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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그러네 May 28. 2019

아, 베트남.

아시안컵 축구가 추위를 녹인다. 우승을 목표로 투혼을 불사르는 대한민국 축구팀에 높은 기대가 걸린다. 우리가 이 대회에서 우승했던 기억이 반세기가 넘는다니 이번에는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한편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가 못지않게 관심을 끈다. 오늘 우리는 베트남 축구경기에도 거의 한 마음으로 응원하며 지켜보는 것이다. 박 감독의 리더십에는 성실한 준비와 냉철한 분석은 물론 넉넉한 이해와 따뜻한 감성이 엿보인다. 선수들이 감독을 거의 아버지로 여길 만큼 때로는 매섭게 그러나 언제나 정겹게 지도한다는 것이다. ‘박항서 매직’이라 불릴 정도로 베트남 축구에 신명 나는 기억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 해를 훌쩍 넘기며 지속되는 것으로 보아, 한국의 히딩크 열기는 이미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남의 싸움에 우리의 젊은이들을 보내어 대신 전쟁을 겪었던 역사의 그늘이 드리운 땅이 아닌가. 그 덕에 우리 경제가 나아졌다고 하는 소리는 공허하기 짝이 없다. 월남 패망을 되뇌며 색깔 논리를 풀어놓기에도 이제는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 베트남은 모든 외세를 물리친 위대한 기억을 간직하며 새로운 시대를 역동적으로 열어가는 나라인 것이다. 그들의 기억 가운데에는 한국 군대가 저지른 잘못들도 분명히 있다. 꽝응아이(Quang Ngai)성에 서 있는 한 ‘한국군 증오비’는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한국군들은 이 작은 땅에 첫 발을 내딛자마자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저질렀다. 수천 명의 양민을 학살하고 가옥과 무덤과 마을들을 깨끗이 불태웠다. 우리는 이를 영원토록 뼛속 깊이 새길 것이다’라고 적었다.


이성(理性)의 힘으로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하였던 20세기가 참혹한 전쟁들과 수많은 희생만을 남겼던 근현대의 부끄러움이 있다. 이제 펼쳐가는 21세기는 그 같은 수치(羞恥)를 반복하지 않을 것인가. 오늘도 그칠 줄 모르는 전쟁과 기근, 난민과 장벽 뉴스들은 그런 세상이 과연 올 것인지 우려하게 만든다.


박항서 감독은 자신의 실력과 소양으로 성실하게 베트남 축구를 돕고 있다. 그들 축구에 승전보를 하나씩 더할 때마다 베트남 국민들에게 흥분이 쌓이고 즐거움을 더할 터이다. 그러는 사이 과거의 아픈 기억도 한 겹씩 씻기어 가기를 기대해 본다. 뼛속 깊이 새겼을 만행의 상처가 조금씩이라도 벗겨졌으면 한다. 동시에 우리 정부와 국민은 베트남 전쟁 중에 우리 군이 자행한 잘못에 대해서 진중하게 되새기고 진솔하게 사과하며 화해와 평화를 지향하는 다짐을 분명히 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일본에 대하여 보다 단호하게 무엇을 요구하기 위해서도 베트남 역사에 우리가 끼친 실수를 바르게 짚어야 할 것이다. 유대인 학살 등에 대하여 독일이 공식적인 사과를 거듭 진지하게 하는 모습도 바로 이런 노력이 아니었을까. 대한민국과 베트남, 이제는 역사의 기억을 딛고 함께 일어서야 한다. 부끄럽고 어두운 기억을 망각하기보다 내일을 겨냥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면서 그 기억의 의미를 새기고 살펴야 한다. 분명한 사과와 배려, 협력과 상생의 길을 열어가야 한다.


오늘 베트남은 역동성과 젊음으로 가득하여 우리 청년들에게도 함께 호흡할 여지와 가능성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경험과 걸어온 스토리도 베트남에게는 큰 교훈이 될 터이다. 박항서 감독의 실력과 진정성이 베트남에서 통하고 베트남 청년 선수들의 기백과 용기가 만난 저 ‘매직’은 앞으로 다른 여러 가닥에서 더 많이 펼쳐져야 한다. 핑퐁외교가 거대한 중국을 열었듯이, 축구 이야기가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하고 함께 열어가는 지평의 단초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앞으로 또 몇 날, 양국 대표팀이 아시안컵에서 더 오래 이겨주었으면 한다. 한국과 베트남의 국민 간 우정이 더욱 든든해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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