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의료는 일급이다. 정부는 지난 수십 년간 국민건강보험을 주축으로 의료행정체계를 잘 구축하였다. 국민들은 그리 큰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 적절한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았다.
의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비교적 낮은 수가가 압박요인이었지만, 특유의 근면성과 부지런함을 토대로 무리없이 의술이 펼쳐져 왔다.
임상의료에는 각급 병원체계가 조직적으로 형성되어 동네 의원에서 대학병원까지 의료시스템이 정돈되었다. 의료교육시스템도 정상적으로 운영되면 한 해에 약 3천명 정도의 젊은 의사들이 배출되도록 정비되었다.
체계와 조직은 서로 톱니바튀처럼 빈틈없이 구성되어 있어, 어느 곳에도 무리한 행정적 압박이나 부담이 없어야 물흐르듯 작동한다.
필자가 보기에 이번 의료대란은, 의료의 임상과 교육이 만나는 곳에 도사리고 있었던 내재적 문제가 의대정원 확대라는 외부적 충격에 의해 발화된 것으로 보인다.
전공의들은 의대교수의 지도에 따라 임상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도 아직은 전문의가 되기위한 교육과정에 있는 의사들이다. 이들이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면서 의료소송으로 어려움을 겪는 현장을 목도하였다.
안정적으로 이해되었던 ‘의사’라는 직업이 오늘의 MZ세대 의사들에게는 서서히 매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필수의료 영역에 전문의가 되기까지 십수년을 견디는 일이 버겁게 다가왔다.
의대만 졸업하고 ‘미용의료’로 개업하는 동료들과 사회적 성공에 성큼 다가가는 동년배들이 눈에 들어왔다. 의대정원 확대필요를 인정하면서도 급격한 증대결정은 동의하기 어려웠다. 의료일선을 떠나기로 결단하였다.
의료의 임상과 교육의 중심에 있어야 할 전공의들이 무더기로 현장을 떠났다. 집단적 결정이 아니라 개인적 결심에 의한 탈주로 보인다. 모두 다른 꿈을 가지고 미래를 다시 설계하려는 몸부림으로 여겨진다.
‘돌아오라’는 메시지는 통하지 않는다. 의료산업의 현상을 유지하기도 어려워졌지만, 의대교육의 앞날과 의료현장의 미래를 생각하면 절망이 앞선다.
책임있는 인사들의 진솔한 사과가 필요하고 국민과 환우를 바라보며 의료산업을 원점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 추석을 앞두고 응급의료현장이 걱정이지만, 그보다 국가단위 의료산업의 앞날이 경각에 달린 게 아닌가. 의사결정을 맡은 정부와 전문집단으로서 의료업계가 허심탄회하게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젊은 의사들에게 어떻게 신뢰를 다시 모아줄 것인지, 구체적으로 개선해야 할 시스템과 숫자들은 어떤 것들인지, 임상과 교육의 조화는 어찌 다시 쌓을 것인지, 분명한 근거와 결정을 위한 자료들을 어떻게 선별할 것인지 등 어느 일방의 결정이 아니라 협의와 숙고를 거친 이성적인 의사결정과정을 가져야 한다.
젊은 의사들은 차가운 지성이 이끄는 대로 의술을 향한 소신과 열정을 회복하길 바란다. 전공의가 없는 의료시스템은 허리가 끊겨버린 몸통이 아니고 무엇인가.
개인의 소신을 따르면서도 집단을 향한 사회적 필요를 인식한다면 더 이상 의료공백을 용납하기 어렵다. 심사숙고하되 공명정대한 길로 당당히 그리고 속히 나서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