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은 자칫 국가적 위기가 될 판이다. 당장 코앞에 닥친 추석명절을 어찌 넘길까 걱정이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다음이 더 문제다. 이미 시작된 대입 수시지원은 증원된 의대정원을 기초로 발진하였다. 내년에 의과대학 교육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인지 아무도 자신이 없다. 집단이 아니라 모두 개인적인 결정에 따라 떠나버린 전공의들은 돌아올 기약이 없다.
허리가 텅 비어버린 대학병원들은 전문의 교수들에게 모든 업무적 부담이 안겨졌다. 환자들은 본인 증상의 경중을 헤아릴 길이 없으며, 아픈 사람들이 급하면 모두 응급실로 향한다. 정부는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 탓을 하지만, 문제를 일으킨 측은 누가 보아도 정부가 아닌가. 의료대란은 짐짓 국가위기가 되어간다.
사정이 급해진 정부는 전공의들이 비운 자리에 공중보건의와 군의관을 파견하였다. 공보의는 의료환경이 낙후한 지역 마을에서 주민들의 필요를 돌보던 이들이다. 공보의가 떠나면 마을의 보건과 의료는 누가 맡아야 하는가. 이미 전국의 시골 마을에는 ‘외지로 파견된 의사선생님’이 안 계셔서 지역보건에 공백이 생겼다.
군의관은 어떤가. 국방을 맡은 부대병력을 위한 의료에 구멍이 생긴다. 정부가 풀어야 할 문제를 ‘의사돌려막기’로 해결하려는 발상이 우선 건강하지 못하다. 간호사법을 통과시켜 의사를 도와야 할 인력으로 빈자리를 메우려 했던 일도 같은 맥락의 발상이 아니었을까.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 전공의들이 상실감없이 돌아올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에 세심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정책입안에 긴 안목이 필요하다. 의사 돌려막기를 비롯한 정부의 정책발표에는 국가의 보건정책과 의료행정을 바라보는 짧은 시각이 엿보인다. 당장 추석명절을 어떻게 넘길까 노심초사하고 있지 않은가. 국민보건은 그보다 훨씬 긴 안목을 필요로 한다.
의료임상 뿐 아니라 의학교육까지 엮이고 보니 적어도 백년은 내다보는 장기적 포석이 있어야 한다. 짧게는 내년에 의과대학에서 벌어질 교육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추석에 응급실을 찾는 국민에게 높은 의료수가를 적용하겠다는 발상도 그 시선이 짧다. 그 다음엔 어찌 하겠다는 것인지.
국민과 나라의 긴 미래를 놓고 고민하는 공직자가 보이지 않는다. 국가행정을 다루는 관료의 시각과 지평은 길고도 넓어야 한다. 의료임상의 현장과 의대교육의 체계를 겨우 본인의 임기에만 연동시키는 공무원은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나라가 잘되려면, 정부의 임기 5년을 훌쩍 넘는 장기적 안목과 정책적 시선을 국민이 공감해야 한다. 턱없이 짧은 시선과 좁은 시야로는 국가를 순조롭게 이끌고 갈 도리가 없다. 정부보다 오히려 긴 안목을 가진 국민을 납득시키고 설득해 낼 재간이 없다.
가히 국가적 위기로 치닫는 의료대란 앞에 겨우 돌려막기와 짧은 시각으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길이 없다. 문제에 정면으로 응답하고 해결해 내면서 긴 시각과 넓은 시야로 오늘의 의료대란을 풀어내는 혜안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