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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그러네 Jan 19. 2022

불확실성의 시대, 무속의 존재이유

이성의 시대라고 한다. 보이지 않는 신의 음성에 의지하며 억눌리기보다 인간의 생각하는 힘을 믿기로 하였다. 논리와 분석이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키고 주변에 존재하는 불확실성의 안개를  걷어내면서 눈부신 21세기에 돌입하였다. 이성적인 사고(思考)능력은 인간이 더 이상 주술과 무속에 휘둘리지 않아도 될 만큼 안정적인 상태에 도달하였다고 여겨진다.


진인사대천명, 사람이 할 바를 다한 후에 마지막 한 자락 하늘의 섭리에 기대하는 것쯤은 애교로 봐줄만 하다. 수험생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실력을 쌓은 다음 시험에 임할 적에 천지신명의 도움을 비는 부모의 심정은 차라리 모든 정성을 모으는 진심이 보인다. 과학기술 뿐 아니라 인간이 복무하는 모든 영역에서 샤머니즘은 설 자리를 잃었다.


현대사회에는 무속이 기능할 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섣부른 짐작이었을까. 대한민국 대선판의 권력핵심에 무속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모습에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선거의 결과가 극도의 불확실성을 전제하기는 해도, 근거없는 사술과 허무맹랑한 무속에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거는 모습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기독교계와 천주교계 등이 이런 현상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는 모습은 놀랍지 않은가. 복잡다기한 나라의 문제들에 관하여 이성과 분석으로 접근하지 않고 손쉬운 주술에 의존하려는 원시적인 종교행위에 사회적으로 경계하는 목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탄핵당한 전임 대통령의 경우에도 사이비종교와 무속의 그늘이 드리워져 온 국민의 마음을 힘들게 하지 않았던가.


정치가 만나는 불확실성을 해결할 방법은 무속과 굿판이 아니다. 정책과 인물, 구도와 비전으로 겨루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을 향하여 투명하여야 하며 후보들 간의 겨룸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서로 다투기 위해 견주라는 게 아니라 국민이 이성적으로 비교할 수 있도록 겨루라는 요청이다.


상대를 깎아내리기에 몰두하기보다 본인의 역량과 비전을 드러내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당신의 무엇을 보고 국민이 선택해야 할 것인지 상대적 우위가 확인되어야 하며 국민의 선택에 후회가 없도록 소상하게 알려져야 한다. 국민이 표피적인 구호에 휘둘리지 않도록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충분히 숙성하여 나서는 것도 후보의 정치적 책임이 아닐까.      


무속은 아니다. 곧 다가오는 발렌타인데이에는 초콜렛판매를 위한 상업적인 계산이 들어있다고 믿지 않았던가. 정치에 길일(吉日)이 따로 있을 턱이 있나. 국민을 섬기는 일에 ‘손없는 날’만 골라 나설 셈인가. 정권을 교체하든 안정을 택하든 당신의 소신과 비전으로 나서길 바란다. 후보의 출세가도가 아니라, 나라의 운명이 달린 길이다.


무당과 박수는 이제 물러서길 바란다. 나라와 국민은 진정한 변화를 바랄 뿐이다. 민생에 주름이 걷히고 국격이 올라가는는 길에 무속의 존재이유는 터럭만큼도 없다. 선거는 이성의 잔치가 되어야 한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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