만한 저널리즘을 기대한다. 우리 사회에 완벽한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하여 까닭없이 남에게 입힌 피해에는 당연히 중재도 해야하고 구제도 필요하다. 이 한 달을 생산적으로 활용하여 우리 언론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그런 결과, 시민의 알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고 힘있는 자들을 매섭게 견제하는 책임있는 언론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언론이 살아야 나라가 선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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