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그러네 Jun 08. 2022

교육이 정치인가.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사방이 고요해진 느낌. 돌아보는 이야기가 적지 않은 가운데, ‘교육감’도 그 한 자락이다. 지역의 일꾼을 뽑는 정치적 이벤트에 교육을 따로 떼어 헤아리며 선택하는 일이 그리 자연스럽지 않았다. 정당 공천을 기반으로 부여되는 후보 번호도 제시되지 않아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불편도 감수하였다. 특정후보의 이념성향과 정치적 연대를 가늠하며 표를 던지는 정치적 결정도 한몫을 하였다. 후보 자신들도 그런 경향성을 드러내며 선거에 임하였다. 선거법을 범하지 않는 수준이었다지만, 정치적 색깔을 사뭇 과시하였다. 수다한 다른 정치적 선택과 함께 버무려진 선거판에서 다음세대를 기르는 교육의 진정성은 묻혀버리지 않았을까. 


교육이 정치인가. 교육감은 정치인일까. 결과 분석에 따르며, 보수와 진보 진영에서 교육감 자리를 거의 양분하였다고 한다. 어린이와 학생들이 사는 지역에 따라 받는 교육에 정치적 기운이 다르게 실리고 이념적 덧칠이 가해진다는 말인가. 우리는 언제부터 교육을 정치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을까. 보수의 든든함과 진보의 역동성을 함께 가르치는 교육은 불가능한 것인가. 전통과 가치는 지키면서 상상력과 창의를 기르는 교육은 있을 수 없는가. 교육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오른쪽과 왼쪽에 갇힌 편협한 품성을 기르겠다는 것인가. 그마저도 정치적 바람에 따라 때마다 다른 교육을 하겠다는 것일까. 의문과 질문이 꼬리를 문다. 국민의 직접 선택이 필요하다 해도, 정치권의 선거 이벤트와는 떼어내 선출했으면 어땠을까. 정치이벤트가 아닌 교육이벤트는 불가능했을까. 


교육은 무엇인가. 여러 과목도 가르치고 다양한 활동도 함께 하지만,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선생님과 어른들이 다음세대의 마음밭에 하나씩 하나씩 채워넣는 게 아닐까. 그런 결과로 수북하게 채워진 모양새를 우리는 품성과 재능이라 부르는 게 아닐까.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소양도 물론 가르친다. 하지만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는 폭넓은 가르침을 경험하게 하여, 생각의 틀이 넓어지고 상상의 창문에는 제한이 없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이념의 가르침을 다양하게 접하게 하고, 향후 정치적 결정은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물이 오르듯 자라야 할 아이들에게 오른쪽 왼쪽을 강요하는 가르침은 부적절하다.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는 교육은 어른들 욕심에 포위된 속좁은 처사일 뿐이다.


교육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를 가르친다 해도 정치적일 수는 없다. 진영보다 훨씬 넓은 세상을 가르쳐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의미와 가르침을 모두 담아야 한다. 교육은 폭넓게 담는 너른 그릇이어야 한다. 어느 쪽을 물어도 막힘이 없도록 넉넉하게 일러줘야 한다. 자신있게 선택하는 당당한 인성을 길러야 한다. 세상의 누구와도 서슴없이 어울리고 늠름하게 겨루도록 폭넓은 품성을 길러내야 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이념에 갇힌 사람을 기른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매거진의 이전글 선거, 이대로 좋은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