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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그러네 Nov 13. 2024

수능 아침 생각.

수능날 아침. 아이들이 십대후반에 거쳐가는 통과의례 앞에 온 나라가 멈춘다. 마음은 기온보다 훨씬 춥다. 수험생은 마음이 떨리고 부모는 가슴이 아프다. ‘잘 할 수 있어!’ 응원하지만, 무엇 하나 해줄 수 없는 속마음이 종일 힘들다. 실력만큼 실수없이 치르고 오기만 바랄 뿐.


정겨운 친구들이 차가운 경쟁의 대상이 되어버린 처지가 밉다. 선생님은 제자들의 이 하루가 안타깝고, 가족과 친지들도 아슬아슬하다. 온 나라가 몸살을 앓는다. 영어듣기 시험시간에 항공기 운항까지 멈추는 나라가 있을까. 수능만큼은 누구도 소홀할 수가 없다. 온 나라가 빡빡한 긴장에 빠져든다.


수능의 ‘역할’은 무엇인가.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학능력을 시험한다는 데, 기본소양 인증인가 아니면 실제실력 평가인가. 대학입시 앞에 설정된 관문이지만, 실력을 평가해 줄을 세우는 도구로 삼는 일은 너무 낡은 생각이다.


대학공부를 해낼 수 있겠는지 기초적인 소양을 인증하는 정도로 그 기능을 조절해야 하지 않을까. 대학에 들어가는 방법이 이제는 너무나 다양하다. 수능 한 번의 결과로 학생의 진짜 실력을 평가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겨울로 들어가는 길목 차가운 아침에 서 있는 수능의 낡은 모습은 유효기간이 지났다.


일 년에 ‘하루’만 치르는 것도 문제가 아닌가. 컨디션이 바닥이라거나 몸이 아픈 건 용납되지 않는다. 위급상황이 발생해도 오늘을 돌아가지 못한다. 깊은 슬픔을 엄청난 비극을 당해도 오늘은 수능이다. 무조건 오늘 치른다. 딱 하루 단 한 번. 거른다면 온통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한 해에 딱 하루 한 번만 치러야 한다는 생각은 누가 지어냈을까. 그동안 그래 왔지만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교육 관련 제도를 바라보는 정책적 안목이 왜 그런지 게으르고 느슨하다.


세상은 빛보다 빠르게 바뀌어 가는데 우리 수능은 수십 년째 멈춰 서 있다. 총기넘치는 Z세대 오늘의 십대에게는 일 년에 적어도 몇 차례 기회를 더 주어야 한다. 대학이 성역인가. 고등교육을 위한 준비상태를 살핀다면서 이처럼 불필요한 긴장을 유지할 까닭이 없다. 대학운영과 대학입시에 관한 업무를 과감하게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대학입학을 위한 기본소양을 검정하는 새로운 수능은 일 년에 몇 차례 치를 수 있어야 하며, 학생이 편안하고 유연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 실수를 돌아보며 수정해 가는 값진 경험도 귀하지 않을까.


일 년에 딱 하루 로또처럼 만나는 수능은 이제 막을 내리자. 딱 한 번 시험을 잘 쳤던 경험을 평생 붙들고 국민 앞에 무례하게 서 있는 이들을 목격하지 않는가. 정책과 제도는 세대와 시대에 걸맞게 바꾸어야 한다.


수능 아침을 향해 부지런히 달려온 수험생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기울였던 노력과 수고에 보상과 결과가 합당하게 돌아오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꾸준히 실력을 쌓으며 열심히 사는 사람이 끝내 이기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한판의 경쟁’만 떠올리는 건 정상이 아니다. 일등만 대접받는 교육은 부적절하다. 교육은 과정도 결과도 모두에게 뿌듯함과 보람을 안겨주어야 한다. 대입제도와 수능시험, 대학과 대학교육은 오늘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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